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아도 돈버는 나라, 미래는 없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3. 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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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소유하거나 통제하면서
노동하지 않고 얻는 불로소득
금융·플랫폼·지재권·토지 등
다양한 분야서 막강한 영향력
기업·공기관·국가까지 추구
만인이 불로소득 추구하면
어두운 종착점 맞을것 경고
1970년대 희귀 자원 '인광석'이 채굴되면서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던 나우루 공화국. 하지만 20년 만에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불로소득에 익숙해진 나우루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LACHIE HINTON

불로소득은 모든 현대인이 갈망하는 꿈결 같은 이데아다. 노동하지 않고도 지출보다 많은 수입이 통장에 착착 꽂힐 때 우리는 소리 없이 웃는다. 내 명의로 등기를 친 아파트가 내 연봉보다 많은 돈을 벌어다주고, 내가 쌓아둔 자산이 내 월급을 넘는 수익률을 창출할 때의 웃음은 승자의 미소에 가깝다.

하지만 불로소득이 과연 개인, 아니 우리들 개미만의 풍경일까. 자본의 역사에서 불로소득이 주류 자본주의의 이데아로 정착되는 흐름을 추적한 책이 출간됐다. 신간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는 불로소득을 새로운 시각으로 정의 내리면서, 만인이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사회의 어두운 종착점을 진단한 책이다. 불로소득만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퇴행임을 힘주어 주장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불로소득 핵심은 지대(地代)다. 경쟁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희소한 자산이나 자원을 소유하거나 통제함으로써 발생하는 소득은 모두 지대라고 저자는 쓴다. 이때 저자의 눈길은 개인이 아닌 기업과 공공기관, 심지어 국가로 향한다. 돈을 벌 수 있는 희소성만 주어지면 기업도 국가도 불로소득을 원하는 것이 이 시대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생산적 활동을 영위하는 기업들까지 모두가 불로소득의 수혜자는 아니다. 유한한 장비를 써서 기성품을 만드는 제조기업, 또 가령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대표인 자본가는 불로소득과는 거리가 멀다. 부가가치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엔 불로소득'만'을 추구하는 초국적 기업, 나아가 국가 중에서도 희소한 자원을 소유하거나 통제해 부를 꾀하는 경우도 다수였다고 책은 쓴다.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 브렛 크리스토퍼스 지음, 이병천 외 옮김 여문책 펴냄, 4만5000원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다. 영국의 기술혁신을 통한 산업 기반 구축은 세계 경제의 차세대 엔진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책은 "영국 정치경제사의 아이러니는 영국이 진정한 산업국가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한다. 영국은 금융, 석유와 가스 등의 자연자원, 플랫폼, 인프라스트럭처, 부동산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업계의 로비를 받았다. '사적 자산 소유가 공적 자산 소유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판단하에 공공기관은 보유 자산을 줄였고,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가릴 것 없이 보유 토지의 60%를 집단 매각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 결과 영국 경제를 조종해 이익을 얻는 사람은 산업혁명의 총본산이었던 영국 내 산업주의자가 아니었고 대개 불로소득 추구자였다. 영국적 경험이 글로벌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불로소득주의에 시달린다. 별다른 노력 없이 이득을 얻기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에 매진하는 상황이 금융, 플랫폼, 지식재산권, 토지, 자원 등 전 분야에서 막강한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지식재산권은 '혁신의 촉진'이란 명분으로 매해 강력하게 통제되는 추세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타인에 의해 도용되지 않는 환경에서만 지속적 혁신이 가능하다는 게 명분의 골자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은 다르다. 지식재산권의 권리가 너무 잘 집행됨으로써 지대 추구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지식재산권의 불로소득화를 책은 비판한다. "자본이 지식재산권이란 여물통에 코를 박고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여물통의 먹이는 거의 영원에 가까울 정도로 채워진다.

금융기업의 불로소득도 마찬가지다. 존 케인스는 공급과 수요가 이자율을 결정한다('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고 본 데서 나아가 "자본의 희소성을 끝장내는 데 필요한 정도로 공급을 늘리면 불로소득자의 보너스를 좌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케인스의 판단이 틀렸다고 확언한다. 자본은 결코 희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플랫폼 사업 운영자도 지대 추구와 다르지 않다. 플랫폼 사업은, 경쟁 거래 당사자 중 한 명 이상이 '플랫폼 중개로 해당 거래가 충분히 촉진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서비스 대가로 중개자에게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로 돈을 번다. 그러나 대다수 플랫폼 사업이 그러하듯이 플랫폼에서의 거래는 종종 중개의 혜택이 없는 상태로 진행된다. 유효한 이용자가 절정(23억명)에 달했던 2018년의 페이스북 수입은 560억달러였다. 구글과 같은 플랫폼 기업은 경쟁 기업과 '스카우트 채용금지' 협정을 맺고 서로의 직원을 고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직원의 임금 인상은 자동으로 저지됐다.

불로소득이 전 사회의 궁극적 지향점이 되는 사회의 종말은 "노동의 약화와 혁신의 질식"이라고 저자는 쓴다. 15세기의 베니스(베네치아), 18세기의 네덜란드를 사례로 들면서 책은 "불로소득의 정신이 횡행한 나라는 반드시 망했다"고 주장한다. 알아서 몸집을 부풀리는 자산 이면에서 기업가적 정신이 사라지고 '소유자적 정신'만 횡행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건 시한부 운명이다.

책은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와의 접점을 시도한다. 자본수익률(r)은 경제성장률(g)보다 언제나 높았다(r>g)는 피케티의 부등식은 '불로소득과 지대'로 세계 자본주의사를 살펴본 이 책과 연결된다.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보다 가치를 '추출'하는 사회를 우리는 살아간다. 원제 'Rentier Capitalism'.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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