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준의 일침] 차장·과장·대리가 꼭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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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미국 일리노이주 출신 애플 엔지니어랑 우연히 배석한 자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30대 중반 B씨는 "미국은 한국과 같은 과장·차장이 많지 않고, 각 실무자도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 후 한국에 귀국해서 대전 소재 한 국책연구기관에 취재를 갔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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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미국 일리노이주 출신 애플 엔지니어랑 우연히 배석한 자리가 있었다. 그는 애플의 인사제도를 두고 '관리자 코스'와 '엔지니어(현장직) 코스'가 분리돼 있는 투 트랙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각 코스를 넘나들 순 있다. 다만 대개는 해당 코스를 꾸준히 따라가며 커리어를 쌓아 간다. 상호 존중은 기본이다. 그는 실무자인 엔지니어 코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애플식 투 트랙 인사제도의 장점에 대해 현장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소속 직원 B씨로부터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30대 중반 B씨는 "미국은 한국과 같은 과장·차장이 많지 않고, 각 실무자도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가 속한 나사가 대표적 예였다. 나사 연구직들은 정년 없이 계속 연구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80대 노인이 기초연구를 하다가 쓰러져 돌아가시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실무자를 존중하고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미국이 제국(帝國)으로 성장한 비결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한국에 귀국해서 대전 소재 한 국책연구기관에 취재를 갔을 때의 일이다. 기관장 C씨에게 "우리도 나사처럼 정년 없이 기초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안 되느냐"고 질의했다. 그러자 그는 "한국에선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5060 일부 과학자가 연구과제 선정과 관련된 권한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기한 정년 연장까지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신진 학자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뿌리 깊은 연공서열 구조에서 실무자의 창의성을 발휘시키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렵사리 취업문을 뚫은 청년들의 현실한계 벽을 만들고 있다. 많은 MZ 공무원이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어도 나가는 이유 중 하나가 '유연하지 못한 조직의 답답함'이다. 언론계·산업계 모두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저출산으로 청년 인구는 수십 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난 상황이다. 기존에 2~3명이 하던 일을 이제는 1명이 해야 한다. 최근 만난 강성범 미래에셋증권 IB1 부문 대표(부사장)는 최근 IB 부문 경영난을 타파하기 위해 조직을 슬림화하면서 "보고라인을 한 단계 줄였다"고 했다. 또한 그는 부문 대표로서 실무자에게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환경을 조성하고 중간에 자신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기업공개(IPO) 주관 일감을 따오려고 해당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발표를 하는데, 부사장인 저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실무자인 막내도 동등하게 질의응답 시간에 기업들에 답을 한다"고 밝혔다. 국내 IPO 1~2위를 매번 기록하는 미래에셋증권의 비결엔 '실무자 중심' 조직문화가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 등 여러 층위로 나뉘어 있는 보고 시스템을 '실무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하다못해 충격요법으로 '과장'부터 바로 없애버리면 어떨까. 이제는 MZ 사원을 믿고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때다.
[나현준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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