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에서 콰지모도로…정성화 “21년차 배우지만 신인의 자세로”
대표작은 행운이자 독…전작 생각 안 날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중근(뮤지컬 ‘영웅’)의 상징이었고, 장발장(‘레미제라블’)의 표본이었다. 안주할 법도 하지만 현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이름 옆에 새로운 캐릭터를 하나 더 세웠다. 바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다. 데뷔 20년 만에 새 캐릭터를 입은 배우 정성화(49)는 “난 콰지모도 뉴비(newbie, 무경험자)”라며 웃었다.
“2004년에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을 처음 했는데, 한국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가 시작한 2007년 즈음엔 전 코지모도를 할 레벨이 아니었어요. 언젠가는 이 작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야 그 꿈을 이루게 됐어요.”
매 작품 맞춤 옷을 입은 듯 캐릭터를 소화했던 정성화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만나 다시 신인의 자세로 돌아갔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이 작품은) 300회 이상 공연한 콰지모도의 대명사 윤형렬, 1000회 이상 공연한 댄서까지 존경스러운 분이 너무 많은 작품”이라며 “난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며 몸을 낮췄다.
정성화의 콰지모도는 그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지난 얼굴들을 지웠다. 잔뜩 굽은 등의 구부정한 자세, 바닥을 쓸어내는 듯한 긴 팔, 일그러진 얼굴과 슬픈 눈의 콰지모도만이 무대에 있다. 그는 “나만의 콰지모도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추한 이미지를 가진 콰지모도에게 연민의 정을 느껴 ‘나라도 저 사람을 사랑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도는 대성당을 지키는 꼽추 종지기다. 15세기 파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콰지모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찾아온 한국어 공연에서 정성화는 양준모, 윤형렬과 함께 콰지모도를 연기한다.
그는 자신 만의 콰지모도를 만들기 위해 긴 시간 연구와 고민을 거듭했다. 콰지모도의 신체적 특징 하나 하나를 살리면서 연기와 노래로 다듬었다. 그는 “콰지모도는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고, 눈과 귀가 불편하다”며 “저음역대의 어눌한 발성과 발음, 일그러진 얼굴로 콰지모도가 가진 어려움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주로 구부정한 자세로 노래하고 연기하다 보니 체력적 한계도 있었다. 그는 “최대한 낮은 자세를 만들어 한쪽 다리로만 걷는 것이 무척 어려워 몇 날 며칠 앓아 누웠다”고 고백한다. 때문에 ‘근육 훈련’은 연습 때마다 빼놓지 않는 ‘필수 코스’가 됐다.
“연습실 분위기가 태릉선수촌 같아요. 보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코어이기에 그것을 지키기 위한 훈련을 하고, 댄서들과 유산소 운동을 하며 부상을 방지하는 법도 배웠어요.”
윤형렬은 정성화가 콰지모도를 만들어가는 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그는 “‘여기서 두 걸음 걸어야 나갈 때 넘어지지 않는다’, ‘꼭대기에서 내려올 때 많이 무서울 거다’, ‘무대 중간의 틈이 생각보다 얇은데 거기 들어가는 신발이 하나가 있다’는 세세한 정보까지 알려줘 너무 고마웠다”며 웃었다.
그의 섬세한 연기에 화룡점정이 된 것은 가사 한 줄 한 줄마다 감정을 새겨넣은 노래다. 정성화는 “첫 공연 이후 리뷰에서 ‘너무 청아한 콰지모도’라는 평을 봤다”며 “노래 실력만 뽐내려 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가 콰지모도의 노래에 더 신경쓰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반응을 만난 이후다. 그의 콰지모도에게선 다채로운 감정과 심경이 굵직한 음성을 타고 절절히 전달된다.
“프랑스 뮤지컬의 넘버(노래)는 우리가 익히 아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과 달리 서사보다는 예술적인 부분을 부각해요. 그래서 노래를 할 때 서사를 집어넣어 연기하려 해요. 노래의 소절마다 한국어 가사가 상당히 많아 특히 강조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고 있어요.”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21년차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정성화는 누구보다 대표작이 많은 배우다. 이는 배우에게 행운이면서도 독이다. 때론 거대한 선입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성화에게도 뮤지컬이면서 영화로도 나온 ‘영웅’ 속 안중근이라는 인장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 속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라는 노래를 하는데, ‘에스메랄다, 독립운동 해야지’라는 댓글이 있었다”며 “의도한 것은 아닌데, 관객(시청자)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대표작이 있어도 다른 작품을 할 때 그것이 생각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성화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배우’를 꿈꾼다. 매 작품 그는 “내가 최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러니 무대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 이를 악문다.
“무대 위에서 매번 똑같이 노래를 잘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에요.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모두 매끄럽게 되는 경우가 드물죠. 그러니 그 앞에선 당연히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개발하고 노력하면 한계는 없지 않을까요. 박수와 환호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나이를 먹는다고 노래를 못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바리톤 음색이라, 이번 작품을 마치면 레슨을 통해 고음을 개발할 생각이에요. (웃음)”
s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람들이 가슴 너무 만져요” 누렇게된 젊은 女동상 특정부위, 왜 그러나했더니
- 이루, 항소심서도 “모친 치매” 호소…檢, 징역 1년 구형
- “이천수, 계양역서 폭행-임학동서 드릴든 男에 가족협박 당했다” 원희룡 긴급공지
- '엄마 된' 손연재, 아들 사진과 함께 출산 후 근황 공개
- "다들 이천수한테만"…유세 굴욕 사진 올린 원희룡
- ‘풀소유’ 혜민스님 3년 만의 방송 복귀 “승려로서 기대 부응 못해 참회”
- 황정음, 이혼 발표 2주 만에 SNS 재개…'7인의 부활'로 부활 예고
- 카리나-이재욱 후폭풍…英 BBC “비굴한 사과문…압박 악명높은 K-팝”
- '젝키' 고지용, 연예계 은퇴 후 엄청난 악플…"뭘 해도 딴지"
- "앵무새 죽었어, 내 슬픔도 이해해줘"…모친상 안온 친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