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우리의 집에도 벌이
벌에 쏘이자 ‘결합’을 시도한다
앤드루 포터 ‘벌’(‘사라지는 것들’에 수록,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나는 아내를 잘 알고 이해한다. 그런 아내를 압박하면 아내를 잃을 거라는 사실도. 그러나 이런 ‘시험적 별거’는 나와 딸에게는 좋지 않은 시간이다. 딸은 동요하고 자신의 가정이 몹시 취약한 상태에 놓였다는 걸 아는 나는 벌집처럼 무거운 두려움이 자신을 흔들고 있다고 느낀다. 밀봉하지 않은 세탁실 벽과 아래쪽에 난 작은 구멍으로 이제 벌이 떼를 지어 드나든다. “작은 구멍, 떼를 지어 드나드는 벌들.” 나는 결국 벌에 쏘이고 딸을 차에 태워 아내가 머무는 아파트 앞으로 간다. 아내가 나올까. 이들은 서로의 어두운 곳에 대해, 원치 않는 것이 드나드는 작은 구멍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수 있을까.
아내를 기다리던 그날 저녁에 나는 가족실에서 딸을 감싸 안고 앉아 유리문 너머를 바라본다. 바깥은 어두워지고 그 속에서 진입로까지 윙윙거리며 몰려와 부녀를 두렵게 만들었던 벌들을 분간하기란 어렵다. 나를 취약하게 만들고 아내를, 가정을 취약하게 만드는 어떤 것. 세탁실 벽 주위를 느린 동작으로 선회하며 숫자를 점점 불려나가고 있을 그들. 그들을 사라지게 할 방법에 대해 가족은 이야기해야 한다. 단지 어디인지 알기가 어려울 뿐이지만 저 멀리 어딘가에 벌들이 있으니까. 밀쳐두고 외면하고 지연시키고 회피하고 덮어버릴 게 아니라. 나는 딸을 더 가까이 끌어당겨 안으며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 좀 걸었다. 벌이라는 상징의 쓰임과 작은 문제로도 크게 흔들려 버리곤 하는 가족 소설에 대해 더 생각해보려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집 골목에서 한 남자가 한 번도 열린 걸 본 적이 없는 그 집 담 옆 셔터를 살짝 들어올리곤 허리 숙여 들어가는 걸 보았다. 그리고 난 한눈에 알아보고 말았다. 순간처럼 열렸다 닫혀버린 그 셔터 안쪽에 쌓이고 또 쌓여 있는 내가 버린 책 묶음들을. 내 이웃은 그 책들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나는 ‘벌’이 수록된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을 영원히 갖고 있을 책들을 모아둔 책장에 단단히 꽂아두었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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