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호 미국 외과 전문의’ 민병철 前 서울아산병원장 타계

허지윤 기자 2024. 3. 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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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한국인 1호, 불모지와 다름없던 한국 외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이 8일 오전 8시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민 전 원장은 생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미국에 남지 않고 한국에 돌아온 것'을 꼽았다"며 "한국 외과학의 뿌리를 내린 효시로, 그가 길러낸 많은 후학은 한국 의료를 세계에 전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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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한 일, 미국에 남지 않고 한국으로 온 것”
사재 20억원 쾌척
“모든 의료 종사자 실력 뛰어나야”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이 8일 오전 8시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서울아산병원

미국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한국인 1호, 불모지와 다름없던 한국 외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이 8일 오전 8시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미국에서 배운 선진 의술을 국내에 도입하고 후학 양성 등 한평생 한국 외과학 발전을 위해 힘썼다. 국내 간담도외과와 소아외과 분야에서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은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시절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대 의대에 입학했고,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의대를 졸업했다. 이후 해군 군의관을 거쳐 미국 보스턴 터프츠대학병원에서 외과학 전공의 수련을 받고 2년간 전임강사로 일했다. 이후 1960년 미국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국내로 돌아왔다.

1961~1977년 서울대 의과대학 외과 교수로 재직한 후 신영외과병원을 개원했으며,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소화기병학회 회장, 대한외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3년에는 고려대 의과대학 구로병원의 초대병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90년 서울아산병원에 2대 병원장으로 취임해 11년간 병원을 이끌면서 서울아산병원을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시키고 글로벌 병원으로서의 초석을 다졌다.

서울아산병원 재임 당시 환자 중심 문화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며 병원 경영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의료기관, 환자를 위한 병원을 선보인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1995년), 대한민국기업문화상(1995년),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상(1999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퇴임 후인 2010년에는 서울아산병원에 간호·보건·행정 직원 인재 육성을 위해 써달라며 사재 20억원을 쾌척했다. 모든 의료 종사자의 실력이 뛰어나야 최고의 진료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였다.

서울아산병원은 “민 전 원장은 생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미국에 남지 않고 한국에 돌아온 것’을 꼽았다”며 “한국 외과학의 뿌리를 내린 효시로, 그가 길러낸 많은 후학은 한국 의료를 세계에 전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례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0일 오전 11시에 진행된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 3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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