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아물기도 전에 또 출동하는 소방관들[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18)
얼굴 화상도 인식 못한 채 화재 진화…진화 후 응급실行
상처 아물지 않은 나흘 뒤에도 복합쇼핑몰 지하 화재 출동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 현장서 최선 다하길 매일 기도"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한다.
지난해 3월 27일 오전 8시 9분. 아침을 먹고 8시 30분에 있을 교대를 준비하기 위해 사무실에 대기 중이던 서울 중부소방서 이동석(38) 소방관에게 화재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불이 난 곳은 서울 을지로. 이 소방관은 재빨리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장착한 채 펌프차에 올랐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펌프차에서 수관을 연장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불이 난 곳인 7층에 도착하니 짙은 회색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긴급히 방화 두건과 면체를 착용하고 “무학대(이 소방관 소속 조직명의 통상 약칭) 방수(放水)”라며 수관에 물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연기를 향해 들어가니 내부에서 의식을 잃은 구조 대상자를 구조대가 옮기고 있었다.
이 소방관은 내부에 또 있을지 모르는 구조 대상자를 수색하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내부로 빠르게 들어갔다. 희뿌연 연기로 시야는 답답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부로 진입했다. 열기는 더욱 거세졌다. 그런데 갑자기 이 소방관 앞에서 뭔가 ‘펑’,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이 소방관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며 조금씩 내부로 들어갔지만 얼굴 쪽에 뜨거움이 확 느껴졌다. 그러나 뜨거움을 참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는 사이 내부의 열기가 확연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드디어 불이 잡혔구나!’ 안도하며 이 소방관은 후착대에 소방관창을 넘겨주고 밖으로 나왔다. 동료들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재정비 후 현장에 다시 가려던 그때 이 소방관의 팀장이 이 소방관에게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펌프차로 이동 중 멀리서 검은색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해당 건물은 이 소방관 생각보다 훨씬 큰 쇼핑몰이었다. 더욱이 같은 층에 찜질방이 있어 많은 인명 피해가 우려됐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펌프차에 연결된 수관을 전개하면서 지하 3층으로 서둘러 진입했다. 지하 3층에 도착하니 많은 연기가 뿜어져 나고 있었다. 찜질방에 있던 손님들은 자력으로 또는 구조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신속히 대피 중이었다. 일부 손님들은 전원이 차단된 승강기에 갇혀 소방관들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선착대는 세탁실로 보이는 곳 입구 쪽에서 소화수를 뿌리고 있었다.
이 소방관은 재빨리 “무학대 방수”를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수관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연기가 나오는 곳으로 신속히 진입했다. 연기로 인해 시야는 역시 확보되지 않았다. 다행히 열화상 카메라를 갖고 있던 동료 한 명이 “저쪽에 화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며 앞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 방향으로 조금씩 들어가니 주황색을 띈 화점이 보였다.
화재를 진압하고 나서 보니 화점엔 찜질복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 소방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찜질복을 보면서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더욱 큰 화재로 진입 자체가 어려웠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찜질방에 있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아찔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잘 마무리했고 땀과 물에 젖은 팀원들과 안전하게 소방서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화재 진압 당시 당한 화상에도 연이어 큰 화재를 잘 진압해 대형 인명 피해를 막았던 덕분일까. 이 소방관은 지난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보훈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출근하면서 생긴 버릇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현장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화재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진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매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 달라고도 기도합니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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