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이 던진 나토 파병 논란… 푸틴 “핵전쟁” 위협, 회원국 분열까지 일파만파 [이우승의 이슈 돌아보기]
“나는 러시아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지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살펴보면 정말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 미군 제복을 입히면 미국 군인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앨 애런슨(AI Aronson) 미국 육군 69보병사단
<존 루이스 개디스 ‘냉전의 역사’에서 발췌>
‘엘베의 날’ 같은 편으로 만난 미군과 소련군이 서로를 격려하며 승리의 축배를 들었지만, 전후 이어진 냉전은 서로를 치켜세웠던 이날의 만남을 무색하게 했다. 그러나 50여년간 이어진 냉전과 이후 새롭게 짜여진 신냉전 구도에서도 양측은 서로를 경계하며 대치했지만 공식적으로 직접 조우해 전투를 벌인 일은 없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촉발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파병 논란은 우크라이나 전쟁 구도에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파병 가능성을 거론한 지 열흘 만에 “가까운 미래에 계획이 없다”고 스스로 꼬리를 내렸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 가능성에 불을 지피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전쟁 위협, 나토 내 회원국 간 분열 등을 노출했다. 특히 파병 가능성 논란에 이어 독일군 내 타우러스 미사일 지원 관련 회의 도청 파일이 유출되면서 독일의 우크라이나 미사일 지원이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잦아들지 않는 마크롱 파병 논란···프랑스와 독일의 감정싸움, 미, “우크라이나가 지면 나토가 상대”
그러나 이후 이 회의에 참석한 마크롱 대통령이 파병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파병에 대한 합의는 없었으나 이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것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가 승리하지 못하도록 필요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또 “(프랑스가) 파병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이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파병 논란은 증폭됐다. 러시아와 직접 충돌과 확전을 피하기 위해 군대 파병을 꺼리는 미국과 서방 진영 입장과 배치되는 발언이어서다.
피초 총리는 회의 이후 “(파병) 준비가 된 국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고 밝혔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체코는 파병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어떤 결정도 합의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참석 국가 가운데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파병에 대한 합의는 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는 ‘핵전쟁’을 경고하며 서방진영을 강하게 압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9일 모스크바 크레믈궁 인근 고스티니 드보르에서 열린 상·하원 의원 대상 국정연설에서 히틀러와 나폴레옹을 거론하면서 ‘더욱 비극적’, ‘실패한 역사’, ‘핵무기 사용’ 등의 공격적인 단어로 나토 파병을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그들 영토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그들이 전 세계를 겁주는 이 모든 것은 실제 핵무기 사용과 그에 따른 문명 파괴를 의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콘스탄틴 가브릴로프 빈 주재 유엔안보협력기구 러시아 대사도 관영 스푸트니크 통신을 통해 “나토와 러시아 간의 직접 충돌로 변할 수 있는 분쟁 위험 확장의 결과는 매우 예측 불가능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파병 논란에 미국도 가세했다. 미 정부는 공식적으로 파병에 선을 그었지만 미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나토가 러시아와 싸울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장관은 지난달 29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가 패할 경우 미국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같이 말했다. 미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압박하는 차원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절박한 전장 상황을 방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발트 3국 가운데 하나인 라트비아는 나토가 합의하면 파병할 수 있다고 파병에 힘을 실었다.
나토는 소련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서유럽 국가들이 만든 ‘군사동맹’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고 소련의 베를린 봉쇄가 진행되던 1949년 4월 4일 창설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소련과의 직접적인 군사대결은 없었다. 6·25전쟁 당시 소련 전투기 조종사와 미군 및 유엔 공군이 한반도 상공에서 조우해 공중전을 했다는 정황은 있지만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 또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에도 소련의 쿠바 핵무기 배치와 이에 맞선 미국의 봉쇄령으로 전 세계가 핵전쟁 공포에 빠져 들었지만 미·소 양측의 충돌은 피했다.
아이러니하게 나토는 소련 해체 이후 실전에 투입됐다. 1990년대 발발한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내전에 처음 파병된 나토 소속 공군이 대규모 공습 작전에 참가했다. 1994년 2월 나토 소속 미 공군 전투기가 세르비아계인 스릅스카 공화국 소속 공군 전투기 4대를 격추한 것이 창설 이후 첫 전투로 기록됐다. 1995년 보스니아계 세르비안 인들의 민간인 학살에 맞서 ‘딜리버레이트 포스 작전 (Operation Deliberate Force)’, 1999년 코소보 집단학살 등에 대응해 ‘얼라이드 포스 작전 (Operation Allied Force)’ 등에 투입됐다. 또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하자 나토는 국제안보 지원군(ISAF)을 2001년부터 2014년까지 파견한 바 있다.
나토는 특히 2011년 리비아 내전에서 ‘오디세이 새벽 작전’으로 명명한 대규모 공습 작전에도 참전했다. 2011년 3월 19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가다피 정권을 향해 대규모 군사 공세를 시작했다. 이날 새벽 프랑스의 미라주·라파엘 전투기의 공습이 시작됐고, 지중해 상의 미군 함정들이 100여발이 넘는 토마호크 미사일로 리비아 정부군 주요 군사시설을 타격했다. 나토는 열흘 뒤인 29일 런던에서 28개 회원국이 모인 가운데 미국과 프랑스 주도의 연합군으로부터 리비아 군사작전의 지휘권을 인수했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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