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국정연설서 트럼프 맹공…“내 전임자는 푸틴에 머리 조아려”

김유진 기자 2024. 3.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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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대결을 앞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자신의 정책 구상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데 주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름 대신 ‘내 전임자’로 지칭한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경제, 외교, 임신중단권, 국경 통제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을 비판했다. 고령 리스크를 불식하기 위해 강한 어조로 이어진 이번 연설을 두고 “국정연설의 관례와 달리 격분에 찬 연설” “가장 정치적인 연설”(CNN)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상하원 합동회의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국정 연설을 언급하며 “지금은 미합중국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순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지만,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무기를 지원한다면 푸틴을 멈춰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전임자는 푸틴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다. 이것은 위험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루된 2020년 대선 결과 사기 주장과 2021년 1·6 의회 폭동을 가리켜 “남북전쟁 이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임신중단권을 보호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었다고 자랑하는 이들은 여성의 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하지만 재생산권이 투표용지에 올랐고 우리는 2022년, 2023년 승리했다. 2024년에도 다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내 전임자”가 연방 차원의 임신중단 금지 법제화 시도를 지지한다면서 “또 어떤 자유를 앗아가려는 것인가”라고도 했다. 이날 질 바이든 여사 옆에는 텍사스와 앨라배마에서 각각 낙태와 체외 인공수정(IVF) 시술을 거부당한 여성들이 함께했다.

대중국 정책과 관련해 “중국과의 경쟁을 원하지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 그는 한국 등 역내 국가들과의 동맹 강화를 성과로 언급했다. 중국의 불공정 경제 관행 대응, 대만해협 평화·안정 수호, 미국 첨단 기술의 중국 이전 차단 등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21세기 중국 혹은 다른 어떤 나라와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다”면서 “내 전임자는 중국에 대해 거칠게 말했지만 이렇게 할 생각을 못 했다”고 다시금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북한은 취임 후 3년 연속 국정연설에서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한 법인세 인상, 제조업 육성, 의료 및 교육, 이민 등 국내 이슈를 언급할 때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나는 이민자들이 우리 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말로 그들을 악마화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들을 갈라놓거나 신앙을 이유로 미국에 오는 것을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베네수엘라 출신 무단 입국자에 의해 살해된 조지아대 여학생 레이큰 라일리를 추모하면서 이례적으로 “불법 이주자(illegal)가 그녀를 살해했다”고 말했다.

올해 81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나이에 관한 농담도 던졌다. 그는 “내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도 꽤 오래 살았다”며 “내 나이가 되면 어떤 일들은 더 분명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나이가 얼마나 들었느냐보다 아이디어가 얼마나 낡았느냐는 것”이라며 “혐오, 분노, 복수, 보복 같은 것이야말로 가장 낡은 아이디어”라고 또다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직격했다. 최대 약점인 고령리스크를 정면돌파하려는 듯 평소와 달리 잔뜩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연설하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이 7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극우의 상징인 ‘마가’(MAGA) 모자를 쓰고 앉아있다. EPA연합뉴스

68분간 진행된 연설 도중 민주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4년 더”를 외쳤고, 공화당 의원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야유했다. 트럼프 캠프의 대선 슬로건이자 공화당 극우 진영을 상징하는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 구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착석한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남부 국경 강화 예산안 처리를 촉구하며 “초당적으로 합의한 역대 가장 강력한 법안”이라고 하자 공화당 의원들은 “아니다(No)”라고 외쳤고, 바이든 대통령은 “사실을 봐라. 설마 글자를 못 읽는 것이냐”고 신경전을 벌였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캠프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트럼프 진영에 맞설 ‘파이터’를 원한다고 판단해 바이든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공화당 의원들과 대립각을 세울 것을 권고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정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말폭탄’에 버금가는 발언을 쏟아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나토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푸틴은 바이든을 존중하지 않아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나토가 강력해진 것은 내가 돈을 내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을 공격하며 “되살아난 시신처럼 보인다”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공화당은 국정연설 반박 연설에 42세의 케이티 브릿 상원의원을 내세웠다. 최연소 초선 여성 상원의원인 브릿 의원은 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는 당내 차세대 주자다. 브릿 의원은 “국정연설은 내가 살아있던 시기보다 더 오래 정치를 한 ‘영구적 정치인’의 연기”였다며 바이든 정부의 국경 정책을 맹공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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