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화요일에 바이든 때린 ‘언커미티드’발 태풍

정인환 기자 2024. 3. 8. 23: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0년 대선처럼 ‘비호감 대결’ 확정… 아랍계·청년층 유권자 중심 ‘언커미티드’ 운동, 1만 표 목표했는데 10만 표 넘기며 선전
미국 미시간주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가 치러진 2024년 2월27일 밤 디어본 지역에서 ‘언커미티드’ 운동을 펼친 풀뿌리 활동가들이 손을 붙잡고 춤을 추고 있다. 1만 표를 목표로 했던 ‘언커미티드’ 운동 진영은 10만 표 이상을 얻어냈다. REUTERS

미국 대통령선거의 판도를 결정하는 2024년 3월5일 ‘슈퍼 화요일’이 막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각각 당내 경선을 압도하며, 2024년 11월5일 치러질 대선의 공화-민주 양당 후보로 확정됐다. 일간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재승부(리턴매치)가 성사됐다”고 표현했다. 2020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누구를 덜 싫어하는가’에 승부가 달린 ‘비호감 대결’ 구도다. 달라진 것은 없을까? 트럼프 전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도 당내 갈등이란 불씨를 안고 있다. 본선에서 당락을 가를 경합주(스윙스테이트) 대결이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게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재승부 성사”

미국 중북부 미시간주 웨인카운티에 디어본이란 도시가 있다.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의 고향인 그곳에 지금도 포드자동차 본사(헨리 포드 2세 월드센터)가 있다. 자동차 대중화를 상징하는 ‘모델-T’가 디어본에서 불과 11㎞ 남짓 떨어진 미시간주 최대 도시 디트로이트의 공장에서 1908년 10월 양산에 들어갔다. 포드자동차는 디어본을 끼고 흐르는 로그강 연안에 폭 2.4㎞, 길이 1.6㎞에 이르는 거대한 부지를 마련해 1917~1928년 대대적인 공사를 벌었다. 건물 93개동이 들어선 거대한 자동차공장 단지인 ‘포드 리버루지 콤플렉스’다. 포드자동차가 거느린 최대 생산기지였다. 이후 미시간주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 됐고, 디어본은 그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동차산업 발달과 함께 레바논계 기독교도를 필두로 예멘-이라크-팔레스타인계 무슬림 이민 노동자의 유입이 꼬리를 물었다. 북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이슬람사원인 아메리카이슬람센터가 1963년 9월 일찌감치 디어본에 문을 연 것은, 현지에 자리잡은 무슬림 이민자 공동체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2003년 미국 침공을 피해 이라크를 떠나온 이민자들이 정착한 곳도 디어본이었다. 디어본은 비무슬림을 포함해 870만여 명에 이르는 미국 아랍계 주민의 ‘고향’ 격이다.

2024년 2월27일 미시간주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예비선거가 치러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각각 68%와 8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일한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후보는 26%를 득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유일한 경쟁자는 다른 후보자가 아니었다. 13%를 득표한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언커미티드·uncommitted) 운동이었다.

미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은 인구별로 각 주에 할당된 대의원을 해당 주에서 1표라도 앞선 후보가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치러진다. 대선 본선에서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해당 주에서 1표라도 앞선 후보가 독차지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다. 각 주에서 선출된 대의원은 7~8월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경선에 앞서 지지하기로 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게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전체 대의원단의 약 15%를 차지하는 이른바 ‘슈퍼 대의원’이다. 각 주의 당 지도부와 선출직으로 채워지는 슈퍼 대의원은 특정 후보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지지 후보를 결정할 수 있다. ‘언커미티드’ 표로 선출된 대의원도 마찬가지다.

‘언커미티드’ 표로 선출된 슈퍼 대의원

미시간주 예비선거를 앞두고 ‘미시간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단체가 꾸려졌다. 압둘라 하무드 디어본 시장과 라시다 틀라이브 연방 하원의원 등을 중심으로 ‘언커미티드’ 운동이 본격화했다. 틀라이브 의원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뉴욕주)과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1기 때인 2018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의회에 입성한 민주당 진보파의 대표주자다. 목적은 하나였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과 인도적 재난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인 지원에 골몰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경고’다. 민주당 소속인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않으면 트럼프 집권 2기에 표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했지만, 아랍계와 청년층 유권자를 중심으로 ‘언커미티드’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4년 2월21일 선거유세를 위해 방문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애초 ‘언커미티드’ 진영은 ‘1만 표’를 목표로 정했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따돌리고 미시간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15명을 독차지했을 때, 두 후보의 표차가 약 1만 표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언커미티드’를 선택한 유권자가 바이든 대통령이 얻은 표(61만여 표)의 6분의 1 수준인 10만1436표나 됐다.

