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힌 홍어·취두부 정도는 ‘순한 맛’...악취 요리 1위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 뭔 뜻이지? [말록 홈즈]
[말록 홈즈의 플렉스 에티몰로지 10]
악취 요리 세계 챔프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은 ‘삭힌 청어’
얼마 전 ‘요리의 과학’이라는 음식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E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쿠팡플레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총 4부작으로 각 주제는 열, 힘, 발효, 맛인데, 내용은 음식을 초월합니다. 유전, 진화, 생존, 철학을 맛/영양성분과 융합해,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나갑니다. 직관적 이해가 어려운 부분에는 사이사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프로그램은 일시정지와 되돌려보기가 가능해, 공중파 TV가 주지 못하는 여유를 즐길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3부 ‘발효’편이 가장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발효와 그 음식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복잡할 수 있으니, 미리 멀미 예방약을 드셔도 좋습니다. ‘발효(醱酵)’란 ‘술 괼 발(醱)’자에 ‘삭힐 효(酵)자로 이뤄집니다. ‘술 익히듯 삭힌다’는 뜻입니다. 영어 ‘fermentation’은 ‘부글부글 끓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fervere’에서 왔습니다. 발효가 진행될 때 거품이 일어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 sur=시큼한(sour)
- strömming=herring(청어)
‘발효되어 시큼한 맛이 나는 청어 절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청어(靑魚)’는 ‘몸색깔이 파란 물고기’입니다. 그렇다면 청어의 영단어 헤링(herring)도 ‘파란 물고기’일까요? 아닙니다. Herring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뿌리로 추정되는 고대영어 ‘har’는 ‘회색(gray)/흰 것(hoar)’을 뜻합니다. 더불어 고대고지독일어(Old High German)로 ‘큰 무리로 이동하다’를 의미하는 ‘heri’에서 왔다고도 합니다. 왜 같은 물고기가 어디에선 퍼렁이고 다른 데선 흰둥이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나라 청어는 파란 색깔이 눈에 띄었고, 유럽 헤링(herring)은 상대적으로 허연 색깔이 더 두드러졌기 때문일 겁니다. 도감 상으로 실제 색깔도 다소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해하기 더 편하신가요?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더라도 마음 상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원풀이는 아직 낯설고 복잡한 영역입니다. 20년 가까운 어원풀이탐정 생활 동안, 기자, 작가, 커뮤니케이터, 마케터 등 많은 분들과 말의 뜻과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진행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원을 좋아하는 분들의 공통적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스토리에 대한 이해력과 상상력이었습니다. 그 저변에는 언어, 역사, 문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중 으뜸은 열린 마음과 상상력이었습니다. 지식만 많다고 친해질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어원풀이’를 창의력 능력자 여러분과 교류하며 발전시키기 위해 이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시간과 마음이 쌓여가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맛있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합니다. 처음엔 어색해도 맛들이면 자다가도 군침 도는 발효음식들처럼요.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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