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48시]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간다”…그래도 병원 문은 닫혔다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2월20일. 전공의가 가운을 벗고 병원을 떠났다. 9일 후 정부의 '최후통첩'에도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는 의료법을 어긴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수순을 밟았다. 그러자 전공의 과정을 마친 전임의가 임용을 포기하겠다고 나섰다. 선배들의 이탈 행렬에 의대 졸업생도 합류했다. 40개 의대 재학생은 집단으로 휴학계를 냈다. 제자를 지키겠다며 3월5일 강원대 의대 교수는 삭발 투쟁을 했다. 일부는 직을 내놨다.
의료 현장은 황폐화하고 있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 현장 최전선인 응급실이 직격타를 맞았다. 당장 빅5 병원은 비상진료 체제에 들어갔다. 병동 통폐합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남은 의료진은 '번아웃(burn-out·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 상태에 이르렀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의 몫이 됐다. 의사가 떠난 응급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3월5일 오후 6시부터 48시간 동안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현장 밀착취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와 보호자 30여 명을 만나 '의료대란'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서울대병원은 빅5 병원 중 전공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전체 의사의 절반가량(46%)이 전공의다. 정부에 따르면, 3월6일 기준 100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10명 중 9명이 근무지를 떠났다. 소속 전공의에게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문을 보낸 서울대병원장은 일부 교수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다.
자궁암 딸을 둔 부모는 갈 곳을 잃었다
"딸이 물만 먹어도 설사하고 약을 먹으면 구토하는데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라고 하기에 강원도 인제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검사도 안 해보고 나가라니요. 아빠 입장에서는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3월5일 오후 7시경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이아무개씨(68)는 "병원에서 염증 치료만 해주고 하급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며 절규했다. 이씨는 자궁암 수술을 받은 딸의 이상 증세가 심해지자 전날 밤 응급실을 찾았다. 이씨 부부는 응급실 문밖에서 휴대전화로 다른 병원의 빈 병동을 샅샅이 뒤졌다. "여보, 전화를 안 받아"라고 말하는 이씨 아내의 목소리는 떨렸다. 부부는 장장 1시간 동안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딸을 휠체어에 태워 급하게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응급의료포털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는 수용할 수 있는 일반 병상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병상 19개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음압 격리병상도 빈자리가 없었다. 빅5 병원인 신촌 세브란스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 여유 병상은 하나도 없었고 2개의 병상이 부족했다.
오후 8시경, 한 가족이 사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찾았다. 안아무개씨(56)는 "갑자기 아내가 쓰러졌다"며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 안씨는 병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왔다고 했다. 그는 "대형병원이고 중소병원이고 전부 거절했다"며 "자기네들은 병상도 없고 의료진도 파업 중이니 가급적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탄식했다. 그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서울대병원을 찾았다고 호소했다.
오후 9시가 지나서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의 발걸음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10분 간격으로 환자를 태운 차량이 들어왔다. 환자 수에 비례해 대기시간도 늘어났다. 조해철씨(가명·40대)는 "응급실 안에서 '대기시간이 길다. 양해 바란다'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도로에서 미끄러져 뇌출혈 증상을 보인 모친을 모시고 왔다. 조씨는 "벌써 4시간째 기다렸다"며 "의료진이 부족하니까 평소보다 2~3배 더 걸리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응급실 내부에는 환자 1명당 보호자 1명만 출입증을 걸고 입장할 수 있다. 오후 11시경 왔다는 최성윤씨(가명·64)는 기자에게 내부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최씨는 "안쪽(보호자 대기실)은 아주 난리도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제발 진료 좀 받게 해달라'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느냐'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고, 참다못해 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자정이 넘어도 사태가 수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지친 상태였다. 병원 로비에서는 한 중년 여성이 가사도우미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집에 가서 아이를 재워 달라"고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밀려드는 환자에 응급실에 남은 의료진은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최씨는 "간호사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며 "그들이 없었으면 재난 상황이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6일 새벽 3시경이 돼서야 응급실이 한산해졌다. 대신 응급실 밖 대기실은 환자를 기다리는 보호자로 꽉 찼다. 자리가 부족해 일부는 본관 1층 로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패딩 점퍼를 이불 삼아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가족도 있었다. 새벽 4시경 1층 로비에서 만난 탁아무개씨(36)는 대장암 3기 환자인 부친이 새벽 1시경 항암 부작용을 보였다고 했다. 탁씨는 "앞으로 응급실을 들락날락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올 텐데 순조롭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치료받을 수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다"
전공의 파업 3주 차.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6일 한낮에도 이어졌다. 박아무개씨(60)는 위암 말기 환자인 오빠와 수도권 병원을 온종일 누볐다고 했다. 박씨는 "국립암센터에서도 의사가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며 "이럴 때는 '아픈 게 죄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마저 전공의 집단휴진을 막을 수 없는 듯했다. 박씨는 "오빠가 살고 싶다고 했다"며 "나로서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데려다주고 싶다"고 울먹였다. 그는 "여기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아무개씨(34)는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간다"고 울분을 토했다. 폐암 말기인 이씨 부친이 갑자기 피를 토해 서울대병원을 찾았는데 "받아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씨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향해 "이제 빨리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다.
7일 자정 무렵, 의사가 빠져나간 상황에서도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순간은 여전히 존재했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아버지의 연명치료를 논의하는 한 가족의 목소리가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연명치료를 받을지 말지, 이제 고민해야 된대." 의료진으로부터 아버지의 상태를 전달받은 딸이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서로를 토닥였다. "아빠 얼굴 보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어" "어머니 모시고 오자" "우리 할 만큼 했잖아". 가족의 유명(幽明)을 논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료진은 오전 8시가 넘어서야 담당 교수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생(生)과 사(死)의 기로에 선 가족도, 지켜보는 다른 보호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응급실 앞에는 무거운 침묵만 깔렸다.
7일 오후 6시. 환자 보호자들과 병원에서 함께 먹고, 자고, 씻었던 48시간이 지났다. 병원을 나서면서 이들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사 수 증원도,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면허 박탈도 아니었다. 단지 "가족을 살리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더 이상 아픈 환자를 붙들고 병원을 찾아 배회하지 않기를, 아픈 환자가 제때 치료받아 소중한 목숨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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