디어본 지역은 어땠을까? 현지 일간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는 2월28일치에서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디어본에서 치른 경선에서 ‘언커미티드’ 진영이 압승을 거뒀다. 경선에 참여한 유권자 1만1340명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는 4526명(40%)에 그친 반면, ‘언커미티드’ 지지자는 6432명(57%)이나 됐다”고 전했다.

특정 주 전체에서 15% 이상을 득표하거나 특정 선거구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전당대회에서 본선에 나설 후보를 결정하는 대의원을 할당하게 된다. ‘언커미티드’는 미시간주 6번과 12번 선거구에서 17%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12번 선거구는 디어본이 포함된 틀라이브 의원의 지역구다. 이에 따라 ‘언커미티드’ 진영을 대표해 전당대회에 참석할 ‘슈퍼 대의원’ 2명이 선출됐다. 경선 개표가 마감된 2월27일 한밤에 ‘언커미티드’ 운동을 주도한 풀뿌리 활동가들은 손을 붙잡고 춤을 췄다.

15개 주와 1개 자치령(미국령 사모아)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치르는 ‘슈퍼 화요일’을 하루 앞둔 3월4일 <뉴욕타임스>가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48% 지지율을 기록하며, 바이든 대통령(43%)을 5%포인트 앞섰다. 세부 항목별 여론 역시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후보의 정책이 개인적으로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란 응답은 18%에 그친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란 응답은 40%나 됐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성별이다. 남성 유권자층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17%,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이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41%를 기록했다. 여성 유권자층에선 바이든 대통령 18%, 트럼프 전 대통령 39%로 격차가 근소하게 줄었다. 인종별로 보면, 백인(바이든 19% 대 트럼프 44%)은 물론 전통적 민주당 지지 기반인 아프리카계(바이든 17% 대 트럼프 26%)와 히스패닉(바이든 15% 대 트럼프 37%) 유권자층의 여론도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

2020년 바이든 압도적으로 지지한 청년층도 등 돌려

4년 주기로 치르는 미 대선에선 선거 때마다 20대 유권자는 3분의 1가량이 바뀐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29살 이하 청년층에서도 바이든 대통령(10%)은 트럼프 전 대통령(28%)에 크게 뒤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절대 안 된다’는 절박감이 새로 유입된 20대 유권자층에겐 없기 때문일까? 4년 전 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20대 유권자 가운데 3분의 1은 30대가 됐다. 그럼에도 30~44살 유권자층에서도 바이든 대통령(16%)은 트럼프 전 대통령(41%)에게 두 배 이상 뒤졌다. 이번 선거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닌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심판 구도로 치러질 것임을 알 수 있다.

미시간주에서 시작된 ‘언커미티드’ 돌풍은 슈퍼 화요일에 태풍으로 몰아쳤다. 미네소타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각각 18.9%와 12.7%의 유권자가 ‘언커미티드’에 표를 몰아줬고, △매사추세츠(9.4%) △콜로라도(8.1%) △테네시(7.9%) △앨라배마(6%) 등지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경고음이 크게 울렸다. 2020년 대선 때 콜로라도·매사추세츠·미네소타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앨라배마·노스캐롤라이나·테네시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승리한 바 있다. ‘언커미티드’ 유권자들이 본선 때 투표하지 않거나, 일부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로 돌아서면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3월5일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바이든 대통령에게 ‘언커미티드’란 숙제가 있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선 경쟁자였던 헤일리 후보에 대한 당 안팎의 지지 여론이란 산을 넘어야 한다. 슈퍼 화요일 직후 헤일리 후보는 공화당 경선 후보를 사퇴했다. 그는 3월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전국에서 쏟아진 성원에 깊이 감사한다. 이제 선거운동을 중단할 때가 됐다. 후회는 없다. 더 이상 대선 후보는 아니지만, 내 신념을 밝히는 것을 멈추진 않겠다.”

그는 끝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보수적 공화당원으로 살아왔고, 언제나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절대 대중을 추종하지 말고, 언제나 스스로 결단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공화당 안팎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표심을 얻어내는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달렸다.”

아직 트럼프 지지 발언 안 꺼낸 헤일리

그는 사퇴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면서 2023년 2월 대선 출마 선언 때 인용했던 구약성서 구절을 다시 꺼내들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신께서 너와 함께할 것이다.”(여호수아, 1장 9절) 그간 헤일리 후보는 ‘어차피 후보는 트럼프’란 당내 여론에 대해 “트럼프가 좋아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