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연구인력, 파운드리 후발주자 인텔 '집중 표적' 됐다
"산업포장 받은 인재마저…"
美기업 유혹땐 미련없이 직행
기술유출 땐 벌금 최대 65억
처벌기준 강화한다지만
'걸려도 남는장사' 인식 여전
국가적인 인재전략 세워야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우리나라 기술 인재를 빼가려는 인력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뿐 아니라 자동차와 2차전지, 방위산업에서까지 전방위적인 인재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주로 중국으로 향하던 유출 경로가 최근엔 미국·유럽으로 확대되면서 한국의 기술 우위가 순식간에 소실되는 '기술 싱크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공개한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전체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사건은 최근 5년간 96건으로 집계됐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고 이어 디스플레이 16건, 전기전자 9건, 자동차 9건 등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피해 규모만 26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적발된 건수도 2019년 14건에서 2023년 23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인재 유출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사인 마이크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라이벌'인 인텔로도 삼성전자 출신 엔지니어 상당수가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에서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스탠더드 셀 디자인을 담당했던 엔지니어 A씨는 2021년 7월까지 삼성전자에서 일하고 퇴직한 뒤 같은 해 8월부터 인텔로 자리를 옮겨 인텔 파운드리에서 근무 중이다. 스탠더드 셀은 반도체 칩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말한다.
역시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지난해 말까지 일했던 B씨도 삼성전자를 퇴직한 후 인텔 파운드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 재직 당시 14㎚ 파운드리 공정 양산 등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삼성전자 출신 C씨와 SK하이닉스 출신 D씨는 국내 기업에서 낸드 사업부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각각 2018년과 2021년에 마이크론으로 이직했다. C씨는 마이크론 D램·낸드 사업부로 직행했다. 핵심 인재 유출은 심각한 기술 유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전 임원 등이 반도체 공장 도면을 빼돌린 뒤 중국에 복제 공장을 설립하려고 시도하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또 다른 국가산업의 한 축인 자동차에서도 기술 유출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기업과 국산화에 성공한 수소차 연료전지 핵심 부품인 GDL(Gas Diffusion Layer·기체확산층) 기술이 협력사에 의해 유출되는 피해를 입었다. 현대차에서 정년퇴직한 직원이 2020년 현대차 1차 협력사에 재취업하기 위해 GDL 견본과 첨가물 함량 정보 등을 빼돌렸고, 해당 협력사는 이를 미국 기업에 유출했다.
배터리업계도 영업 비밀 누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에서는 임원급 직원이 자문 중개 서비스 업체를 통해 2차전지 연구개발 동향과 생산설비 현황 등 영업 비밀을 누설한 피해가 제기됐다. 해당 직원은 LG에너지솔루션에 재직하던 당시 중개 업체로부터 총 9억8000만원을 수취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와 SK온은 양사의 핵심 기술 연구개발을 맡은 임직원 5명이 중국 배터리사 에스볼트에 배터리 셀 도면 등을 전달한 혐의로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각 사 재직 당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영업 기밀을 촬영했다.
전방위적인 유출이 계속되자 정부는 문제로 지적된 '솜방망이' 처벌 기준을 무겁게 만들기로 했다.
정부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통해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현행 15억원 이하에서 최대 65억원으로 올리고,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3배에서 5배로 확대하는 등 처벌 강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아직 기술 유출 범죄를 억제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몰수나 추징 확대 등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신속한 결정을 위해 일본이나 대만처럼 기술 유출 사건만 다루는 전문 법원이나 전담 재판부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찬종 기자 / 문광민 기자 / 김희수 기자 /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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