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힌 홍어·취두부 정도는 ‘순한 맛’...악취 요리 1위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 뭔 뜻이지? [말록 홈즈]

2024. 3. 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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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록 홈즈의 플렉스 에티몰로지 10]

‘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악취 요리 세계 챔프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은 ‘삭힌 청어’

얼마 전 ‘요리의 과학’이라는 음식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E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쿠팡플레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총 4부작으로 각 주제는 열, 힘, 발효, 맛인데, 내용은 음식을 초월합니다. 유전, 진화, 생존, 철학을 맛/영양성분과 융합해,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나갑니다. 직관적 이해가 어려운 부분에는 사이사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프로그램은 일시정지와 되돌려보기가 가능해, 공중파 TV가 주지 못하는 여유를 즐길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3부 ‘발효’편이 가장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발효와 그 음식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복잡할 수 있으니, 미리 멀미 예방약을 드셔도 좋습니다. ‘발효(醱酵)’란 ‘술 괼 발(醱)’자에 ‘삭힐 효(酵)자로 이뤄집니다. ‘술 익히듯 삭힌다’는 뜻입니다. 영어 ‘fermentation’은 ‘부글부글 끓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fervere’에서 왔습니다. 발효가 진행될 때 거품이 일어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출처: Wikipedia>
세계 여러 나라에는 짜릿한 냄새를 풍기는 식힌 음식들이 있습니다. 모험심 강한 미식가들의 투지를 불러일으키죠. 처음에는 도전이고, 익숙해진 후엔 즐거움입니다. 아시아에선 우리나라의 삭힌 홍어와 중국의 취두부와 송화단 등이 대표적입니다. 뜻밖에도 유럽에 이들을 뛰어넘는 세계에서 가장 독한 녀석이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의 삭힌 청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입니다. 항상 그렇듯 가장 먼저 형태소(形態素: 모양 형, 모습 태, 바탕 소. 말의 뜻을 가진 최소 단위. morpheme) 분석에 들어갑니다.

- sur=시큼한(sour)

- strömming=herring(청어)

‘발효되어 시큼한 맛이 나는 청어 절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청어(靑魚)’는 ‘몸색깔이 파란 물고기’입니다. 그렇다면 청어의 영단어 헤링(herring)도 ‘파란 물고기’일까요? 아닙니다. Herring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뿌리로 추정되는 고대영어 ‘har’는 ‘회색(gray)/흰 것(hoar)’을 뜻합니다. 더불어 고대고지독일어(Old High German)로 ‘큰 무리로 이동하다’를 의미하는 ‘heri’에서 왔다고도 합니다. 왜 같은 물고기가 어디에선 퍼렁이고 다른 데선 흰둥이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나라 청어는 파란 색깔이 눈에 띄었고, 유럽 헤링(herring)은 상대적으로 허연 색깔이 더 두드러졌기 때문일 겁니다. 도감 상으로 실제 색깔도 다소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태평양 청어(위)와 대서양 청어(아래) <출처: Fishillust>
그렇다면 오늘의 주인공인 ‘삭힌 청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 중 스트뢰밍(strömming)은 무슨 뜻일까요? 스웨덴어 스트뢰밍(strömming)은 개울이나 흐름을 의미하는 영어 ‘스트림(stream)’과 같은 뿌리를 가진 말입니다. 또한 스트림이 동사로 쓰일 때, ‘줄을 지어 이동하다’라는 뜻도 가집니다. 큰 무리로 집단생활을 하는 청어의 습성이 드러난 이름 같습니다. 이때는 ‘큰 무리로 이동’을 뜻하는 고대고지독일어 ‘heri’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청어떼 <출처: Pinterest>
우리는 세상의 모든 언어가, 각각의 단어들로 1:1 매칭이 될 거라고 막연히 짐작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청어’ 하나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 살아가는 지역이나 생태적 특성에 따라, 이름은 전혀 다르게 붙여집니다. 이러한 전제에 공감만 하더라도 어원풀이의 완성도는 높아집니다. 한국의 ‘푸른 물고기’ 청어는, 유럽에선 ‘허연 물고기’ 헤링이고, 스웨덴의 스트뢰밍은 ‘줄지어 다니는 물고기’입니다. 이 스트뢰밍을 시큼하게 발효시킨 생선절임의 이름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인데, 악취음식의 세계 챔피언입니다.

이해하기 더 편하신가요?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더라도 마음 상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원풀이는 아직 낯설고 복잡한 영역입니다. 20년 가까운 어원풀이탐정 생활 동안, 기자, 작가, 커뮤니케이터, 마케터 등 많은 분들과 말의 뜻과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진행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원을 좋아하는 분들의 공통적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스토리에 대한 이해력과 상상력이었습니다. 그 저변에는 언어, 역사, 문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중 으뜸은 열린 마음과 상상력이었습니다. 지식만 많다고 친해질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어원풀이’를 창의력 능력자 여러분과 교류하며 발전시키기 위해 이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시간과 마음이 쌓여가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맛있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합니다. 처음엔 어색해도 맛들이면 자다가도 군침 도는 발효음식들처럼요.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2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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