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나운 곳아!" 조선소의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책과 세상]

김그루 등 11인,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2023년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일하는 여성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나는 우리회사 원더우먼'. 한 여성 노동자가 선박 자재 물류창고 입출고 업무를 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고용노동부 제공

“해고통지서를 받아보니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조선소 들어와서 20년 동안 해고돼서 나갈 정도로 엉망으로 살지는 않았는데 시키면 시킨 대로 열심히 일해줬어요. 너무 분하고 억울하더라고요.”
-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중에서

수십만 톤 크기의 배를 만드는 곳, 위험하고 거친 노동을 하는 곳, 그래서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삶은 어떨까. 책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두 조선소(한화오션과 케이조선)에서 일하는 여성 11인의 인생을 당사자 구술로 전한다. 용접, 도장, 급식, 청소 등 여성이기에 언제나 더 고단했을 노동 일과와 익히 알려진 바가 없었던 날것의 증언들이다.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2016년 무렵 조선업에 밀어닥친 대량해고 사태를 되짚어 봐야 한다. 하청노동자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고 남아있던 이들도 임금이 대폭 깎이거나 동결됐다. 직장이 한순간에 폐업을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노동조건이 후퇴하며 30년 차 숙련공이 3년 차와 같은 임금을 받아도 순응해야 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이미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다른 일터로 떠난 마당에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왜 여전히 자리를 지켰을까.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시로 폐업하고, 근속 연수가 승계되지 않고, 노조원이 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관리 대상이 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수십 미터 높이의 독(선박 건조 부두)에 오르고, 거리에 드러눕고, 구호를 외쳤다. "이 사나운 곳아!"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중꺾마'의 심정으로 지금도 균열을 만들고 있는 조선소의 여성들에게 절망도 낙관도 아닌 지지를 보낸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김그루 등 지음·코난북스 발행·287쪽·1만8,000원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