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미술래잡기] 위대한 의사
수술 집도와 강의 장면 묘사
미술사 손꼽히는 작품으로
위대한 의사 자부심 엿보여
의대 증원 두고 갈등 크지만
존경받는 의사 많아졌으면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정책 개혁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이 팽팽하다. 의료종사자는 분명 하나의 직업군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생로병사 특별한 순간마다 함께한다는 관점에서는 분명히 '일반 회사원'과 다른 존재이기에 좀 더 신중하게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래도 지방의료 생태계 붕괴와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란 문제를 접하다 보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정부의 방향이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니, 부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갈등이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의사가 주인공인 미술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세기 말 미국의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가 그린 '그로스 박사의 임상 강의'(1875)일 것이다. 종양학과 재건수술학 분야의 거장 그로스는 외과 의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의사였다. 감염으로 재건이 불가능해진 부위는 절단해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대에, 그로스는 마취법을 적극 도입해 수술 중인 환자의 고통도 줄이고 문제 부위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수술 이후 환자의 삶의 질까지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미국 수술계의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인물이었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해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에이킨스의 작품은 그로스가 교수로 재직했던 필라델피아 소재의 토머스 제퍼슨 의과대학의 원형 강당에서 직접 수술을 집도하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학생들에게 강의하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한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 출품하려고 에이킨스가 거의 1년을 들여 제작한 이 작품은 가장 존경받는 의사의 멋진 초상화를 통해 작가의 고향이자 의료 교육의 도시로도 잘 알려진 필라델피아가 의료 기술과 미술 두 분야에서 모두 최첨단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흰 가운 대신 양복을 입고 외과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지금은 매우 생경해 보인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환자는 위쪽으로 왼쪽 허벅지를 노출하고 있고, 그로스 박사와 조교들은 골수염에 걸린 대퇴골을 제거하는 중이라 환자의 피부가 절개돼 있으며, 의사들의 손끝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다. 에이킨스는 사실주의에 입각해 의료사에서 매우 유의미한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유혈이 낭자한 표현 때문에 이 작품은 평범한 관람객들에게 너무 충격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심사위원회의 심의에 걸려 박람회의 미술 부문 전시가 아닌, 군부대 의료 막사 전시장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장소에 걸리게 되었다.
아마도 환자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은 의사의 왼편에서 온몸을 뒤틀며 차마 수술 장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오랜 임상 경험과 연구에 기반해 자신감이 넘치는 그로스는 마치 영웅처럼 위대하게 그려져 있다. 극적인 조명의 효과, 사려 깊게 만들어진 화면의 구성, 입체감을 구현하는 능수능란한 명암 표현, 자신감 넘치는 붓질로 만들어진 이 걸작은 미술 작품 자체로서도 훌륭하지만, 그 주인공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리려는 내용적인 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
박람회 이후 그로스 박사가 재직했던 제퍼슨 의대는 이 작품을 구입해 130년 동안 교내에 작품을 전시했다. 아쉽게도 2006년 제퍼슨 의대는 재정난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이 작품을 6800만달러에 다른 도시의 미술관으로 양도한다는 결정을 알리면서 45일간의 유예 기간을 제시했다. 필라델피아는 신속한 민관 합동 캠페인을 통해 정부기관 예산을 끌어오는 동시에 무려 3600명이 넘는 개인 기부자의 도움으로 무사히 작품을 시내의 미술관에 남길 수 있었다. 미국 미술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중요한 작품을 잃고 싶지 않았다는 점도 유효했겠지만, 오늘날까지도 좋은 의과대학이 많은 도시에서 자신들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을 잃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자부심이 더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사랑받는 의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우리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런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의사를 우리가 더 자주 만나게 되기를 욕심내 본다.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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