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시즌 개막인데 FA 미아 되나, "스넬 기분 이해해, 매우 외로울 것" 11년전 로시는 QO의 시범케이스였다

FA 블레이크 스넬. AP연합뉴스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의 카일 로시. A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메이저리그 FA 역사상 계약 시점이 가장 늦었던 대표적인 선수로 카일 로시가 꼽힌다.

그는 미네소타 트윈스, 신시내티 레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밀워키 브루어스 등 메이저리그 6팀에서 활약하며 통산 147승143패, 평균자책점 4.40, 1615탈삼진을 기록하고 201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강력한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제 몫을 해주는 중간급 선발로 롱런했다고 보면 된다. 로시는 1978년 생으로 캘리포니아주 해밀턴고교 3학년이던 1996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해 29라운드에 시카고 컵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데뷔는 2001년 미네소타에서 했다.

그가 FA 시장에서 마음 졸이며 하염없이 계약을 기다린 것은 2012년 시즌을 마치고서다. 그는 그해 세인트루이스에서 33경기에 선발등판해 211이닝을 던져 16승3패, 평균자책점 2.86, 143탈삼진을 기록했다. 다승, 투구이닝, 평균자책점, 탈삼진 등 모든 부문서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7위에 올랐다.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였기 때문에 '대박'은 따논 당상으로 여겨졌다. 보라스는 당시 4년 6000만달러 계약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처음 도입된 퀄리파잉 오퍼(QO·당시 1330만달러) 때문이었다. QO를 거절한 FA와 계약한 구단이 원소속 구단에 다음 연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양도해야 한다는 게 이 제도의 당시 핵심이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의 카일 로시. AP연합뉴스

구단들이 그에게 지갑을 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게다가 로시는 앞서 세인트루이스 시절 오랜 기간 팔 부상을 겪은데다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1라운드 유망주를 포기할 만큼 매력적인 FA는 아니었다.

결국 로시는 그해 겨울을 나고 2~3월 스프링트레이닝을 거쳐 시즌 개막 일주일을 앞둔 3월 26일(이하 한국시각) 밀워키와 3년 3300만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목표로 했던 계약기간을 1년 포기하고, 평균 연봉에서는 400만달러를 손해봐야 했다.

당시 보라스는 "QO는 메이저리그에 악영향을 주는 제도다. 메이저리그 발전을 저해하고 전력을 강화하려는 구단의 행위를 가로막는다. 구단은 원하는 선수와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제도를 재검토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번 FA 시장에서 11년 전 로시와 똑같은 상황을 견디고 있는 투수가 바로 블레이크 스넬이다. 그는 작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탬파베이 레이스 시절인 2018년에 이어 역대 7번째로 양 리그서 최고 투수의 영예를 안은 투수가 됐다.

로시는 지난 7일 USA투데이 밥 나이팅게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친구 기분을 십분 이해한다. 그건 아주 힘든 일이다. 지금 쯤이면 캠프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고 싶을 것이다. 팀에 얼른 적응하고 싶을 것"이라며 "그러나 자신의 가치도 알고 있을 것이다. 기다림은 매우 외로운 것(The wait is very lonely)"이라고 밝혔다.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인 2016년의 카일 로시. AP연합뉴스

이어 그는 "아침에 일어나 좌절감을 느끼는 날들이 있다. 분노하는 날들도 있고, 실망감이 가득한 날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을 느끼는 날들도 있다"면서 "우리는 수 년 동안 팀의 소유물로 일을 한다. FA를 목표로 기다린다. 그런데 대부분의 팀들이 나와 얘기하기를 꺼린다.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지만, 그건 힘든 일이고 애를 태우는 일"이라며 11년 전을 회고했다.

스넬의 에이전트 역시 보라스다. 뉴욕 양키스가 지난 1월 6년 1억5000만달러를 제시했다가 거절당하자 지난달 초 6년 1억6200만달러로 조건을 높였다. 그러나 역시 거절이었다. 보라스는 9년 2억7000만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키스 입장에서는 사치세가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지만, 내년 드래프트 2라운드와 5라운드 지명권, 국제 보너스풀 50만달러를 양도하면서까지 스넬에 거액을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넬은 샌디에이고 구단의 QO를 거절한 FA다.

로시는 "난 QO 제도의 시범 케이스였다고 생각한다. 구단들은 웬만하면 팀 전력을 높여 줄 FA와 계약하는 것보다 드래프트 지명권이 더 가치 있다고 본다. 스넬에게 큰 돈을 주고 지명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가치만큼의 몸값을 받아내기는 힘들다"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설명했다.

블레이크 스넬은 양 리그에서 모두 사이영상을 수상한 역대 7번째 투수다. AP연합뉴스

FA 조던 몽고메리. AP연합뉴스

스넬은 두 번의 사이영상을 받았지만,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이 딱 그 두 번 뿐이다. 내구성이 떨어지고 기복이 심하다는 게 약점이다. 그러나 스넬은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시는 "선수를 과소평가하고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팀들이 있다. FA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고도 평가절하되고 궁지에 몰리게 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20~21일 서울시리즈로 열린다. 본토 개막전은 29일이다. 스넬 뿐만 아니라 조던 몽고메리도 미계약 신분이다. 뉴욕포스트가 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스넬은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LA 에인절스, 몽고메리는 보스턴 레드삭스, 텍사스 레인저스와 얘기 중이다.

과연 언제 결론이 날까.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