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간호사도 일부 의료행위…양성화 주장에 안전성 우려 맞서
정부가 PA간호사(의사보조인력)에게 심폐소생술, 응급약물 투여 등의 권한을 주는 지침을 마련하자 의료계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PA 제도화에 반대하는 의견과 이번 기회에 양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8일부터 PA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할 수 있는 ‘진료지원 간호사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확대 시행한다고 밝혔다.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전문·전담·일반간호사)에 따라 98개 진료지원 의료행위 중 9개를 제외한 89개 업무를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위임이 금지된 업무는 엑스레이 검사, 관절강 내 주사, 방광조루술·요로전환술, 배액관 삽입, 대리 수술, 골절 내 고정물 삽입·제거, 전신마취/척추나 경막외 마취, 사전의사결정서 작성,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가지다.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수련병원에 의료공백이 생기자 전공의들이 해온 업무를 간호사들이 부분적으로 맡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이 법적 보호 없이 간호사 업무 범위를 넘어선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마련한 것이다.
● 불법·편법 → 양지화·제도화해야
현행 의료법상 국내에는 PA간호사 제도가 없다. PA간호사 업무 영역은 불법이다. 전공의 이탈로 전공의 업무 일부를 수행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사실상 법적 안전망 없이 자신의 업무 범위 밖 영역을 커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 사고 발생 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이로 인해 간호사들이 걱정 없이 PA업무를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진료지원 간호사 시범사업을 통해 간호사들이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PA간호사는 암암리에 운영돼왔다. 대한간호협회 산하 병원간호사회는 전국에 5600명 이상의 PA가 있을 것으로 집계했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2만 명으로 추산했다. 부족한 의사를 메우기 위해 PA간호사를 모집하는 관행도 있었다.
한 간호계 관계자는 “PA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숙련된 간호사들은 임상현장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전공의보다 관련 업무를 더 잘 수행한다”며 “PA업무를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게 합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사 업무 범위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며 “정부가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 보호를 해주면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한층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간호사 업무 부담 가중...의료사고 발생 우려
전공의 이탈로 의료공백이 큰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PA업무를 하는 건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보건의료노조는 8일 입장문을 통해 “의사 업무 중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무제한으로 허용해 환자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사실상 의사 업무가 무제한으로 간호사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사고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고 본다. 보건의료노조는 “고난도·고위험 시술까지 간호사가 할 수 있게 허용했다”며 “진료 공백을 해소해 환자생명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심각한 의료사고를 유발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응급의학회도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응급의학회는 “흉부압박, 양압 환기, AED 사용은 기본 심폐소생술 범위는 넘어서는 전문심장소생술”이라며 “간호사 단독으로 기도 삽관, 응급 약물을 투여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우려를 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도 삽관이나 중심정맥관 삽입 등은 진료지원을 넘어선 고도의 의료 행위라고 설명했다.
PA간호사 시범운영 과정에 발생하는 의료사고는 의료기관장이 법적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들도 나온다. 정부의 보완 지침에 따르면 PA업무 범위는 ‘간호사 업무범위 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의료기관장 책임 하에 관리·운영돼야 하며 관리·감독 미비로 인한 사고의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에게 귀속된다고 명시돼있다.
복지부는 관리·감독을 잘하면 의료기관장이 법적 책임을 질 일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책임 주체는 여전히 의료기관장이 될 위험이 높다는 입장이다.
PA가 제도화된 국가들은 교육과 수련 과정 등을 통해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전문적인 훈련 없이 PA업무에 뛰어드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제도화를 위한 충분한 논의와 교육 환경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제대로 자격을 갖추지 못한 PA의 의료행위는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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