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핵심은 배당확대라는데 왜 지주회사 주가는 지지부진? [투자뉴스 뒤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실망으로 일단락 되는가 했지만 금융당국이 재차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다시 한 번 국내 증시의 도약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업 본연의 가치가 증대되면서 주가도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건 장기적인 안목에서 봐야하는 문제지요.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주가가 뛰려면 그간 소홀했던 주주가치환원이 적극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 및 소각 확대입니다. 자사주는 국내와 미국의 제도적 차이 때문에 한국 증시에선 매입만으로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반드시 소각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에 대해선 앞서 '[투자뉴스 뒤풀이] 자사주, 매입보다 소각이 더 중요한 씁쓸한 이유'(2022.06.10)에서 자세히 소개해 드렸습니다)
주주환원에 적극 나서면 주주들은 즉각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으니 주가에 도움이 됩니다. 주식을 많이 들고 있을 수록 그 혜택이 커지죠. 때문에 지주회사들이 밸류업 프로그램 소식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가도 소식이 알려진 초반에 제법 뛰었죠.
지주회사는 계열사 지분을 거느리면서 지배구조의 상단에 위치한 회사입니다. 별도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지주회사 노릇을 하는 사업지주회사와 오로지 지분만 보유한 순수지주회사로 나뉘지만 큰 차이는 없기에 이 글에서는 순수지주회사를 그냥 지주회사라 칭하겠습니다.
이런 지주회사는 별도의 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주요 수익 원천이 계열사 배당입니다. 브랜드 사용료(로열티), 건물 임대료 등도 있지만 배당이 핵심입니다. 때문에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배당이 확대된다면 지주회사는 당장 수익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가는 지지부진한건가요?
일단 지주회사가 왜 우리나라에 확산되었는지, 무슨 장점이 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지주회사 주가가 별로 재미가 없는 구조적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주회사는 지배구조의 상단에 위치해서 여러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해 자회사, 손자회사 등을 지배하는 회사입니다. 때문에 지주회사를 꽉 틀어쥐고 있으면 여러 회사를 손쉽게 지배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과거 우리나라에선 소수 지분을 가진 재벌 총수의 권한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에 호의적이지 않았고, 재벌그룹은 대신 순환출자 구조로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재벌총수가 A기업의 대주주가 돼 A기업을 지배하고 A회사는 B회사를, B회사는 C회사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다시 C회사는 A회사 지분을 취득해 지배합니다. 이렇게 하면 A회사만 지배함으로써 전체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1990년대말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발생합니다. 연결고리로 이뤄진 순환출자 형식은 A,B,C 가운데 어느 한 기업이 망해버리면 끊어지게 됩니다. 재벌 구조가 와해될 수 있는 겁니다. 때문에 많은 재벌그룹들이 부실해진 계열사를 돕기 위해 부당지원, 편법계약 등을 맺었다가 동시에 와르르 무너지게 됐습니다.
마치 계곡물이 불어났을 때 여러 명이 손을 잡고 건너려다가 중간 어느 한명이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면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지주회사가 대안으로 주목 받게 됩니다. 지주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지배구조 파악이 쉽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죠.
무엇보다 지주회사와 계열사 간 지배관계는 있지만 계열사 간 직접적 고리는 없습니다. 어떤 계열사가 썩었다면 그곳만 도려내면 되는 것입니다. 지배구조가 훨씬 투명할뿐 아니라 안정적이기도 한 것이죠.
또 각 계열사는 독자적인 법인이기 때문에 책임경영을 하게 되고, 투자자들은 각 계열사의 업무 성과와 사업 방향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주회사 구조의 큰 장점입니다. 물론 이런 구조를 갖고 있다고 다 지주회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지주회사로 인정 받기 위한 요건이 뚜렷히 명시돼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비상장 자회사인 경우 지분이 50% 이상이어야 하고 상장 자회사라면 30% 이상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많은 지주회사들의 사업보고서를 열어 보면 대부분 계열사 지분이 30%대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주회사는 계열사 지분을 소유한 형태기 때문에 재무제표가 아주 간단합니다. 재무상태표상 자산(asset)에는 계열사 지분 보유분이 대부분입니다. 지주회사가 돈 쓸데가 많지 않을테니 부채(liability)는 있을 게 거의 없고, 자본(equity)엔 이익잉여금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손익계산서를 보면 역시 심플합니다. 주요 수익원은 계열사가 보낸 배당과 그룹 이름 사용에 따른 로열티(브랜드 사용료) 그리고 보유한 건물과 부동산을 각 계열사들이 쓰는데 따른 임대료 수익 정도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지주회사의 이익에 배당이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왜 배당 확대가 중심인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지주회사 주가는 별다른 매력을 뽐내지 못할까요?
