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대자보·침묵시위, 교수는 총장에게 항의…의대 증원 갈등 커져

홍다영 기자 2024. 3. 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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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장과 의대 학장단·학생 간담회하려 했으나 취소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의대생 136명이 8일 오후 청주 충북대학교 대학본부 앞에서 '의대 증원 반대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이 있는 전국 40개 대학이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정부에 신청하자 학생과 교수들의 저항이 거세다. 동맹휴학과 수업 거부에 나섰던 의대생들은 증원을 추진하는 대학 총장을 향해 “사퇴하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침묵 시위도 벌였다. 의대 교수들도 대학 총장을 항의 방문해 증원 신청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각 대학 본부 측은 이미 증원 신청을 끝내고 정부의 2000명 배분 결정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마땅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대는 총장과 의대생이 한 자리에 모이는 간담회를 마련했지만 의대생들이 거절해 무산되는 등 당분간 갈등이 더 커질 전망이다.

◇”총장 신뢰 잃었다” 의대생 반발 거세져

8일 교육계에 따르면 경북대 의대생들은 본관에 대자보를 붙이고 홍원화 경북대 총장 사퇴와 증원 신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홍 총장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앞에서 현재 110명인 의대 정원을 250명으로 140명 늘리겠다고 말했고, 이틀 뒤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공천을 신청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철회했다.

경북대 의대생들은 ‘총장께 촉구한다’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여당 비례대표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접한 대학 구성원들이 반발하자 급하게 철회하는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등록을 철회해도 학생들은 이 모든 것이 총장님 개인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총장이 한 모든 말은 신뢰를 잃었다. 정치적 수단으로 왜곡된 증원 신청을 취소하라”고 했다.

충북대 의대생 136명은 이날 오후 본관 앞에서 ‘교수 의견 묵살하는 불통 총장 사죄하라’, ‘준비 안 된 의대 증원 교육 환경 훼손한다’ 등의 피켓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침묵 시위를 벌였다. 대학 본부 측이 의대생과 교수 의견을 듣지 않고 410% 증원(49명→250명)을 신청했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충북대 의대생들은 “당장 내년에 250명 학생을 교육할 강의실도 없고 해부용 시체와 병원 실습을 위한 인프라도 부족하다”며 “이번 사태로 사의를 표한 교수도 있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는 어떻게 확보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싶지 않아 이 자리에 나왔다”며 “대학 측은 근거 없는 증원 요청을 철회하고 학생을 위한 결정을 내려달라”고 했다.

부산대 의대생과 부산대병원 소속 교수 등 10여 명도 이날 부산대 양산캠퍼스 의대를 찾은 차정인 총장 앞에서 시위했다. 이들은 “교실이나 기자재 등 교육 환경을 고려했을 때 증원이 불가능한데 학내 구성원과 소통 없이 정원을 2배 확대(125명→250명)했다”고 했다.

서울대는 이날 오후 예정됐던 유홍림 총장과 의대 학장단·학생들이 ‘타운홀 미팅’(자유로운 대화)을 하려 했으나 취소됐다. 의대생들이 외부 노출 등을 우려해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서울대 학장은 전날 의대 교수들에게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에 대한 해법을 찾겠다”며 타운홀 미팅을 제안하는 메일을 보냈다. 앞서 서울대는 2000년 의약 분업 당시 줄었던 인원을 회복한다며 의예과 11%(135→150명) 증원을 신청했다.

경북대 의대 학장단 교수들이 지난 7일 의대 입학정원 증원 추진에 반발해 일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대구시의사회 제공

◇”총장이 등록금에 눈 멀어” 의대 교수는 단체 사직

의대 교수들은 총장을 찾아가 항의하거나 집단 사직하고 있다. 전북대 의대 교수들은 전날 양오봉 총장 집무실에 항의 방문했다. 앞서 양 총장은 지난달 28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의대와 상의했다”고 했지만 현장 의견을 무시하고 증원(142→240명) 신청이 이뤄졌다는 게 교수들 입장이다. 충북대 의대 교수들도 전날 고창섭 총장을 면담하고 증원(49→250명) 신청 철회를 요구했다.

경북대 의대 학장단 교수 14명은 전날 전원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학장단 교수들은 “대학 본부와 총장은 의대의 제안을 존중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증원을 제시했다”고 했다. 앞서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전공의, 전임의 선생님들 면허를 정지한다고 하는 보건복지부의 발표와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모교 총장의 의견을 듣자니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들과 같이 일할 수 없다면 제가 중증 고난도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어 사직하고자 한다”고 했다.

원광대 의대 교수들은 지난 6일 “대학 등록금 확충에 눈이 먼 대학과 총장에 의해 일방적으로 증원(93→186명)이 진행됐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앞서 김정구 부산대 교수회장은 지난 5일 ‘의과대학 증원에 대해 (차정인) 총장님께 여쭙습니다’라는 글을 교내 게시판에 올렸다. 의대 증원 근거, 집단 휴학과 학생들 구제 등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게 교수회 요구다.

앞서 전국 40개 대학은 올해 의대 신입생 정원을 3041명 늘려달라고 신청했다. 정부는 정원 배분 절차에 착수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오는 9일 비공개 총회를 열고 집단 행동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한 지방 국립대 관계자는 “이미 증원 신청이 끝난 상황에서 대학 본부는 정부 결정을 지켜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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