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라이트 ESG칼럼]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위하여
(지디넷코리아=진양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ESG지속가능센터 연구소장)우리나라에서 ‘ESG’가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언제일까? 2019년 미국 BRT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선언과 이듬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주주서한에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SG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사회환경 문제에 기업 역할을 재정의하고 또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식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목소리는 지속가능경영이라는 근원적 개념을 바탕으로 꾸준히 이뤄져오긴 했다. ‘지속가능경영’이란 조직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경영패러다임을 말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업도 일종의 문제해결자로서 책무를 가진다는 의미다.
오랜 기간 산업발전 역사와 함께 복합적이고 다양해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책임과 기여는 어디까지인지', 또 '그 방법은 어떻해야 하는 지' 같은 질문에 대해 많은 논의와 연구, 시도가 이뤄져왔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매우 다양하다. 그 중 기업의 영향도(impact)가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 생태위기와 관련한 이슈는 직접적인 문제의 원인의 상당수가 산업화 과정에 있다고 보고, 국제적인 협약과 규제를 통해 RE100, 탄소중립, 생물다양성 보전과 같은 형태로 기업 본연의 비즈니스 활동을 통해 문제해결에 적극 동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럼 ‘지역불균형’ 이슈는 어떨까?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언론이 주목한 사회문제 1순위로 ‘도시인구 집중 및 지방소멸’이 선정됐다. 작년 한 해 동안 1만6105건의 뉴스가 보도되었고 이는 전년 대비 42%가 증가한 수치다. 지역불균형 이슈는 기업의 비즈니스활동에 따른 것이거나 이로 인해 가속화하고 있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지역불균형 문제는 출산율 감소와 노령화, 자원의 수도권 집중화, 산업구조 재편과 같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지역공동체의 붕괴 원인을 기업활동에서 찾는 건 무리다.
지역소멸 이슈는 가까운 일본과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최근 기업들이 여기에 관심을 갖고 문제해결자로 나서고 있다. 산업지형 변화로 지역 내 기업이 폐업하거나 원도심이 쇠퇴하고 인구가 유출되는 위기를 맞고 있는 지역에 해당 지역 연고기업이나 향토기업이 나서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지역공동체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경북 영주의 ‘STAXX 프로젝트’, 전북 군산의 ‘로컬라이즈 군산’, 부산 영도구의 ‘삼진이음’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기업과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청년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인구 유입과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추진되었는데 3년간 지속된 ‘로컬라이즈 군산’을 통해 육성된 창업팀이 만든 매출액은 총 100억원에 달한다. 이에 군산 원도심의 새로운 가능성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게 했다.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온 성공 요소로 1) 풍부한 지역자산 2) 지역 연고기업의 협업의지와 벤처필란트로피 3) 일상교류와 코칭을 통한 운영팀의 서번트 리더십 등을 꼽았다.
필자는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라는 주제에 더 많은 기업들의 공감과 동참을 위해서는 앞에서 제시한 성공요소와 함께 새로운 접근방식을 덧붙여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사회공헌이나 벤처필란트로피를 넘어 ESG 관점의 가치 창출 요소로서 지역공동체 활성화가 가지는 의미를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재무적·비재무적 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기회 요소로서 새로운 지평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지역공동체가 가져야 할 것이다.
지역 연고기업과 향토기업 등 관계를 맺고자 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 안에서 성과와 연결할 접점을 찾고,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개선하거나 성과가 향상되는 부분을 설명하고 소통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게 좋으니, 또 지역 기업이니까 지역사회공헌 차원에서 참여와 지원을 바라는 것은 명분이 약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각 지역의 사회적경제 생태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자원순환, 이를 통한 녹색일자리와 같은 주제의 공론장에 더 많은 민간 기업이 참여하여 ESG 경영활동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원 수요자와 소비자를 넘어 활력 조성의 주체자라는 인식을 다시 새겨야 한다. 과거부터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이든 또 이주해 정착하려는 청년창업자든, 귀촌하여 인생 2막을 꿈꾸는 이주민이든 모두가 지역사회를 일터, 삶터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활동의 주체자로 참여해야 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공동체 회복과 재건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주인은 없고 손님만 가득한 가게에 장사가 잘될 리 없다. 지역공동체 활성화 형태가 외지인, 외부자원, 외부 수요로만 움직인다면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역을 살리고 지역의 활력을 되찾고자 하는 당사자의 니즈가 없다면 지역활성화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셋째, 지역공동체의 아이덴터티와 브랜드를 구축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을 지역답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역을 동경하게 하고, 누구든 가고 싶어 하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자산, 각 지방정부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수립하고 있는 전략과 정책, 지역공동체가 함께 추구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핵심가치와 같은 것들을 엮어내고 풀어내어 지역만의 내러티브를 구축해야 한다. 남들이 다 하는 뻔한 방식이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위한 구심점과 매개체가 될 지역의 고유성은 무엇인지 꾸준히 탐구하고 연구해야 한다.
하루 아침에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왕자의 생텍쥐페리가 했던 명언 중에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모아 목재를 수집하고 일을 분배하고 명령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들이 광활하고 끝없는 바다를 동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위기 속에서 지역공동체라는 화두를 가능성으로 변화시킬 강력한 유인책으로서의 비전 제시가 절실하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사랑하는 가족 또는 가까운 이웃과 함께 생활할 안락한 집이 있고 각자의 꿈과 비전을 실현시켜 주는 일을 통해 적정 수준의 소득을 얻을 수 있으며 소소한 재미와 낭만을 더해줄 주변 환경이 갖추어진 곳, 필자는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고 싶다.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기꺼이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이웃과 동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의향이 있다. 지역사회 활성화의 출발은 지역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욕구와 필요에서 출발한다. 그 욕구와 필요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기업의 참여동기를 발견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기업 역할, 기회 요인, 사회적 명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소통하려는 시도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진양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ESG지속가능센터 연구소장(yhjin@dlightlaw.com)
Copyright © 지디넷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라이트 ESG칼럼] 사라져가는 지렁이와 자연자본
- [디라이트 ESG칼럼] 테슬라와 사회적 자본
- [디라이트 ESG칼럼] SEC가 공시로 인적자본 정보 의무화한 이유
- 美, 삼성 반도체 보조금 6.9조원 확정…원안 대비 26% 줄어
- "그래도 가야돼" CES 향하는 中 기업들…비자 문제는 변수
- 美 체류 늘린 정용진, 트럼프 깜짝 만남 여부 관심↑
- [AI는 지금] 규제 갈림길 선 AI, 진화 속도 빨라졌다
- [1분건강] 폐암 환자 10명 중 4명은 비흡연자
- 과기정통부 "위암 등 12개 국민 질환 AI로 케어"
- 신사업 줄어드는 공공SW, 살길 찾아 나선 기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