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해결사’ 오민석, 잔잔하게 녹아든 내 이웃의 악당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4. 3. 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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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모를 일이다.

“나는 나 밖에 안믿는다”는 엄마 밑에서 컸다. 나한테 가장 가까운 엄마는 내 고막에 대고 “넌 이게 문제야. 넌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평생 그 소리만 해댔다. 그래서 좀 잘해보려고 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JTBC 수목드라마 ‘끝내주는 해결사’의 노율성(오민석 분)은 제법 독특한 악역이다. 굳이 따지자면 얼마 전에 종영된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박민환(이이경 분)과 결이 같다. 장막뒤에 숨은 인형술사처럼 치밀하지도 못하고 원초적인 적의에 사로잡힌 인물도 아니다. 다만 겁 많고 자기애만 좀 강할 뿐이다.

노율성은 대한민국 최고 로펌 차율의 대체 불가 후계자지만 좀체로 회장인 엄마 차희원(나영희 분)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여기엔 희원 눈에 안차는 김사라(이지아 분)와의 결혼도 한 몫했다.

이 둘의 결혼에 대해 드라마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놉시스상 노율성은 차율에 인턴으로 들어온 김사라에게 반했고 호락호락 넘어오지 않으면서 정복욕으로 발전했으며 국수공장 실패에 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고 만 가정형편을 공략해 결혼에 성공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어쨌든 김사라와의 결혼은 노율성으로선 차희원에 맞선 첫 도전이었으며 천덕꾸러기 처지를 악화시키는 모험을 감행했던 거사였다.

드라마는 김사라와의 결혼이란 노율성의 거사를 원인무효시키며 시작됐다. 차희원과 노율성, 그리고 법무법인 차율의 숙원은 로스쿨과 차율타운의 건립이다. 하지만 법사위 통과마저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차희원도 차희원이지만 노율성으로서도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엄마 몰래 뒷주머니를 차겠다고 오인회를 만들어 차율타운 건립부지를 상대로 작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차율타운 건립이 절실한 건 차희원보다 노율성 쪽이 더했다.

그런 와중에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이 터진다. 부모 중 한명이 외국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내가 한국인 남편과 위장이혼하고 외국인과 위장 결혼한 후, 아이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고 나서 다시 이혼하고 재결합하는 형태의 부정행위다.

차희원의 농간으로 김사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율성과 이혼한 상태였고 그 부정입학의 주범이 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고 만다. 그 사이 차희원은 국회 법사위원장 딸과 노율성의 재혼을 추진한다.

처음엔 반대하던 노율성도 걸린 게 많은 차율타운 성사를 위해 동조하고 나선다. 이혼·재혼 잘 처리하면 인정하겠다는 희원의 말도 한 몫했다.

그리고는 반발하는 김사라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설득에 나선다. “자 흥분하지 말고 내 얘기 잘 들어. 로스쿨 세우고 차율타운 세우는 거잖아. 그러니 우리 이혼은 절대 날 위한 게 아냐. 네버! 우리 세 식구 위한 거야. 나는 법사위원장 사위가 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혼은 정략 위혼야. 집, 차, 생활비 다 나한테 요구해. 사라야, 내 인생에서 퍼스트는 김사라 당신 하나 뿐야. 당신만 이걸 받아들이잖아? 그럼 모두가 다 행복해.”

이런 진심어린 설득에도 김사라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도 좀 아름다운 이별 그런 것 좀 하잔 얘기를 그렇게 못알아 듣나?

아니 막말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이혼해도 이혼 안한 여자처럼 살게 해주겠다잖아. 근데 그렇게 어깃장 부리면 아무리 내 마음 속 퍼스트라도 참을 수 없는 거 아닌가?

장모였던 박정숙(강애심 분) 여사 건은 말 그대로 실수였다. 근데 노인네도 잘못했지. 왜 사위 발목을 잡으려고 하냐고. 사위 잡혀 들어간다고 딸이 석방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위가 보통 사위야? 노후 편히 사시라고 국수집도 내드리고 그런 사위 아니냔 말이지.

물론 장소가 옥상이라 좀 그렇긴 해. 화가 나서 밀친 것도 잘못은 맞아. 그렇다고 죽으라고 떼민 것은 아니잖아. 난간에 발이 걸려 넘어간 걸 어떡하라고.

로스쿨이랑 차율타운도 그래. 아니 언 놈이든 하게 된다면 최고 로펌 차율이 선정되는 게 맞지 않나? 지역 재개발도 되고. 이득은 누구라도 보는 건데 그게 나 노율성이면 안될 이유도 없잖아.

상황은 노율성의 뜻대로 풀려가지 않았다. 어머니 차희원조차 색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공득구(박성일 분)를 사주해 나유미를 죽인 어머니 차희원의 범행이 드러났다.

상황이 이쯤되면 어머니가 다 떠안고 가는 게 맞지 않나? 평생 당신만 믿고 사신 양반이니 아들도 그렇게 사는데 유감은 없으시겠지. 차율 회장직은 당연히 아들이 맡는 게 마땅하고. 근데 오인회의 로비장부까지 공개돼 버렸네. 그럼 아무도 내 뒷배를 봐주지 않게 되잖아.

사라야, 사라야, 내 마음의 퍼스트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나 사람 죽이는 거 무서워. 공득구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몇 대 때리지도 못했어. 근데 이렇게까지 날 망쳐야겠니? 나 너 정말 사랑했다. 그래서 결혼했고. 자. 그 장부 니가 조작한 거라고 증언만 해. 그래서 우리 다 살자.

이 다정한 설득에도 요지부동이면 정말 널 용서할 수가 없잖아. 그렇다고 끔찍하게 내 손으로 죽일 수도 없고. 이 컨테이너 목적지가 세네갈이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라고 할게. 니 엄마? 이 순간에도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래 밀었다. 실수로 밀었어. 실수니까 살인의도 없었다구. 뭐?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이러니까 내가 널 어떻게 살려주겠냐. 사라야, 인제 진짜 헤어져. 우리. 결국 김사라는 구해졌고 노율성은 체포됐다.

이 악역 노율성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이기심은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이므로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다. 드라마 속 김사라 역시 엄마의 평안한 노후, 사회적 성공이란 이기적 동기로 오랜 연인 동기준(강기영 분)을 버리고 노율성을 택했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이기적인 행위가 사회에, 또 종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경우다. 하지만 과할 경우 노율성이 된다. 누구나 이기적이지만, 그 이기심을 잘못 다루면 가장 가까운 것들조차 따스하게 대할 줄 모르게 된다.

연기자 오민석은 으스대는 걸음걸이, 경박한 말투, 시큰둥한 표정을 앞세워 캐릭터 노율성의 이기심을 현실로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잔잔하게 녹아든 내 이웃의 악당 같아서 강렬한 악역보다도 친근하게 시청자를 설득해냈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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