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에 조아리는 전임자 용납 못해”...독기 품은 바이든, 대선출정식 방불

강계만 특파원(kkm@mk.co.kr) 2024. 3. 8. 19: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美의회 국정연설
공약 쏟아내며 출정식 방불
민주 의원들 “4년 더” 연호
부자 증세해 재정적자 해소
낙태권 보호·이민 정책 고수
임시 항구 지어 가자 지원
2021년 의회 점거 사태 언급
“전임자 이런진실 묻으려 해”
7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례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대선 출정식 격인 이번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해 강한 어조로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UPI = 연합뉴스]
“Four more years(4년 더)! Four more years!”

7일(현지시간) 저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임기중 마지막 국정연설을 위해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 입장하자, 민주당 소속 상·하원 의원들은 박수를 치며 연호했다. 그는 트럼프 캠프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 맞서 ‘미국의 위대한 컴백’을 부각시켰다.

차기 정부의 공약을 줄줄이 읊으면서 68분간 이어진 국정연설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대선에서 재대결하는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해 강한 어조로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다만 트럼프라는 이름을 전혀 부르지 않고 ‘my predecessor(나의 전임자)’라고 13차례나 언급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국내외에서 동시에 공격받는 역사상 전례없는 순간에 직면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지역까지 넘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을 지낸 나의 전임자는 ‘푸틴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하라(Do whatever the hell you want)’고 말하면서 머리를 숙였다. 말이 안되고 위험하며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에게서 물러서거나 고개 숙이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을 포함한 안보 예산안의 초당적인 처리를 미 의회에 요청했다.

이어 지난 2021년 1월 6일 의회 점거 폭력사태를 상기시키며 “반란군들이 의사당을 습격해 민주주의에 비수를 꽂았다. 그런데도 제 전임자는 이런 진실을 묻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선의 뜨거운 감자가 된 여성의 낙태 선택 자유권도 부각시키며 여성 표심을 자극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되다가 2022년에 폐기된 여성 낙태권리 보호판결인 ‘로 대 웨이드’를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본인의 약점으로 지목된 불법이민 정책과 관련해서는 남부 국경정책 강화법안 당위성을 설명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언급한) ‘이민자들이 우리 민족 피를 중독시킨다’는 식으로 저는 이민자를 악마화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자 증세 공약을 거듭 꺼내 들었다. 그는 대기업에 공정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면서 법인세 최저한세를 기존 15%에서 21%로 인상하고 억만장자에게 최소 25% 세율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로 연방 적자를 3조 달러(3985조 원) 줄일 것이며, 이는 공화당의 감세정책과 대조적이라고 각을 세웠다. 처방약 인하, 향후 2년간 주택담보대출 월 400달러 보조금 지급, 모든 아동에 대한 유치원 교육 제공 등 민생 공약도 대거 내놓았다.

대중(對中) 전략과 관련해서는 중국과 충돌이 아니라 경쟁을 원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고 중국의 불공정 경제관행에 맞서겠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중국 무기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했다”며 “저는 중국에 강경한 발언을 했지만 전임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또 “태평양 지역에서 파트너십과 동맹을 강화했다”면서 한국을 포함해 인도, 호주, 일본, 태평양 도서국 등을 열거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을 위한 물과 식료품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임시 부두를 지중해에 건설할 계획도 내놓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인질·휴전 협상 진전을 촉구하면서 임시항구가 식량과 물, 의약품, 임시 보호시설을 운반하는 선박들을 수용할 것이며 이를 통해 “매일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인도적 지원의 양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 지상군 파병은 없다(no US boots will be on the ground)”며 미군이 가자지구로 직접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끊이지 않는 고령 논란도 직접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문제는 우리의 나이가 아니라 우리 생각이 얼마나 오래되었느냐”라며 “증오, 분노, 복수, 보복은 가장 낡은 생각 중에 하나”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직 할 일이 많다. 내가 완수할 수 있게 해달라”며 강력한 재선승리 의지를 보였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바이든 대통령 연설 내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하원 여성 코커스 소속인 민주당 의원들은 여성의 낙태권리 보호를 강조하기 위해서 흰색 옷을 단체로 입고 나왔다.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연설 내내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바이든 대통령 뒷자리에 앉은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수시로 고개를 저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공화당 소속 데릭 반 오든 하원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이라고 외쳤고, 일부 공화당 연방의원들은 국정연설 도중에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공화당 강경파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트럼프 상징인 빨간색 MAGA 모자를 쓰고 자리를 지켰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