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면 여전히 ‘섭섭한’ 힙합 영화와 다큐멘터리
힙합은 음악이지만 동시에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리고 힙합의 이러한 면모를 이해하기에는 영상 콘텐츠가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이미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영화 및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 작품들은 힙합의 뿌리와 맞닿은 흑인역사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고 힙합에 잠재된 코드와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힙합 영화와 힙합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마치 교과서 같았다.
그래서 준비해봤다. 놓치면 섭섭한, 아니 놓치면 안 될 힙합 시청각 교재들. 지난회에 이어 두번째 챕터다.
◆ 아트 오브 랩(Something from Nothing: The Art of Rap, 2012)
힙합 뮤지션 47인이 참여한 이 다큐멘터리는 랩의 라임, 기술, 플로우, 메시지 등에 대한 다양한 래퍼들의 생각을 담았다. 갱스터 랩의 선구자로 추앙 받는 아이스티(Ice-T)가 제작자로서, 또 작품에 직접 출연해 극을 이끌어가는 호스트로서 활약한다.
래퍼들 간의 진지하고 음악적인 대화를 보고 있다 보면 랩이 왜 시시껄렁한 지껄임이 아니라 존중 받아야할 언어 예술인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 에미넴, 닥터드레, 카니에웨스트, 스눕독, 런DMC, 아이스큐브, 더그E프레쉬, 빅대디케인, 큐팁 등이 참여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직접 비슷한 작품을 한국버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한국래퍼들과의 대화를 통해 랩의 예술성과 멋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할까.
그래서 제작하고 개봉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리스펙트>다. 도끼, 빈지노, 더콰이엇, 타이거JK, 엠씨메타 등 한국래퍼들과 필자의 예술적 대담이 담겨 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작품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 보이즈 앤 후드(Boyz N The Hood, 1991)
스파이크 리(Spike Lee)와 함께 90년대 초반 투쟁적 흑인영화의 흐름을 이끌었던 존 싱글톤(John Singleton) 감독의 1991년 작품이다.
‘흑인남성 21명 중 1명은 살해당한다. 그들 대부분은 같은 흑인남성에 의해 죽는다.’는 문구를 첫 장면에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에 사는 흑인의 삶’에 내내 집중한다.
‘게토’ 흑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성실한 태도가 탄탄한 구성과 맞물리며 의미와 재미를 모두 잡은 작품이다. 아이스큐브(Ice Cube)의 영화 데뷔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이스큐브의 솔로데뷔작 [AmeriKKKa’s Most Wanted]는 이 영화와 함께 들으면 좋을 앨범이다. 퍼블릭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로듀싱팀 봄스쿼드(The Bomb Squad)가 참여했으며, 동부와 서부의 색 사이에서 강렬한 메시지와 힘 있는 갱스터 랩을 구축했다.
스스로 여러 역할을 연기하며 흑인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고발한 스토리텔링 역시 인상적이다. 음악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 모든 면에서 힙합 역사에 남을 명작이다.
◆ 나스: 타임 이즈 일매틱(Nas: Time Is Illmatic, 2014)
2014년에 선보인 <나스: 타임이즈일매틱>은 나스(Nas)의 데뷔작 [Illmatic](1994), 그리고 이 앨범의 창작에 영향을 끼친 것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발매 후 20년 동안 이 앨범은 줄곧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거론되며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이 영화는 나스의 유년기로부터 시작해 [Illmatic]의 사운드와 가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다루고 있으며, 앨범의 음악적 성과는 물론 사회적 의미 역시 놓치지 않는다. 나스 본인과 앨범에 직접 참여한 이들, 그리고 나스의 가족이 출연해 이해를 돕는다.
이 영화는 힙합이 음악인 동시에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말해줄 것이다. 더불어 랩은 곧 시라는 믿음, 그리고 사회적 산물로서의 힙합이 그 어떤 음악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역시 증명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나스의 데뷔작 <Illmatic>은 힙합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이 앨범을 조금 긴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게토 흑인의 삶에 대한 치밀한 다큐이자 동시에 시적인 문학을, 힙합 장르의 고유한 작법만을 활용한 청각적 기술로 표현을 시도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쾌감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한 작품'.
또한 단순히 한 래퍼의 정규 앨범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며, 그 자체로 힙합의 아이콘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 스타일 워(Style Wars, 1983)
스타일 워는 1983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힙합이 처음 생겨난 직후 문화적으로 여러 분야가 구축되고 하나의 ‘현상’을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피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그래피티가 디제잉이나 래핑, 비보잉과 어떠한 연결고리를 지니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당대 내로라하는 그래피티아티스트가 총출동했고 당시의 유행도 간접경험해볼 수 있다. 그래피티에 대한 존중을 담은, 힙합 초창기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스타일워의 사운드트랙에는 슈가힐갱(The Sugarhill Gang), 그랜드마스터플래쉬 앤드 퓨리어스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 등 80년대 초반 유명했던 래퍼들이 참여했다.
특히 고인이 된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힙합뮤지션 람엘지(Rammellzee)의 이름 역시 볼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의 그래피티에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힙합뿐 아니라 80년대 초반 거리에서 유행했던 음악을 다수 접할 수 있는 앨범이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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