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볼펜 선으로만 빚어낸 예술…박미나 개인전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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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파이로트, 지브라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접하는 볼펜으로 빽빽하게 직선만 그어낸 드로잉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들까.
드로잉 한 장만 마주했을 때는 기계적인 펜 선의 나열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를 500점 가까이 모아 벽면 가득히 펼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
지금까지 작업한 펜선 드로잉의 수를 묻는 말에 "아직 1천 개가 안 된다"고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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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모나미, 파이로트, 지브라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접하는 볼펜으로 빽빽하게 직선만 그어낸 드로잉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들까.
드로잉 한 장만 마주했을 때는 기계적인 펜 선의 나열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를 500점 가까이 모아 벽면 가득히 펼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
박미나(51) 작가의 개인전 '검은'이 8일 서울 서초구 페리지갤러리에서 개최됐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전시실 벽 두 면을 가득 채운 '블랙 펜스'(Black Pens) 연작이다.
이 연작은 현재 시판되는 다양한 종류의 검은색 펜으로 A4 용지에 가로줄을 빽빽이 그은 드로잉 498개를 모은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집요하고 치열한 작업 방식이 돋보인다.
박 작가는 종이에 자를 대고 선을 긋고서 1㎜ 간격을 두고 다시 긋기를 반복하며 A4 종이 한 장마다 선 273개를 채웠다.
이렇게 만든 드로잉 아래에는 사용한 펜 제품명을 기입하고, 498점을 추려 '가나다' 순으로 쭉 내걸었다.
이 연작은 검은색 펜이 가진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그저 검은색으로 총칭돼 왔지만, 연작 속에서 어떤 펜 드로잉은 붉은 기가 도드라지고, 유달리 푸르스름하기도 하다. 펜의 특성상 끊겨서 잉크가 나오지 않거나, 덩어리지는 경우에도 이를 그대로 담아내 제각기 다른 펜의 개성을 표현했다.
빽빽한 선들이 모여 마치 하나의 면처럼 보이고, 작은 드로잉들이 벽을 가득 채운 퍼즐 조각처럼 맞물리면서 보는 이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박 작가는 이날 전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블랙 펜스' 연작을 소개하며 "펜은 연필과 더불어 가장 기초적인 미술 재료"라며 "또 필기구인 만큼 우리가 모두 쓰는 것"이라며 검은색 펜 드로잉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자를 대고 기계처럼 반복해서 긋는 방식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도 끝에 찾은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자유롭게 곡선 형태로 펜 선을 긋기도 했는데 개인의 표현주의적 성향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더라"며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펜이 주인공일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다 보니 (직선을 긋게) 됐다"고 언급했다.
박 작가는 이 작업을 2006년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계속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작업한 펜선 드로잉의 수를 묻는 말에 "아직 1천 개가 안 된다"고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제각기 다른 검은색 펜으로 만든 드로잉 연작 뒤를 잇는 다음 작품은 뭘까.
박 작가는 이미 연필을 잔뜩 모았으며, 최근 크레파스를 모으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검은색 유화물감으로 그린 '2014-블랙', 6가지 색을 작은 픽셀에 채워 넣은 '2014-BGORRY', '2024-BGORRY'도 함께 선보였다.
작가는 "하나는 무채색의 검은색, 다른 하나는 모두 섞으면 검은색으로 표현되는 유채색의 검은색을 표현한 것"이라며 "6가지 색도 멀리서 보면 검은색으로 보인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픽셀의 크기를 달리한 두 작품을 같이 걸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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