사소한 여자들 문제? 현대 의학의 맹점
레이첼 E 그로스 지음
제효영 옮김
휴머니스트
자궁 이야기
리어 해저드 지음
김명주 옮김
김영사
여성 생식기관은 의학·생물학은 물론 정신의학에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한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생식생물학·젠더·과학사를 공부한 과학저널리스트이자 『버자이너』의 지은이는 이에 대해 밝혀진 게 의외로 부족하다는 데 놀란다. 여성조차 낯설고 생소하다고 느낄 정도로 과학적·의학적으로 어둡다.
희귀암인 삼중음성유방암과 월경을 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이 고통을 겪을 정도로 흔한 자궁내막염을 모두 앓아본 생명공학자 린다 그리피스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유방암은 광범위한 연구로 다양한 진단법과 치료법이 개발돼 있다. 의사들은 즉시 조직검사를 하고 에스트로겐 수용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HER2(사람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 같은 생체 지표를 확인했다. 생체 지표는 수술이나 방사선요법 같은 국소치료 또는 호르몬 억제나 항암화학요법, 표적치료제 사용 같은 전신 치료를 결정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자궁내막염은 이런 생체 지표가 아직 없다. 치료법도 수술과 호르몬 억제 외에는 뾰족한 수단이 개발되지 않았다. 심지어 여성의 호르몬 주기를 중단시키면 병이 완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결혼과 임신을 치료법으로 권하는 의사도 있다.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고통받을 정도로 흔한 세균성 질염은 여성에겐 절박한 질환이지만 남성 중심의 과학·의학계에선 오랫동안 ‘사소한 여자들 문제’로 치부돼왔다고 지은이는 개탄한다. 여러 상주균 중 일부가 과도하게 증식하면서 회색·흰색의 분비물이 생기고 심한 가려움증이 생긴다. 더 큰 문제는 이 질환에 걸리면 세균이 만드는 화학물질인 카다베린·푸트레신 때문에 심한 냄새가 나면서 인간관계까지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청결이나 건강보조식품 복용만으론 해결이 어려운 난치병이다. 환자로선 괴롭기 그지없다. 최근에야 미생물·분변 이식 등 다소 극단적인 방법으로 질내 미생물의 균형을 바로 잡는 치료법이 시도되고 있다.
지은이는 여성생식기관이 이처럼 오랫동안 무관심·무지·편견에 시달려 왔다며 외면과 단절을 극복할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원제 Vagina Obscura.
『자궁 이야기』는 인체에서 가장 기적적이면서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기관이라는 자궁의 과학·역사·문화를 파고든다. 지은이는 자궁이 해부학적 기관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라고 강조한다. 생리·폐경, 자궁 이식을 통한 출산, 인공 자궁 연구 등 현대 의학적 주제와 함께 과학·의료제도의 여성 차별과 억압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지은이는 하버드대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BBC방송에서 일하다 자신의 임신·출산·산후조리를 계기로 전공을 바꿔 조산사가 됐다. 여성 몸에 대한 탐구 열정이 돋보인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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