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같은 시간 끝냈다"… 포기할 결심, 진짜 자유 얻었을까

연극 무대 달구는 '안락사'
'비Bea' 24일까지 LG아트센터
8년 고립된채 살더니 "죽을래"
어머니는 딸의 선택을 돕지만
결국 '공감 결핍'이 빚은 현실
블랙코미디 '죽여주는 이야기'
울다가 웃고 또 울음보 터지고
자살 조장 사회향해 날선 비판
16년간 韓·日서 400만명 관람
드라마·영화도 연명치료 소재
고령사회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비Bea'의 한 장면.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타인의 자살을 돕는 직접적 안락사(조력 자살)와 회생 불능자에 대한 소극적 안락사(연명 치료 중단)는 그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타인의 목숨을 끊는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안락사를 소재로 한 연극들이 최근 무대에 오르고 있다.

"몸만 떠나는 거야. 몸만."

지난달 17일부터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비Bea'는 원인을 모르는 만성피로증후군으로 8년째 침대 생활을 하는 비가 안락사를 시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비Bea'를 통해 관객들이 서로에게 관대해지고 공감하며, 인생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각본가 믹 고든의 말처럼 연극은 공감의 힘과 한계를 다룬다.

자신의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 믿고 늘 죽음을 생각하던 비는 탁월한 공감 능력을 가진 동성애자 간병인 레이를 만나 안락사를 시도할 용기를 얻는다. 레이에게 마음을 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원하는 것을 좇을 최소한의 원기를 찾은 덕분이다. 레이를 만나기 전 비의 일상은 약을 먹고, 잠을 자고, 기운이 남으면 조잡한 귀걸이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비를 사랑하는 어머니 캐서린은 조력 자살을 요청하는 비의 편지에 공감하지 못하지만 결국 딸의 안락사를 돕는다.

서울 지인시어터, 대구 송죽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의 한 장면. 삼형제엔터테인먼트

'비Bea'를 관람하면 회생 불가자인 비의 안락사가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침대 생활을 하는 비의 방은 감옥과 같은 잿빛 벽과 이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 벽면은 비가 만든 귀걸이들로 덮여 이질적으로 반짝인다. 세 인물을 압박하던 벽체는 비가 죽음을 맞이할 때 마침내 사라지고 자유를 찾은 비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관객에게 더욱 무겁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인간의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공감의 결핍이라는 사실이다. 비와 캐서린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 레이의 누나가 자폐증이 있어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 맹인'이라는 것,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마음 맹인'이라는 대사는 비와 레이, 캐서린이 가진 상처가 공감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한다.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줘야 해. 보답은 바라지 말고."

'비Bea'는 영국 내셔널시어터 출신 극작가 겸 연출가 믹 고든의 대표작이다. 2010년 런던 소호 극장에서 초연한 뒤 캐나다 몬트리올, 토론토, 퀘벡, 그리스 등에서 공연되며 화제를 모았다. 2016년 한국에서 아시아 초연을 하고 2019년 재연 이후 5년 만에 삼연으로 돌아왔다. 이준우가 연출하고, 황정은이 윤색을 맡았으며, 최영은 무대디자이너, 노명준 조명디자이너, 지미 세르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캐서린 역은 방은진·강명주, 비 역은 이지혜·김주연, 레이 역은 강기둥·김세환이 맡았다. 공연 시간은 120분. LG아트센터 U+스테이지에서 3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서울 지인시어터, 대구 송죽씨어터 등에서 공연 중인 블랙코미디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 또한 안락사를 소재로 다룬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돈을 받고 자살을 돕는 자살 사이트 회장 안락사, 자살을 하겠다며 찾아온 마돈나, 살인 청부업자 바보레옹이 만나 동상이몽을 하며 겪는 사건을 그린다. 기괴한 자살 방법들이 소개되고,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대사와 행동이 이어지며 웃음을 자아낸다. 배우들이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고, 객석의 관객들과도 대화하는 관객 참여형 연극이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100분간 끊임없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지만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도 전달한다. 특히 개인적 욕망을 위해 자살을 미화하지만 막상 자신의 죽음이 닥치자 두려워하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자살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2008년 처음 무대에 올라 16년간 한국·일본에서 누적 관객 400만명을 넘긴 인기 작품이다. 서울 지인시어터에서 오픈런(기한 없이 계속 공연하는 것), 대구 송죽씨어터에서 3월 17일까지, 청주 소명아트홀에서는 4월 5일부터 6월 30일까지, 대전 런던스테이지에서는 3월 15일부터 6월 16일까지 공연된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안락사가 서사 진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에서 장난감(손석구 분)은 악당 송촌(이희준 분)에게 당해 수년째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아버지에 대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지 고민한다. 장난감은 수년간 아버지를 돌본 어머니가 연명 치료 중단에 동의한 것에 놀라고, 결국 아버지를 안락사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다.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에서는 마리(최성은 분)가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 인해 마음이 무너져 방황을 시작한다. 자신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기 위해 어머니가 자신 몰래 안락사를 단행했고, 아버지도 이에 조력했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