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한국행? 솜방망이 처벌 우려… 가상자산 ‘증권성’ 인정되면 무기징역

진상훈 기자 2024. 3. 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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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테라 폭락 후 2년간 증권성 판단 고심
증권으로 규정되면 최대 무기징역 선고 가능
권도형, 韓 송환되면 불구속 상태서 대응 가능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해 6월 16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2년 가상자산 테라·루나의 폭락 사태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해 몬테네그로 법원이 한국으로의 송환을 결정하면서, 그가 중형을 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금융·사법 당국은 이미 그를 금융 사기범으로 규정해 강한 처벌을 내릴 준비를 해둔 반면, 한국은 그를 단죄할 법적 근거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권씨에 대한 중형 여부는 금융 당국의 판단에 달렸다. 당국이 테라를 증권이라 규정한다면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그에게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해진다. 반대로 테라가 증권으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권씨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되고, 그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다.

◇ 美 SEC·법원 “테라는 증권”…韓은 2년간 판단 못 내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지난 7일(현지시각) 권도형씨의 미국 송환 결정을 뒤집고, 그를 한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권씨는 지난해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이후 줄곧 한국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해 왔다. 만약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최대 115년에 이르는 중형이 내려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미국 검찰은 그를 증권 사기와 전신(wire) 사기, 상품 사기 등 총 8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은 개별 범죄에 대해 형(刑)을 확정한 후 이를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에 혐의 중 몇 가지만 인정이 돼도 수십년의 징역형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미국은 권씨에게 중형을 내리기 위해 일찌감치 루나 코인을 증권으로 규정한 상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권씨가 무기명 증권 판매를 통해 최소 400억달러(약 53조원)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며 그를 제소했다. 뉴욕 연방법원도 지난해 12월 SEC의 주장을 받아들여 권씨의 증권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반면 한국은 특정 코인에 대한 증권성 판단 여부가 미국보다 더딘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2월 증권형 토큰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발표했지만, 정작 대상이 되는 가상자산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테라 역시 2022년 5월 가격이 폭락한 후 1년 10개월이 지났지만, 금융위는 지금까지도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테라 폭락 사태 후 2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022년 9월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형 토큰 규율체계 정립방향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 증권으로 규정되면 최대 무기징역 가능

국내에서 루나가 증권으로 규정될 경우 권씨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중형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자본시장법 제443조에서는 시장 교란 행위를 통해 불법 이익을 취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의 규모가 50억원을 넘어설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하는데, 권씨의 경우 테라 사태에 따른 국내 피해액이 최소 수천억원에 달해 무기징역 선고도 가능하다.

문제는 그에게 자본시장법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선 먼저 루나를 증권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씨는 루나 폭락 사태 후 해외로 도피하면서 지금껏 “루나는 증권이 아닌 화폐”라고 주장해 왔다. 자본시장법 443조에서의 벌칙은 ‘미공개 정보 이용 증권 거래를 한 자’가 대상이다. 만약 권씨의 주장대로 루나가 증권이 아닌 화폐로 인정될 경우 그에게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금융위가 루나의 증권성 판단을 두고 지금껏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법정에서 인정될 만한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46년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근거로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는 ‘하위(Howey) 테스트’를 적용하지만, 국내는 이 같은 기준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법정에서 금융위의 증권성 판단에 취약한 점이 지적될 수 있다.

특정 코인을 증권이라 규정할 경우 후폭풍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만약 테라와 루나를 증권으로 본다면 상장 폐지 전까지 이 코인의 거래를 중개했던 두나무 등 국내 거래소들이 모두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루나 등과 같은 기준으로 많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들도 증권성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가상자산 시장 전체가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크다.

◇ 권도형, 호화 변호인단 도움 속 불구속 대응 가능

법조계에서는 권씨가 한국으로 송환될 경우 미국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준비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이제의 주현철 미국변호사는 “증권성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권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미 유력 법무법인과 손 잡고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국내 재판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권씨와 함께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는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루나를 증권이라 규정하며 신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2800여명의 피해자가 가입한 ‘테라·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권씨가 국내 정상급 로펌인 김앤장법무법인에 천문학적인 수임료를 지급하고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모임 측은 “가상자산 사기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한국에서 1심 선고로 중형이 내려지더라도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대폭 감형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이날 권씨의 미국 송환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법무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은 관련 국제·양자 간 협약과 몬테네그로 법에 따라 권씨의 인도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모든 개인이 법치의 적용을 받는 것을 보장하는 몬테네그로 당국의 협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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