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업무 범위 확대' 시행에…의료계 "무책임한 처사" 반발

8일부터 대전 수련병원 간호사 일부 업무 확대 적용
의사·간호사 "의료현장 간과, 법적 보호 기대 어려워"

대전병원DB

정부가 의료공백 대안으로 제시한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의 업무 지침이 8일부터 의료현장에 일부 적용되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환자 진료로 인한 의료분쟁 시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데다, 충분한 숙련 기간을 거칠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간호사들도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응급 약물을 투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간호사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PA)·일반간호사로 구분해 업무 범위를 설정하고, 의료기관의 교육·훈련 의무를 명시했다. 기존 관행적으로 의사 업무를 보조해 온 전담간호사 외에 다른 간호사들도 유사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세 부류의 간호사는 모두 응급상황 심폐소생술과 응급 약물 투여, 혈액 등 각종 검체 채취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의 경우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을 할 수 있고,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도 작성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전지역 수련병원들은 일부 업무들을 수용, 의료현장에 적용했다. 비교적 높은 숙련도와 위험성이 따르는 업무에 대해선 조정위원회를 통한 협의를 거칠 계획이다.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충남대병원, 건양대병원 등은 이날부터 소속 간호사들에게 당장 수행이 가능한 업무부터 시행하도록 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간 법적 근거가 부재한 채로 PA 간호사 제도가 운용돼 온 만큼,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경우 보호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 의사와 간호사는 존재하지만, PA 간호사는 없다. 법적 근거가 없는데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특히 응급의학 등 필수진료 과목은 의료분쟁 발생률이 높아, 위험성이 더욱 크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만일 재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아도, 소송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다는 문제도 있다.

유인술 대전응급의료지원센터장은 "의사들도 환자 진료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법적 소송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PA 간호사들에게 의사들의 업무까지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간호사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충분한 숙련 없이 추가 업무를 떠안게 되면서 의료사고 발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의 대학병원 간호사는 "간호사가 기술을 익히는 데엔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숙련 과정 없이 무턱대고 업무를 맡기는 것은 의료현장을 간과한 조치"라며 "현장에서는 당장 처방입력기를 다루는 법부터도 해매고 있다. 간호사들의 의견에 따른 업무 범위 재조정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