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YS를 있게 한 손명순
미국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는 전국을 돌며 남편의 뉴딜 정책을 홍보하고 348차례나 기자회견을 가졌다. ‘엘리너 행정부’라고 했다. 레이건의 부인 낸시는 적극적 국정 관여로 ‘여왕 낸시’로 불렸다. 카터의 부인 로절린은 국무회의까지 참석했다.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는 선거 캠페인 때 “한 명 값으로 두 명을 사라”고 했다. 모두 남편의 국정 동반자를 자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신군부에 항거해 단식 투쟁할 때 서울 아파트 단지에 이를 전하는 뉴스 전단이 뿌려졌다.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들은 “부인 손명순 여사 지시”라고 했다. 그는 외신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해 단식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경찰이 손 여사까지 잡아넣을 수는 없었다. YS의 민주화 투쟁 신화는 그렇게 퍼졌다.
▶1990년 3당 합당 때 YS의 측근들이 반발했다. YS는 “이 돌(머리)들아”라고 호통쳤다. 뛰쳐나온 이들을 손 여사가 붙잡았다, “저기 큰 돌(YS)을 작은 돌들이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고 설득했다. 화가 났던 측근들은 그만 웃고 말았다. YS가 청와대 부부 동반 행사에 혼자 연미복을 입고 갔다가 망신을 당하자 측근을 심하게 질책했다. 손 여사가 “아무 일 없었으니 괜찮다”고 다독였다. YS가 자기 방침을 어긴 측근에게 대로했을 때도 “충성한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막았다. 그는 누구를 만나도 환하게 웃었다. 40년간 상도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묵묵히 아침 시래깃국을 대접했다.
▶그는 사치와 거리가 멀었다. 청와대에 들어갈 땐 남편의 헌 운동화를 챙겨 갔다. 내복엔 고무줄을 새로 넣어 입었다. 청와대 식단도 칼국수 등 서민 음식으로 바꿨다. 경내에 직접 야생화와 쑥, 머위, 돌나물을 재배했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제대로 받은 적 없는 그는 청와대 들어간 지 1년 만에야 직접 월급을 수령하고 감격해했다. 신혼여행도 2011년 60년 회혼식 때에야 갔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아침마다 10여 개 신문을 읽고 독자 투고란도 챙겼다. 의경 구타 사고나 장애인 차별 기사 등을 남편에게 보여주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곧바로 시정 조치가 내려졌다. 국민 민원 편지에도 일일이 답했다. 청와대 하급 직원들 복지를 챙기고 청소원에게도 90도 인사했다. 인사나 국정엔 관여하지 않았다. ‘무홍보’ 지침에 동정 보도도 없었다. 해외 언론은 “내조 9단”이라고 했다. 그가 지난 7일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치권에선 “YS를 있게 한 진정한 동반자이자 현모양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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