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 대상 존중하고 온전하게 다루라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추상적인 조언은 구체적인 사례로 채워져야 제대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한 사례로 책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에서 든 전쟁에 대한 서술을 든다. 이 책은 인류의 전쟁을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또는 먹이나 은신처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확장한다. 이 책은 “다른 인간 집단과의 싸움은 다른 동물을 상대로 한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동물에게 승리를 거두어온 요인으로 언어를 활용한 소통 능력과 도구와 무기의 활용 등을 들었다. 이어 “인구가 증가하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쟁의 경쟁자인 육식 동물을 인간 정착지로부터 먼 주변부로 밀어내면서 다른 인간과의 싸움이 더 중요해졌다”고 주장한다.
전쟁의 범주를 동물과의 싸움으로 확장해야 하는 이유를 필자는 제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기존 논의를 무시하는, 경솔한 접근이다. 기존 정의 중 잘 정리된 것을 〈세계 전쟁사 사전〉의 머리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전은 전쟁을 “국민들 혹은 국가들 사이나(국제전) 한 나라 안의 여러 당파나 파벌, 주민들 사이에서(내전) 전개된 공공연한 무력 분쟁”으로 정의했다.
이 사전에 게재된 전쟁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000년 전에 치러졌다. 이 사전은 210만 년 전 아프리카 어느 지점에서 벌어진, 영양 사체를 둘러싼 호미닌과 하이에나 간 싸움은 수록하지 않았다. 당연한 편집이다.
사람은 자기 집안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마련이고, 인류는 자신이 현재 문명에 도달한 여정을 되짚어보기를 좋아한다. 빅뱅 이후 지구 생명과 인류의 역사를 빅히스토리라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빅히스토리 책이 여러 권 나왔다. 일부는 번역됐고, 일부는 국내 저자에 의해 쓰였다. 그중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의 다음 대목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 초기 인류의 사냥은 6만 년 전이 아니라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시작했다.
- 당시 인류한테는 활은커녕 창도 없었다. 단지 주먹도끼가 있었다.
- 최초의 사냥은 추적 달리기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한 인체의 역량은 오래 달리기였다. 관련해서 인체는 땀을 내서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초식동물은 속도는 인간보다 빨랐지만 오랫동안 뛰지 못하고 쓰러졌다.
순서는 ①털이 사라지고 다리가 길어지는 등 장거리 주행 능력 발달 ②추적 사냥 ③창 발명 ④활 발명이지, 인용문과 같이 ④활 발명에서 장거리 보행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인류학자 이상희 교수는 초기 인류가 200만 년 전부터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영양원으로 확보했다면서 그 방법은 여타 포식동물과 달랐다고 전한다.
이 교수는 2019년 〈시사IN〉에 기고한 ‘남자만 사냥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에서 “인류는 단시간에 확 따라잡아서 순식간에 숨통을 끊는 방법이 아니라, 길게 잡고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죽이는 방법으로 사냥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무더운 대낮에도 끈질기게 따라다닐 수 있도록 털을 잃고 땀을 흘리는 방법으로 체온을 조절했다”고 말했다.
이제 더 실질적인 대상을 다룬 글을 놓고 생각해보자. 논의 대상은 ‘미네소타 프로젝트’다. 기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서울대 교수 226명이 1955년부터 1962년까지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프로젝트는 짧게는 1년 연수부터 길게는 정규 박사과정까지로 구성되었다. 서울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네소타대학으로부터 의학과 보건학, 농학, 공학 등 분야에서 혁신적 성장을 이루는 바탕이 될 지원을 받았다.
크로스체크로 사실인지 검증해야
다룰 주제는 ‘미국 정부가 서울대를 도울 미국 대학으로 미네소타대를 선정한 이유나 배경은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다. 다음 두 가지 설명을 놓고 생각해보자.
6.25전쟁 때 미네소타주의 인구 순위도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 글이 서술한 것처럼 한국에서 전사한 미군 중 미네소타주 출신의 비율이 가장 높았을까? 미국의 주별 6.25전쟁 전사자 통계를 찾아보면 미네소타주 출신 전사자는 주별 전사자에서 20째로 많았다. 미국 군사 육군센터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출신 전사자가 2030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사자가 1000명보다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 1894명, 뉴욕 1766명, 오하이오 1488명, 일리노이 1436명, 텍사스 1311명, 미시간 1242명 순이었다. 전사자가 1000명보다 적은 주 순서는 켄터키 750명, 버지니아 750명, 인디애나 742명, 미주리 737명, 테네시 714명, 웨스트버지니아 703명, 노스캐롤라이나 694명, 매사추세츠 663명, 조지아 640명, 위스콘신 627명, 앨러배마 589명, 뉴저지 589명, 미네소타 548명 등이었다.
그렇다면 미네소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비율이 가장 많은 주’일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미네소타는 인구 중 참전용사 비율에서도 미국 주 가운데 20째였다(출처: 2024 World Population Review). 인구 대비 참전용사 비율이 가장 높은 주는 메인이었고, 10만명 당 654명이 참전했다. 다음은 웨스트버지니아 640명, 플로리다 636명, 뉴햄프셔 607명이었다. 미네소타는 514명이었다.
#2 기사는 ‘참전한 미네소타 출신 군인은 당시 주 인구의 약 5%’라고 전했다. 이는 방금 인용한 자료로 반박된다. 방금 전했듯이, 미네소타주 인구 10만 명 중 514명이 참전했고, 이는 백분위로는 0.5%다. 인구 중 5%가 참전했다는 서술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마지막 가능성은 미네소타주는 참전자 대비 전사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서울대의 자료 ‘미네소타 프로젝트, 서울대학교 재건을 위한 노력은 미네소타대가 선정된 데에는 “미네소타대학교가 보유하고 있었던 농학, 공학, 의학 분야의 우수성과 인적 구성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였다”고 설명했다. 6.25전쟁과 이후 인연은 거론하지 않았다.
서술 대상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는 다른 실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의 저자 제러미 블랙은 영국 역사학자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을 거친 명나라 정벌이 가능했을지 모른다는 ‘대체 역사’에 몇 페이지를 할애한다. 블랙은 역사학자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 대목을 썼다고 나는 추측한다.
다음 해당 문장을 읽고 독자께서도 판단해보시길.
“명나라가 난공불락이기는커녕 1640년대 만주족의 공격으로 결국 멸망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혹시 일본이 그전에 성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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