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파묘, 오컬트와 역사세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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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에서 오컬트 장르라는 거푸집 속에 인간의 실존적, 종교적 고뇌를 주조해 온 장재현 감독이 <파묘> 에서 또 한 번 빛과 어둠의 세계를 충돌시켰다. 파묘>
기독교와 무속, 동양과 서양, 빛과 어둠, 질서와 이성이 지배하는 상징계와 그 이면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전작들처럼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두 세계가 만나는 순간을 장르적 상상력으로 빚어내고 여기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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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3부작이나 나홍진 감독의 ‘곡성’ 같은 작품들 덕분에 오컬트 영화가 주류 장르라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호러 장르는 마이너 장르, B급 장르에 머물러 왔다. 심지어 1987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영화사에서 호러영화는 단 한 편도 제작되지 않았다. 이러한 단절 뒤에 한국 공포영화의 부활을 알린 것은 박광춘 감독의 ‘퇴마록’이다. ‘전설의 고향’류에 기댄 한국 전통 원귀영화와 거리를 두면서 ‘적그리스도-사타니즘’이라는 할리우드 오컬트 장르의 서사와 관습을 충실하게 번역한 ‘퇴마록’은 오컬트 장르를 한국이라는 역사적 시공간 안에 안착시키려 한 후배 감독들의 미학 실험에서 일정한 선행자 역할을 했다.
기독교적 구원과 퇴마의식, 무속인의 살풀이굿과 푸닥거리, 불교적 세계관과 밀교의식 등 장재현 감독의 영화에는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이 다채롭고 요란스럽게 뒤섞여 굉음을 낸다. 서로 등을 붙이고 있기에 만날 수 없는 두 세계, 만나서는 안 될 두 세계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얼굴을 마주보고 으르렁거릴 때 감독의 눈과 귀는 파열음과 곡소리 나는 곳을 향한다. ‘그것’ ‘험한 것’으로 통칭되는 존재들의 비명이 흘러넘쳐 초자연 세계의 봉인을 열고 현실세계로 넘어올 때 비명을 멈추는 방법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위로하여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것뿐이다. 그것을 구원이라 하든 퇴마라 하든, 굿이라 하든 상관 없다. 제의의 집전자들이 신부의 옷을 입든 무당의 옷을 입든 중요치 않다. 구원의 본질은 그들과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감독에게 구원은 정의이기도 하다. 정의는 연민의 결과다. 정의는 슬픔의 공감에서 출발한다. ‘파묘’를 보면서 세 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감독이 시종일관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스스로 인간을 치유하는 샤먼이기를 원한다는 것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의 기도를 듣고 싶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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