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식모·가정부·메이드… 자본주의·인종주의 다층적 모순의 변주

김용출 2024. 3. 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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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신분제 해체로 사라진 노비
1930년대 그 계보 이었던 하녀 28%
의식주로 임금 대신하던 값싼 노동력
현대에도 하위주체의 노동 영역으로
최근 동남아 개도국 여성들의 몫으로
불평등 계약관계의 변형 면면히 탐구

하녀/소영현/문학동네/1만8000원

“어멈노릇이란 말할 수 없이 고되답니다. 하루 종일 한번 앉아보지도 못하는 것이 보통인데, 게다가 산더미 같은 빨래나 종일 하고 나면 전신만신은 맥이 풀려 송장같이 되고 만답니다. 그런데다가 그 보수라고는 불과 3원 혹은 4원인데, 그야말로 인심 좋은 집을 만나야 5원가량밖에 안된답니다. 얻어먹는다는 것이 보수 중에 일부분이지마는, 먹는 것이라고는 대개 주인이나 손님이 먹다가 남은 것 그중에도 좀 웬만한 것은 다 치워버리고 거진 개돼지 밥에 들어갈 만한 것들이나 어멈들 차지가 되고 만답니다. 처음에는 어떤 고생이라도 참고 돈이나 모아 가지고 다시 정든 고향으로 가서 잘 살아보리라 하였더니 사실상 7년을 지내고 보니 손에 처진 것은 쓰린 눈물밖에는 모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1928년 3월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의 한 대목으로, 집 주인에 따라서 조금씩 처지가 달랐지만, 하녀들은 대체로 새벽닭이 울 때부터 밤늦도록 온갖 종류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밥반찬, 빨래, 다듬이질, 다림질, 바느질, 물긷기, 장작 패기, 장 봐오기, 방 치우기, 요강 부시기, 불 때기, 아궁이 파내기, 양칫물 떠 바치기, 세숫물 버리기….
옛날 신문기사부터 소설작품까지 다양한 아카이빙을 통해서 신분제 폐지 이후부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온 하녀의 면면을 탐색한 책이 나왔다. 저자는 21세기에도 ‘하녀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 세계일보 자료사진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4년, 김홍집 내각이 주도한 군국기무처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사농공상과 노비, 천민 등으로 구분된 신분제도를 폐지했다. 1801년 공노비 해방과 1886년 노비 세습제 폐지를 잇는 흐름이었지만, 신분제가 오랫동안 유지돼온 한국 사회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신분제가 해체되면서 대대손손 특정한 가문이나 집에 매여 일해온 여종을 비롯해 노비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각 가정에서 여종이 수행했던 역할, 즉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비롯한 각종 허드렛일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정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여종이 수행한 역할을 신분적 주종관계가 아닌 근대적 계약관계에 근거해 대신 해야만 했다.

바로 하녀나 식모가 근대 이후 남의 가정에서 일종의 계약관계에 의해 가사일과 돌봄 등 각종 허드렛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하녀는 이후 시대와 계약 형태 등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행랑어멈, 안잠자기, 어멈, 할멈, 유모, 침모, 오모니, 드난살이….

하녀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조선에 살던 일본인 가정에서 하녀 채용이 증가하면서부터다. 러일전쟁 이후 경성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려는 일본 여성들의 입국이 늘어났다. 경성의 일본인 가정 안에서 가사 일을 전담하는 일본의 하녀, 이른바 ‘조추(女中)’였다.

1910년대 말이 되면 일종의 근대적 계약관계인 ‘행랑살이’가 증가했다. 당시 유산 계급은 노비나 하인을 두는 일이 부담이 커지자 행랑 한 칸을 내주는 대신 추가 비용 없이 실질적으로 하인처럼 부릴 수 있는 행랑살이를 선호했다.

남의집살이를 하면서 가사를 전담하는 일이 근대사회의 직업으로 분류된 것은 1920년대 전후의 일이다. 즉, 경성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상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하는 반면 농촌은 피폐해지면서 농촌 유민들이 도시 빈민으로 대거 유입됐다. 이때 학력이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많은 농촌 여성들은 무더기로 도시 가정의 하녀가 된 것이다.

이 즈음, 소설을 비롯해 각종 문학 및 예술에도 하녀의 모습이 잇따라 등장했다. 예를 들면, 전영택의 1925년 소설 ‘화수분’은 행랑아범 가족의 참혹한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염상섭의 소설 ‘사랑과 죄’의 주인공 순영,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에 나오는 ‘귀돌 어멈’과 ‘만돌 어멈’ 등도 남의집살이 여성이었다.

남의집살이 여성들은 1930년 조선총독부의 국세조사 등을 통해서 가시화했다. 1930년 조선총독부가 진행한 ‘국세조사’에 따르면, 116만명에 이르는 도시 노동자 가운데 ‘날품팔이’가 40퍼센트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고, 하녀가 다수인 ‘가사사용인’이 무려 31만9000명, 27.6퍼센트로 그 뒤를 이었다.

하녀나 식모는 이처럼 방 한 칸만 남아 있으면 들였다고 할 정도로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되면서 신분제 폐지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1960~70년대를 거치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식민지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 전후, 한국전쟁기, 1960~70년대 한국 사회에서도 특별한 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성이 잠정적으로 ‘하녀’였고, 하녀가 될 위험에, 아니 그럴 가능성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녀는 신분해방이 이뤄진 시대의 현대판 노예에 다름 아니었다.”
소영현/문학동네/1만8000원
문학평론가이자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교수인 저자는 책 ‘하녀’에서 옛날 신문기사부터 김동인과 염상섭, 공지영, 황정은 등의 소설작품까지 다양한 아카이빙을 통해서 신분제 폐지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1960~70년대를 거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온 하녀의 면면을 연대기처럼 고찰한다. 아울러 가부장제와 계층, 섹슈얼리티, 범죄자 프레임, 노동 문제 등 다양한 각도로 하녀를 분석하면서 배제되고 낙인찍혀온 그들을 재조명하는 한편, 21세기 또 다른 이름으로 이어지는 ‘하녀의 계보’를 추적한다.

현대 사회에도 과연 하녀는 존재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름만 바뀐 채 하녀의 일은 하위 주체의 노동으로 이어져왔다고 분석한다. 즉 베이비시터, 요양보호사, 등하원도우미 등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 간병노동을 도맡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 존재했던 하녀의 변주라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전 세계에서 타인을 위한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하녀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에서 온 유색인 여성 가사노동자다. 이들 ‘메이드’들은 오늘날 가사노동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인종주의가 다층적으로 연결돼 작동하는 모순의 장임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에 삶에 대해 우리가 하는 커다란 오해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삶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착각하는 일일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란 이전의 물질적 일상의 폐기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가 재배치된 일상에 가깝다.”

책은 하녀의 역사나 다층적 측면의 분석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또 다른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논쟁적이다. 다만, 다분히 탐색적 연구인 탓에 일부 내용이 중복되고 산만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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