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반격 “트럼프는 푸틴에 조아렸지만 난 굴복 안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3. 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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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연설서 재선 선거전 포문
”민주주의 위험, 역사가 보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7일 밤 워싱턴 DC 연방의회에서 임기 마지막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오늘날처럼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국내외에서 공격받은 적은 없다. 역사가 지켜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 밤 워싱턴 DC 연방 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진행한 국정 연설의 상당 부분을 11월 대통령 선거의 경쟁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 쏟아부었다.

국정 연설은 연초 대통령이 주요 정책 방향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지만, 바이든은 이날 트럼프와 지지자들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표현할 정도로 트럼프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번 국정 연설은 ‘수퍼 화요일’(5일)에서 참패한 트럼프의 공화당 경쟁자 니키 헤일리 전 주(駐)유엔 대사가 중도 사퇴해 대선이 양강 구도로 확정된 뒤 이틀 만에 열렸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내 최후의 국정 연설이 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이 때문에 바이든이 이날 연설에서 ‘정치적 목적(재선 성공)’을 숨기지 않았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오후 9시 15분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 넥타이를 맨 바이든이 본회의장에 등장하자 상·하원 민주·공화당 의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주당 의원들은 “4년 더!”라고 외쳤다. 바이든은 “나는 평생 자유와 민주주의를 포용하는 법을 배웠다”며 “(정반대로)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은 분노와 복수, 보복이라는 다른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말로 트럼프와 지지자들을 겨냥했다.

자신보다 네 살 어린 트럼프를 ‘내 또래 다른 사람’이라고 지칭하면서 그가 복수와 보복 등을 앞세운 ‘증오 정치’를 하고 있다며 날을 세운 것이다. 바이든은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대신 ‘전임자’ ‘전직 대통령’ 등으로 언급했다.

바이든은 “(트럼프는) 러시아 지도자(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머리를 조아렸다”며 “나는 푸틴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다”고도 했다. 트럼프가 지난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을 상대로 충분한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공격을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일었던 파문을 소환한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지난해 형사 기소된 여러 계기 중 하나인 2021년 1월 지지자들의 연방 의회 난입 사태도 꺼내 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3년 전 사태로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는 걸 봤다”며 “우리는 다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할 때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친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키거나 야유했다.

바이든은 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트럼프를 겨냥했다. “나는 태평양에서 인도·호주·일본·한국 등 동맹과 파트너십을 되살렸다”며 “전임자(트럼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바이든은 이날 자신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나이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연륜을 부각시키며 정면 대응했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이슈는 우리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늙었느냐다”라고 했다. 이어 “(나는) 미국이 세계의 자유를 지지하던 2차 세계대전 기간에 태어나 두 영웅인 킹(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과 케네디(존 F케네디 전 대통령)가 암살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도 했다. 자신이 격동의 미국 현대사를 지켜본 산증인임을 내세우며 경륜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연단에 오른 바이든의 말투는 평소보다 훨씬 우렁차고 들뜬 어조였는데, 고령 논란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보였다. 바이든의 연설 직후 CNN과 여론조사업체 SSRS가 성인 5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5%가 연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이든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 챙기기에도 주력했다. 연설 도중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숀 페인 위원장을 일으켜 세운 뒤 “월스트리트가 미국을 만들지 않았다. 노조와 중산층이 국가를 세웠다”고 했다. 앞서 바이든은 직접 UAW의 파업 현장을 방문해 연대를 표했고, UAW의 대선 공개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 표심(票心)을 붙잡으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UAW 등 주요 노조는 미시간·위스콘신주 등 핵심 경합주에서 승패를 가르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바이든은 또 부유층과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억만장자세’를 통해 연방 적자를 3조달러(약 4000조원) 줄이겠다고 했고, 현재 15%인 법인세 최저 세율도 21%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가 최근 유세에서 감세를 통해 새로운 경제 붐을 일으키겠다고 공약한 것에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었다.

연설 주제가 국내 이슈에 집중되면서 국제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모습이었다. 이날 연설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 문제는 언급된 반면 북한의 핵·미사일 이슈는 거론하지 않았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이든의 공격을 실시간으로 맞받아쳤다. 그는 당초 연설이 예정된 오후 9시보다 26분 늦게 시작하자 “엄청 지각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큰 결례”라고 했다. 이어 “푸틴은 바이든을 존중하지 않아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러시아의 해외 침공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4년(자신 임기) 동안에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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