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운용 "고려아연, 배당 높여도 신사업 무리없어"
고려아연 정기주총서 이사회 안건에 반대할 것
"누적 현금+향후 순이익으로도 미래 투자 가능"
KCGI자산운용이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 앞서 기관투자자 중 처음으로 이사회가 제시한 안건에 공개적인 반대입장을 밝혔다. 행동주의펀드 특유의 주주제안 등을 동반한 본격 참전은 아니다.
다만 고려아연은 이사회와 최대주주간 주총 표대결이 예고된 회사라는 점에서 KCGI운용의 입장 표명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앞서 고려아연 이사회는 결산배당금 주당 5000원과 함께 신주 발행을 외국 합작법인만 대상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정관 삭제를 주총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에 최대주주 영풍 측은 배당금을 1만원으로 올리고 정관 변경 안건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주총 표대결을 예고했다. ▷관련기사: 고려아연, 경영진vs최대주주 정면충돌…주총 표대결 전망은(2월 29일)
KCGI자산운용은 지난 5일 비즈워치와 만나 고려아연 이사회의 안건에 반기를 든 배경을 직접 설명했다. 이미 잇단 신주발행, 자사주 교환으로 주주가치의 핵심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아졌으며, 이사회의 안건이 주총을 통과할 경우 주주가치에 부정적이라는 것이 주요 배경이다.
"고려아연, 잇단 신주발행으로 주주가치 희석"
지난해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이름을 바꾼 KCGI운용은 최근 의결권 행사 기준을 새로 만들면서 주가순자산배율(PBR)·ROE·주주환원율 등 세 가지를 핵심지표로 내세웠다. 만일 세 개 중 두 가지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면 △이사 선임 △재무제표 승인 △이사의 보수한도 승인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회사의 상황이나 향후 계획을 고려해 찬성 표를 던질 수 있다.
명재엽 KCGI운용 주식운용팀장은 "작년 8월에 대주주 변경과 함께 사명을 바꾸고 주주가치 거버넌스 개선에 특화된 하우스를 추구해왔다"며 "주주가치에 특화된 운용사인데 '정작 가장 중요한 의결권 행사 기준을 외부 자문기관에 기대는게 맞느냐'는 내부 목소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명 팀장은 PBR, ROE, 주주환원율 가운데 ROE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ROE(Return on Equity)는 자기자본을 활용해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 판단하는 지표로 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나타낸다.
명 팀장은 ROE를 올리기 위해선 분모인 자본 조정이 중요하다고 봤다. 회사가 현금을 많이 쌓아두거나 사업과 무관한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ROE가 떨어지지만 주주들에게 잘 돌려주거나 사업에 사용하면 ROE가 올라간다는 설명이다.
새롭게 만든 기준으로 제일 먼저 겨냥한 상장사는 고려아연이다. KCGI운용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세 지표 가운데 PBR, ROE가 '기준 미달'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 등으로 자본이 1조5000억원 늘면서 ROE가 기존 8%에서 5%대로 내려왔다고 지적했다.
다만 KCGI운용은 본인들이 기준으로 삼는 지표의 숫자를 공개하진 않았다. "주당 1만원 배당해도 신사업 투자 무리없어"
오는 19일 고려아연 정기주총에서는 최윤범 회장 중심의 이사회와 최대주주 영풍 사이에 표대결이 벌어진다.
표 대결이 예상되는 안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관변경안이다. 현재 고려아연 정관상 회사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시 외국 합작법인에만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 이사회는 이 정관을 삭제하고 국내법인에도 신주발행이 가능하도록 정관을 바꾸자는 안건을 내놨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반기를 들었다.
두 번째는 결산 배당 안건이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주당 5000원을 결산배당으로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으며, 영풍은 배당금이 주당 1만원을 배당하는 수정동의안건을 제출하기로 했다.
KCGI자산운용 첫 번째 정관변경안에는 영풍과 같이 반대 표를 던지기로 했다. '주주가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명 팀장은 우선 "영풍과 손을 잡은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외국합작법인에게만 유증하겠다는 정관을 삭제한다는 건 회사가 신주발행 요건을 낮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주를 발행하면 주식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요건을 완화하면 안된다는 것이 일관된 기조"라고 밝혔다.
명 팀장은 "유망한 투자처가 있거나 유동성 이슈가 있어 신주발행을 해야 한다면 주주로서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고려아연이 최근 2년간 신주발행과 자사주 매각을 했는데, 이것이 주주가치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었는지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사업 제휴를 목적으로 LG화학과는 자사주를 교환했으며, 현대차, 한화그룹이 출자한 해외법인을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KCGI운용은 결산배당에 대해서도 영풍이 제시한 주당 1만원 안건에 표를 행사할 예정이다.
명 팀장은 "결산배당을 주당 5000원으로 정하면 연결 기준 주주환원율이 76%지만 주당 1만원을 배당으로 지급하면 90%가 넘는다"며 "의결권을 가진 주주로서 옵션 중 유리한 것을 선택할 뿐"이라고 말했다.
KCGI운용은 배당규모가 과도하면 계획하고 있는 신사업 투자가 어려워진다는 이사회의 주장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앞서 작년 12월 고려아연은 기관투자자들을 초청해 '인베스터 데이' 행사를 열고 향후 10년간 2차전지, 신재생에너지 등 신규 사업에 17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명 팀장은 "접근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했을 때 회사가 갖고있는 현금과 매년 벌어들이는 이익으로도 충분히 계획한 투자를 할 수 있다"며 "주당 1만원 배당하더라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KCGI운용은 고려아연 외에도 20여개의 주요 투자 기업의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자사주 제도 개편 필요"
한편 KCGI운용은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방향성에 매우 공감한다고 밝혔다.
명 팀장은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있다면 반대로 2차전지, 바이오 등 일부 업종은 프리미엄이 붙는다"라며 "모든 업종이 동등하게 평가받을 수 없지만 미국 시장과 한국 시장의 시가총액 차이는 어마어마한데 특정 업종이 과도하게 고평가 받는건 결국 기업가치와 주주가치가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밸류업(up) 이라기보다는 밸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밸류업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선 배당소득세 분리과세가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을 합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면 15.4%의 소득세를 내야한다. 그러나 2000만원을 넘으면 근로소득, 연로소득 등 종합소득과 합쳐져 최고 50%에 달하는 세율이 적용된다.
명 팀장은 만약 배당소득을 분리과세해 유효세율을 낮추면 대주주들로 하여금 배당을 늘릴 유인이 생기고, 동시에 배당금의 총 규모가 늘어나므로 세수를 압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밸류업 프로그램 초안에 자사주 제도 개편이 빠진 점이 아쉽다고 짚었다. 명 팀장은 "주주환원의 핵심이 배당도 있지만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주식수를 줄이는 것도 포함된다"며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자사주 내용이 빠진 것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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