그 전에 지주회사의 이론적 적정 가치는 어떻게 산출되는지 한번 보죠. 어렵지 않습니다.
지주회사의 주요 자산인 각 계열사 지분의 시장가치(=계열사 시총 x 지분율 + 경영권 프리미엄)에 보유한 부동산 가치와 현금 등을 더하고 금융부채는 빼면 됩니다. 그러면 순자산가치(Net Asset Value)가 나오죠. 이게 적정한 지주회사의 시가총액입니다. 이걸 실제 현재 지주회사 시총과 비교해서 매수/매도 여부를 판단하면 됩니다.
여러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보면 지주회사의 적정 주가와 실제 주가 간 괴리율은 50%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 괴리율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단순히 '적극 매수'라고 추천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지주회사가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지주회사가 거느린 각 계열사들이 대부분 상장돼 있단 것입니다. 상장이 돼 있으면 각 계열사 각각의 가치가 이미 시장에서 평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장 계열사 지분은 법적 요건인 30%를 간신히 충족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미 상장돼 있는 계열사 지분을 30%정도 갖고 있단 이유로 지주회사가 계열사 시장가치를 인정 받기 힘듭니다. A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이 유망하고 이익이 잘 나서 주식을 사고 싶다면 그냥 A주식을 사면 됩니다. 굳이 지주회사 주식을 살 필요가 없겠죠.
이러다보니 지주회사의 이론적 가치평가에 따른 추정 주가와 실제 주가간 괴리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지주회사 구조가 일찌감치 정착된 미국 기업들과 가장 크게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의 지배구조를 한번 보죠. 지주회사 구조만 보면 우리나라 지주회사와 다를 게 없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상장한 회사가 지주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 딱 하나뿐이란 것입니다. 계열사는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상장은 딱 하나만 합니다. 또 대부분 지분율이 100%입니다.
그러니 버크셔해서웨이가 거느린 많은 기업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은 버크셔해서웨이 주식으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계열사들이 폭풍 성장을 하든 곤두박질치든 그 기업의 가치들은 버크셔해서웨이란 지주회사의 주식가치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구글도 생각해보죠. 구글 계열사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식시장에서 살 수 있는 구글 주식은 지주회사인 알파벳 단 하나입니다. 모든 계열사 가치가 최상단인 지주회사로 모이게 되고 투자자는 간단히 그 지주회사 주식을 사는 것으로 투자 고민을 덜 수 있습니다.
만약 상장사인 알파벳이 계열사 가운데 가장 잘 나가는 구글을 따로 상장을 시켰다고 생각해 보죠. 알파벳 주식을 사겠습니까, 구글 주식을 사겠습니까. 당연히 구글 주식을 사겠죠. 그럼 알파벳 주가는 빠질 겁니다.
이것이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해 내리고 상장시키자 LG화학 주가가 디스카운트된 이유입니다. 지분구조상 여전히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을 지배하고 있고, 때문에 연결재무제표상 LG에너지솔루션의 이익이 그대로 LG화학으로 끌어올려집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선 LG에너지솔루션으로 투자자들이 몰려가지 LG화학에 눈길을 주지 않게 됩니다.
포스코가 철강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자회사로 내리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는 자회사가 된 포스코를 절대 상장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 우리나라 지주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율이 30%수준인 것도 대부분 100%인 미국 지주회사와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지분율이 100%면 사실상 한몸입니다. 지주회사와 각 계열사 간 이견이 발생할 게 없고 이익상충의 문제는 원천봉쇄됩니다.
하지만 지분율이 30%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나머지 70% 지분을 가진 주주가 있는 계열사와 지주회사 간 이익이 꼭 동일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익상충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소수의 재벌총수가 지주회사 구조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주주가치가 이론상 내재가치를 온전히 반영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배당이 확대되고 그로 인해 지주회사 주가가 일정 부분 상승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크게 벌어진 괴리율을 좁히기 위해선 우리나라 지주회사 구조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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