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6가지 물질<모래·소금·철·구리·석유·리튬>, 미래 패권도 좌우한다

정혜진 기자 2024. 3. 8. 17: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유리패권' 중요 자원이던 모래
오늘날엔 반도체의 핵심 역할
소금사막서 배터리 원료 얻고
탄소 배출하며 강철 만들지만
생산국 아닌 선진국들이 혜택
6대 물질의 공급망까지 장악
[서울경제]

실리콘밸리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을 둘러싸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를 넘어서기 위해 구글이 투자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은 최신 AI 모델 ‘클로드3’를 공개했다. 개발자들은 물론 평범한 일반인들의 관심사도 더 고도화된 AI 기술 등 ‘비물질의 세계’를 향한다.

하지만 ‘물질의 세계(원제 Material World)’의 저자는 이렇게 꼬집는다. 실리콘밸리가 물질 세계를 의식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날 반도체가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영국 스카이뉴스의 경제전문기자인 에드 콘웨이는 ‘물질의 세계’에서 세상을 이미 바꾸고 미래를 바꿀 6대 물질로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을 선정하고 이 기원과 앞으로의 미래를 추적한다. 선물 거래소에서 실시간 가격 현황으로만 지켜보는 원재료들을 추적하기 위해 영국 산업혁명의 동력이 된 웨일스 포트탤벗 제철소를 비롯해 호주 필바라의 철광석 광산, 칠레 아타카마 소금사막의 광산까지 직접 발로 뛰었다.

어디에나 널려있는 듯한 모래는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을까.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영국 병사들은 ‘유리 기근’을 겪었다. 당시 정밀 유리 기술을 모두 독일 회사 자이스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독일과 전쟁을 벌이게 된 것. 당시 영국 육군 원수 로버츠경은 쌍안경, 오페라 안경, 망원경을 부대에 기증해달라는 전례 없는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리 제조업은 한 시대의 경제 대국을 결정했다. 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16세기 네덜란드, 18세기 영국 19세기 이후 독일이 유리 패권을 가져갔다. 이 유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원은 모래다. 모래는 간척 등을 통해 국경을 바꾼다. 영국 군수산업의 핵심 기지였던 로칼린 석영모래 광산은 이제 전기차 생산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탄화 규소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반도체에도 모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모래에서 나온 용융실리카는 포토마스크 공정에서 큰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패권국의 이동이 모래, 소금, 강철 등 주요 자원의 확보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체셔 소금’은 대영제국의 지배력의 상징이었다. 영국산 소금은 세계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지만 이후 식민지에서의 체셔 소금 강매가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식민지에서도 역풍을 맞게 되면서 영국의 소금 산업 쇠퇴와 함께 대영 제국 역시 몰락의 길을 겪었다.

칠레의 이타카마 소금사막과 볼리비아의 유우니 소금 사막은 이제 배터리의 필수 자원인 리튬을 생산하고 있다.

저자는 긴 공급망의 시작점인 자원의 보고를 직접 돌면서 자원들의 생산과 이를 향유하는 데 큰 불평등이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선진국에서 개개인이 평생 사용하는 강철은 15톤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이는 도로를 깔거나 안전한 주거지를 마련하거나 전자제품 등을 활용하는 데 쓰인다.

반면 중국의 평균 소비량은 절반 이하인 7톤이고 이 자원들이 포진해 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1톤 미만에 불과한 수준이다. 강철은 생산 과정에서 전 세계 온실 가스의 7~8%를 배출하지만 정작 이 혜택을 누리는 곳은 생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선진국이다. 저자는 국가 간 소득 격차는 이야기하지만 실리콘, 비료, 구리, 강철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물질의 세계는 균형이 이뤄질 때는 누구도 각 물질의 중요성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막상 부족해지면 지구 반대편의 전혀 무관해보이는 다른 공급망에 타격을 준다. 냉전시대 미국은 각 자원들을 경쟁적으로 비축했지만 이후 2020년대에 이르면서 그 비축량도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 이 틈을 파고든 건 중국이다. 중국은 오늘날 전 세계 구리 공급량의 절반을 제련하고 있고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적인 리튬과 코발트, 망간, 니켈을 상당 부분 확보했다. 물질의 주도권을 따라가다 보면 공급망과 지정학 위기 때 패권이 어디로 흘러갈 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