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경기동부의 위험한 정치공생[이철호의 시론]
여야 당원 가입 문턱 낮아져
경선도 팬덤에 좌우되는 공천
4월 총선 강 대 강 충돌 불가피
李는 경기동부 조직력 빌리고
비례대표 지분을 떼주는 연대
리버럴 넘어 이념 정당 치닫나
여야 공천이 역사상 유례없이 무시무시해졌다. 중도·실용 목소리는 ‘내부 총질’로 단죄되고, 여야 협상과 타협은 위선과 타락으로 몰렸다. 오직 주류만 정통일 뿐 비주류는 모두 이단으로 박해받았다. 당원 공천권 50% 반영의 경선은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았다. 정당 가입 문턱이 낮아진 반면, 강성 당원들 손에 정치생명을 좌우할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개딸’ 같은 팬덤이 표적을 찍고 달려들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독주 체제다. 최측근인 정성호 의원조차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이 대표 특유의 생존 본능과 동물적 감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서 선거법 무죄로 기사회생했고,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에도 단식 끝에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우연이 반복되면 능력으로 비친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으로 이 대표가 부활하면서 당 장악력은 넘볼 수 없는 경지가 됐다. ‘비명 횡사’ 논란에도 “당원·국민이 뽑은 혁신 공천”이라며 흔들림 없이 직진 중이다.
그에게 ‘사당화’라는 비판은 사치일 뿐이다. 더 많은 친명으로 진지 구축이 우선이다. 사실 동교동계·친문·전대협 출신들은 큰 변수가 아니다. 명망가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해왔을 뿐 오래전부터 진보 운동권과 유리돼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공천에서 떨어져도 반발은 산발적이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제3 지대로의 이탈을 최소화해 지역구 대부분을 여야 1 대 1 구도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2016년 이후 정치판은 야당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진보 연대로 이중 방탄막을 쳤다. 좌파 상징 인물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재명은 김대중 이후 최고의 정치 지도자다. 이재명을 헐값에 쓰진 말자. 민주당을 장악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도 손을 내밀어 민족해방(NL)계, 특히 경기동부연합과 연대에 신경을 썼다. 시민사회 몫으로 넘겨준 비례대표 1∼4번은 과격 NL계 후보들에게 돌아갈 게 분명하다. 당선 안정권인 5∼13번도 민주당-진보당-새진보연합이 번갈아 차지해, 민주당은 3석밖에 안 된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선 오히려 10석 남짓 전망되는 조국혁신당을 위성정당으로 여겨 지지율이 15%에 육박한다.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떠돈다.
이 대표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NL계가 진보 진영에 구축한 조직력을 활용하는 대신 현실 정치에서 NL계에 일정 지분을 떼주는 게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2012년 제19대 총선 때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단일화를 통해 통합진보당을 지역구 7명, 비례대표 6명의 ‘원내 3당’으로 키워준 적이 있다. 부정경선 의혹 속에 이석기·김미희·이상규·김재연 등이 국회에 들어갔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이원욱 의원은 “경기동부연합이 이재명을 숙주로 성남시, 경기도를 지나 이제 국회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든든한 외곽 세력을 포기하긴 어렵다. 경기동부연합은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 등을 배출했고, 특히 양 위원장은 2위보다 두 배 많은 56.61%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NL계는 주요 시민단체들도 확고하게 장악했다. 촛불 사태를 주도할 만큼 조직 동원력도 막강하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말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이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이후 3개월 동안 줄줄이 유죄 판결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 대표는 먼지떨이 식 수사라고 반발했지만, 법원은 모두 검찰 손을 들어주었다. 당장 위증교사 의혹 재판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젊고 똑똑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앞세우고 김건희 여사는 전면에서 사라졌다. 최근 김 여사와 전화 통화를 한 문화계 인사는 “여전히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다만, 디올 백 사건 이후 콜백이 한참 늦은 것을 보면 총선을 앞두고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여야 모두 사생결단을 각오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이 친윤 중심의 강경 보수 정당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민주당은 NL과 연대해 리버럴을 넘어 아예 이념형 좌파 정당으로 치닫고 있다. 4월 총선이 죽고 사는 정면 충돌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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