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창조자 토리야마 아키라, 향년 68세로 별세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창조자인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가 지난 1일 급성 경막하 출혈로 향년 68세에 별세했다.
8일 일본 만화 주간지 <쇼넨 잠프(이하 소년 점프)>는 "점프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한 토리야마 아키라가 별세했다"며 "갑작스러운 소식에 슈에이샤(소년 점프 발행사) 편집부 일동은 큰 슬픔에 잠겼다"고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보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다.
<소년 점프>는 "그간 선생이 만든 매력 넘치는 캐릭터와 압도적인 디자인 센스는 수많은 만화 크리에이터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며 "선생의 위대한 공적을 칭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뜻을 표하며 (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전했다.
토리야마 아키라가 생전 설립한 버드 스튜디오도 이 소식을 전하며 "전 세계 많은 분의 지지로 고인은 45년 이상에 걸쳐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토리야마 아키라의 유일무이한 작품 세계가 오래도록 여러분께 사랑받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했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장례식은 가까운 친인척만 참여하는 차원에서 조촐히 치러질 예정이다. 버드 스튜디오는 "본인 의향에 따라 조문·부의·공양·헌화는 사양한다"며 현지 매체에 "유족을 대상으로 하는 취재를 삼가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지난 1955년 4월 5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만화작가다. 그가 낸 작품이 꾸준히 히트하면서 1981년에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만화가로서 개인 세금 납부자 상위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젊은 시절 디자인회사를 다니다 퇴직한 그는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잡지에 투고작을 보냈다. 이를 눈여겨본 <소년 점프> 편집진에 발탁된 그는 1978년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만화가로 데뷔했다. 훗날 아키라는 당시를 들어 작품의 담당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원더 아일랜드>의 독자 반응을 묻는 자신에게 "최악이었다"라고 전했음을 밝힌 바 있다.
한동안 출세작을 발표하지 못했으나 1980년 사람과 로봇, 외계인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장편 만화 <닥터 슬럼프>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토리야마 아키라는 데뷔 2년 만에 거장의 길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1984년 <닥터 슬럼프>를 완결한 이후 그가 내놓은 작품이 한국인에게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드래곤볼>이다. 1995년까지 연재된 <드래곤볼>은 한국에 처음으로 정식 발매된 일본 만화다.
<드래곤볼>은 세계 만화 역사상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올린 작품의 하나다. <소년 점프> 초기 연재분만으로 잡지는 주간 653만 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단행본은 일본에서 누적 1억6000만 부 이상, 세계적으로는 2억6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한국에서도 누적 20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드래곤볼>은 후지TV의 애니메이션화 영향에 더해 초반 구상한 이야기가 끝난 후만 해도 이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천하제일무술대회에 주인공 오공이 참여하는 새로운 스토리가 연재되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이후 오공은 피콜로 대마왕-사이어인-프리저-인조인간 셀-마인 부우 등 갈수록 강해지는 악당과 대결해가는 스토리가 이어졌다.
이처럼 주인공이 마치 격투 게임처럼 정해진 대결 구도를 맞이하고 이를 승리해나가며 새로운 적과 마주하는 배틀물은 <드래곤볼>의 성공 이후 일본 만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도 요리를 비롯해 각종 일상의 소재가 배틀물의 형태를 띄는 형태의 작품은 일본 소년 만화의 주류적 경향으로 남아 있다.
<드래곤볼>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자 작가가 연재를 중단하고 싶어도 이를 중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드래곤볼>의 매출이 슈에이샤 전체의 운명을 정할 수준이 된 데다 연관 산업인 애니메이션, 게임, 완구산업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됐기 때문이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일본 만화계에서 최소한의 어시스턴트만 대동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로도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드래곤볼> 연재 기간 단 한 차례의 연재 펑크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살인적인 수준의 노동량이 작가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드래곤볼> 연재 기간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JRPG)' 경향의 상징적 작품이자 일본 게임 문화의 결정체로 알려진 대작 시리즈 <드래곤 퀘스트> 제작에도 참여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드래곤 퀘스트의 창조자'로 알려진 게임 프로듀서 호리이 유지가 기획하고 토리야마 아키라가 게임 디자인을 맡았으며 작곡가 스기야마 코이치가 상징적인 사운드 테마를 완성한 작품이다.
슬라임 등 오늘날 일본 판타지 만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몬스터 디자인과 소년 용사가 세계를 구한다는 설정 등이 토리야마 아키라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1986년 1편이 나온 후 2017년 11편이 나오기까지 토리야마 아키라의 디자인은 꾸준히 유지됐다.
토리야마 아키라 별세 소식이 알려진 후 호리이 유지는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너무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기분이 가득하다"며 "지난 37년 동안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장인물의 캐릭터 디자인, 몬스터 디자인을 비롯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고인은) 그려주셨다"고 그를 추모했다.
호리이 유지는 "드래곤 퀘스트의 역사는 토리야마 씨의 캐릭터 디자인과 함께 했다"며 "그는 드래곤 퀘스트를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 만든 동료였다. 정말, 정말로 안타깝다"고 전했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동료 만화 작가들도 고인을 추모했다. <소년 점프>는 이들의 추모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윙맨>, <제트맨> 등의 작가 카츠라 마사카즈는 고인의 부고 소식에 "힘이 빠져 기력이 없다"며 "(고인과) 더는 쓸데 없는 이야기로 긴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유감"이라고 밝혔다.
카츠라는 지난해 자신의 수술 당시 토리야마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작년 여름 제가 수술한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토리야마가) 메일을 보냈다. 40년의 교제 동안 (그가) 그렇게 상냥했던 것은 처음"이었다며 "당시 상태가 나빴던 나는 그에게 '먼저 갈 테니, 이별회를 해 주세요'라고 했다. 메일을 받은 후 왜 전화하지 않았는지 굉장히 후회된다"고 개탄했다.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이치로는 "너무 빨리 갔다. (그의 빈자리가) 구멍이 너무 크다"며 "더는 (그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온다"고 밝혔다.
오다는 "'만화를 읽으면 바보가 된다'는 시대로부터 배턴을 받아 어른도, 아이도 만화를 읽고 즐기는 시대를 만든 이"라고 토리야마를 칭했다.
이어 "만화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업계에서 활약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소년 시절에는 <드래곤볼> 연재 당시의 흥분과 감동이 뿌리에 있을 것"이라며 "경의와 감사를 담아 진심으로 명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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