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48% “의대 증원 2000명 찬성”
政 “의사 수 늘리지 않고선 개선 불가능” vs 醫 “의사 수보다 의사 배정 문제가 더 중요”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의과대학을 둔 전국 40개 대학이 정부에 신청한 의대 증원 규모는 3401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지난해 수요 조사에서 의대 증원 최대치 2847명을 훌쩍 넘겼다. 의대 증원 요구는 특히 비수도권 대학에서 쏟아졌다. 비수도권의 27개 대학은 기존 정원보다 2.2배 많은 2471명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충북대에서는 현재 49명인 정원을 5배 수준인 250명까지 늘려 달라고 신청했고, 울산대도 40명에서 150명으로 4배 가까이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수도권 의대 13곳에서는 모두 930명을 늘리겠다고 신청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강화에 대한 지역의 강력한 희망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중환자실까지 떠나는 의사에 반감 여전
정부는 비수도권 의대와 정원이 50명 미만인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을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신청 인원과 무관하게 최종 증원 규모는 2000명이라고 강조했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복지부·교육부뿐만 아니라 의료계·전문가들이 모여 위원회를 구성해 대학별로 제출된 내용을 비교해 최종적으로 (증원 배정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2월6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포함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자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났다. 정부는 2월29일까지 복귀를 명령했으나 대부분 거부했다. 정부는 3월5일 100개 주요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레지던트 1~4년 차 9970명 중 근무지 이탈자는 8983명(90.1%)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또 정부에 저항한 대한의사협회 간부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를 진행 중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강경 대응에 맞불을 놨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3월4일 "전공의가 면허정지 처분 등 불이익을 받으면 모든 의사의 분노가 극에 달해 정부와 크게 싸우게 될 것이다. 정부가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정책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이런 의사들의 파업 사례는 영국·독일·이스라엘 등 외국에도 있다. 그래도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까지 떠나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문제라는 여론이 강하다. 시민단체·노동계·종교계는 물론 의료계 내에서도 전공의의 복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실련은 3월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들이 즉시 환자 곁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정부에는 의료인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될 경우 관용이나 선처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2월21일 경총·중기중앙회 등 경제단체와 공동으로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이번 집단행동은 코로나19 현장을 어렵게 지켜준 데 보내준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걷어차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한국천주교주교회·기독교윤리실천운동·조계종은 각각 성명을 통해 전공의의 현장 복귀를 촉구하면서, 정부에는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처벌에 의존하지 말고 설득과 합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전국 65만 간호인 단체인 대한간호협회는 2월28일 성명을 통해 "제아무리 그럴듯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저버리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과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는 의료인이 환자를 저버리는 행위는 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의 의료 개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민 절반가량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3월6일 나왔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2000명은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48%로 집계됐다. '2000명보다 적게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36%,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11%, 모름·무응답은 5%였다. 국민은 병원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 진료 대란과 같은 필수의료·지역의료 문제에 대한 해법을 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에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이견이 없다. 다만 의료계는 의사 수보다 의사 배정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서 일할 수 없게 만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필수의료 수가를 조정하고 지역의료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의사 수를 늘리지 않고서는 국민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필수의료·지역의료 개선을 위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이는 이미 군 의료인력 증원 사례로 확인된 바 있다. 군 병원의 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군 의대 위탁교육을 수십 년간 시행해 왔다. 매년 20명씩 의사가 배출됐으나 졸업생 100명을 조사한 결과 군대가 필요로 하는 외과나 응급의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의사는 각 1명이었고 대부분은 의무복무 연한만 채우고 전역했다.
따라서 이번 의대 정원 증원은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지역의료 개선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의 해법이 돼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필수의료·지역의료 문제 해결의 필수 조건이다. 다만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는 있다. 가령 의대 증원을 대학별 배분이 아니라 지역에 배정하는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증원된 의료인력이 필수의료·지역의료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의료사고 안전망이다. 평생 종사할 전공과목으로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주된 이유는 중증환자 진료 중 환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면 담당 의료진이 형사처벌될 수 있는 제도적 위험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방안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이다. 의사가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 의료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생겨도 기소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가 마련한 법안의 핵심이다. 또 응급환자 진료, 중증질환 진료, 분만 등 필수의료행위는 환자에게 중상해가 발생해도 기소하지 않도록 했다. 두 번째는 필수의료·지역의료에 대한 합당한 의료 수가 인상이다. 이를 위해 2028년까지 약 10조원을 투입해 필수의료 분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흉부외과·심장내과·응급실 등)의 수가를 적절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세 번째는 이런 필수의료인력이 지역으로 유입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의대생에게 장학금과 정주비 등을 지원하는 대신 일정 기간 지역에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 등 다양한 방법을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가 제시한 의료정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출신 지역, 의대 졸업 지역, 전문의 수련 지역이 지방 광역시나 도 지역인 경우 수도권보다 지방 근무 가능성이 모두 2배 이상 높다. 또 2017년 전문의 자격 취득자의 2020년 근무 지역을 분석한 결과, 비수도권 의대 졸업 및 수련 시 비수도권 지역에 남는 비율은 82%로 나타났다.
의료대란이 의료재앙으로 번질 위기
정부는 3월6일 현재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행정처분 사전통지서에는 업무개시명령 위반으로 3개월 동안 의사면허를 정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의대 교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여 의료대란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정부를 상대로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무효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보건복지부에 대입 증원을 결정할 권한이 없으니, 이번 증원 결정은 무효라는 주장이다.
또 일부 의대 교수들은 삭발 시위로 정부의 이번 결정에 항의했다. 만일 의대 교수들까지 의료 현장을 떠나면 현재의 의료대란은 의료재앙으로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간호사에게 무급휴가를 권장하는 등 운영을 축소하는 병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3월8일부터 간호사들이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응급 약물을 투여한다. 전공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PA(진료 보조) 간호사를 시범사업 형태로 허용했지만, 불법 진료 우려가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공개했다.
의료재앙을 막기 위해 각계에서는 절충안을 제시하며 양측이 한발씩 양보하라는 요청이 나온다. 한 의대 교수는 "필수의료·지역의료에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맞다. 그런데 당장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으로 늘린다는 것은 부담스럽다.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해마다 조금씩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도 "10년 동안 매년 의대 입학정원의 15~20%씩을 늘릴 것을 제안한다. 초기에는 458명에서 611명 사이의 증원 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필수의료·지역의료 개선이라는 본질을 양측이 상기해야 한다. 그래야 근본적인 해법이 보이고 제2의 의료대란을 예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윤 교수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복원하면 전공의들이 파업해도 대학병원이 중증환자 입원·수술을 미루지 않게 할 수 있다. 대학병원은 중증환자 위주로 진료하고 나머지 환자는 종합병원이나 동네병원에서 진료받게 하면 된다. 또 진료 면허제를 도입해 의대 졸업 후 적어도 2년 동안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에서 수련을 거쳐야만 혼자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에서 의료 질을 보장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니만큼 더 늦기 전에 도입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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