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삶이란 싸워야 하는 것
살다보면 투쟁 필요할 때 생겨
무기력·욕망·부당함과 맞서며
소중한 것들 지키고 구해내야
변호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이 싸워야 할 문제 앞에서 회피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왠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싸우는 걸 좋아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분쟁은 가급적 피해 가고 싶어 한다. 덮을 수 있으면 덮고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가고,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에서는 투쟁이 필요할 때가 있다. 평화주의자로 살면서 어디까지나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마음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는 때라는 게 오기도 한다. 나아가 어느 때는, 싸움이야말로 의무이고, 평화에 대한 집착이 비겁한 회피가 되는 순간도 있다. 정확히 말해, 사람은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는 저마다 다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오로지 돈을 위해 싸울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싸움은 돈을 넘어서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무기력과 회피에 찌든 자기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점점 시들어 가는 자기 안의 어떤 영혼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때론 스스로 싸울 수 없는 그 누군가를 위해 싸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10년 이상 작가에서 변호사로 살아오며, 여러 중요한 싸움의 순간들을 거쳤다. 이 세상의 기성 질서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벽을 부수기 위해, 때로는 내가 아닌 그 누군가의 목소리나 나와 같은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싸웠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그야말로 검투사가 돼 검사랑도 싸우고 법원 조정실에서 삿대질하는 상대방 변호사랑도 싸웠다. 나의 삶은 투쟁이 필요한 영역 쪽으로 흘러왔던 셈이다.
사실, 20대 초반 같은 어느 시절에는 싸우기보다는 내 안으로 한없이 움츠러들기를 바라기도 했다. 문학과 고독을 사랑하며, 가능한 한 마음의 무한한 평화 속에 있고 싶었다. 아예 이 세상을 저버리고 먼 곳의 아웃사이더가 돼 부유하듯 살기를 꿈꾸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의 기억이 무색하게도, 나는 나의 존재 의의를 많은 것들과 싸우면서 얻고, 또 누군가를 위해 대신 싸워주면서 얻어야 하는 삶이라는 걸 알아온 듯하다.
나는 글쓰기 강의에서 자주 글쓰기란 '적대'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고 속삭인다. 글쓰기란 그렇게 우리에게 매일 쏟아지는 타자의 기준,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 소비사회의 획일화된 욕망, 그 밖의 여러 편견과 선입관 등과 부단히도 싸워나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가 마치 매일 우리 안에 쏟아져 들어오는 세균과 싸우는 백혈구의 일을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법률 상담을 하다 보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상대방에게 휘둘리는 경우도 무척 많다. 적법하게 계약을 갱신하려는 임차인에게 계약 갱신은 불가능하니 나가라고 하거나, 저작권을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적반하장식으로 저작권을 탈취하려 하는 경우 등 상담에서 거의 매일 새로운 부당한 상황들을 만난다. 그럴 때면 싸움을 회피하는 게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고, 당신은 법적 권리를 갖고 있으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렇게 보면, 나는 매일 싸움에 연루돼 있는 셈이다.
나는 여전히 고요와 고독, 평화를 사랑하지만, 나를 일으켜 세워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은 매 순간의 의지에 서려 있는 어떤 싸움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어떤 싸움터 위로 올리고자 부단히 애를 쓰기도 한다. 무기력과의 싸움, 욕망과의 싸움, 부당함과의 싸움 속으로 나를 매일 보내고자 한다. 결국 삶이란 그 무언가에 맞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찾아내고 구해내는 과정이다. 무엇과 싸워 무엇을 구해내고 지켜낼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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