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하고 불온하다"는 누명 쓴 '페미니즘 고전'의 질긴 수난사 [다시 본다, 고전2]

2024. 3.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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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 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글을 씁니다.
20세기 여성 해방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게티이미지뱅크, 을유문화사 제공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가 쓴 ‘제2의 성’은 1949년에 프랑스어판이 출간돼 2주 만에 2만2,000권이 판매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정치적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지식인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책 리뷰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35개 중 23개가 부정적이었다. 저자와 가까운 관계였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카뮈도 "프랑스 남자를 망신시켰다"며 격노했다. 이런 식의 비판은 그답지 않다. 논리에 비논리로 대응했으니 그 자체로 ‘프랑스 남자’의 잘못을 100% 인정한 꼴이다. 이 책에 대한 당시 비판 중에는 새길 만한 내용이 없다. 가부장 세계에서 안주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19세기에 출간된 '제2의 성'(을유문화사)은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영감을 주는 고전이다.
금지되고 오역된 ‘제2의 성’

당시 ‘프랑스 남자’들은 백과사전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가부장제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보부아르의 논리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제2의 성’을 꼼꼼히 읽어보면 굳이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내용 같지도 않다. 생물학, 신학,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가부장제 시스템이 여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그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이 얼마나 다양한지 아주 잘 보여줄 뿐이다. 그랬으니 보부아르가 굳이 전투적인 어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저작물에 대한 가부장제 세계의 대응 방식은 치사한 데가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검열의 대상이 됐고 가톨릭교계에서는 금서로 지정했다.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번역본은 드물었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오역이 수두룩했고 책 내용을 뭉텅이로 빼기도 했으며 아예 발췌본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제2의 성'은 20세기 페미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게티이미지뱅크, 을유문화사 제공
60년 만에 재번역된 수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영어판 번역을 생물학자가 맡았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에서도 번역자의 프랑스어 수준이 대학 학부생 정도밖에 되지 않아 번역이 엉망이라고 질타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메이저 출판사에서 그런 식으로 번역 출판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참다못한 저자가 1985년에 재번역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2009년이 돼서야 페미니즘 연구자들에 의해 새로이 번역돼 재출간됐다. 한국어판이 제대로 완역된 것도 2021년이다. ‘제2의 성’은 오래전에 쓰였지만 현대의 책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책은 수백만 부가 판매됐고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전투적인 페미니즘의 고전인 ‘여성성의 신화’(베티 프리단·1963)와 ‘성 정치학’(케이트 밀렛·1969)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 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는 매우 흥미롭다. 변화의 도도한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왼쪽 첫 번째)가 1960년 쿠바에서 장폴 사르트르(가운데),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연인이자 철학 동지였다. 위키미디어
여성, 그 수난의 역사

이 저작물이 본격적으로 분석되고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이었다. 원래 2권으로 출간됐는데 제1권의 제목은 ‘사실과 신화’다. 그 내용은 운명, 역사, 신화라는 3부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비교적 이론적이다. 그러나 제2권은 제목부터 ‘생생한 체험(lived experience)'이다.

1권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생물학, 정신분석학, 역사적 유물론에서 말하는 여성성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그 논리적 파탄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후 모든 내용이 그렇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하기 위해 단편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여성에게 유리한 자료만 선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평한 지식에 대한 좋은 공부 자료가 된다.

2부는 역사를 다룬다. 여성이 불리한 입장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도 때도 없는 임신과 피할 수 없는 육아 부담 때문이었다. 남성의 도움 없이 여성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종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유재산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여성은 쾌락의 도구이거나 아이를 생산하는 남자의 재산으로 여겨졌다.

이후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생산물이 많아지면서 여성의 입장이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지속됐던 불평등한 관계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고대 이후에는 기독교 이데올로기가 여성 억압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여성이 남성을 낳은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고 억지를 부렸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반전이 시작됐다. 16세기경부터 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뛰어난 여성들이 등장했다. 여성도 남성만큼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대부분은 재산이 많은 귀족 계급 출신이거나 딸의 교육에 열성적인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사실은 이른바 ‘부족한 여성’에게는 단지 교육 기회가 없었을 뿐임을 말해준다.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부엌에 가둬놓고 안목이 좁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남성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세기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을 깔보거나 낮춰보았지만 소설가 스탕달과 시인 랭보는 확연히 달랐다. '제2의 성' 3부는 랭보의 말로 끝맺는다. "지금까지 가증스러웠던 남성들이 동의하여 여성의 속박이 풀리기만 한다면 여성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때 완전한 한 인간이 될 것이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에 있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폴 사르트르 묘지. 위키미디어
"간통이 여성에 해방"이 된 비극

2권의 제목으로 쓰인 ‘생생한 체험’은 현상학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 용어다. 어떤 존재든 고정된 불변의 속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추어 반응하고 변화한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 방안을 찾아 변하면 되는 것이다. 2권의 차례는 1부 형성, 2부 상황, 3부 정당화(반응)다.

1부에서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과정을 다룬다. 어린 시절부터 이른바 '처녀'여야 했던 여성의 성생활 입문 단계를 다루는데, 대부분의 여성이 불감증이 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여성의 첫 경험은 사실상 강간이다. 결혼 밖에서보다 결혼 안에서 훨씬 더 많은 강간이 이루어진다. 결혼 관계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여성은 불감증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 불감증은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혼외 애인을 통해 해소된다. 그래서 "결혼은 당연히 간통으로 보완된다. 그것이 여성을 옭아매고 있는 가정의 노예 상태에 대한 여성의 유일한 방어책"이라는 것이다. ‘생생한 체험’에서는 전반적으로 성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룬다.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주장하는 혁신적 관점은 전통적인 도덕규범을 파괴하는 음란한 책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2부에서는 결혼 생활과 어머니가 된 이후 여성의 삶을 다루는데 역시 충격적인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억압받으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여성에게 아이들은 사랑의 대용품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억압받는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은 더없이 해롭다. 그것은 ‘살과 뼈로 된 장난감 인형’을 쥐여주는 꼴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에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3부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가를 다룬다. 종교의 광신도가 되거나 신비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여성의 자율성 남성에도 이익"

필자는 이 ‘생생한 체험’을 읽으면서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여성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끊임없이 강조하듯이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은 무지와 잘못된 지식이다. 인간의 성생활과 관련된 지식은 지금도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고 오해가 많아 문제를 일으킨다. 가장 큰 이유는 가부장제가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잘못된 ‘지식’이기 때문이다.

결론에 이르러 책은 여성을 이런 식으로 억압해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없게 만들면 그게 정말 남성에게 좋은 일인지 묻는다. 오만한 남성과 해방된 여성, 독립을 원하면서도 수동적으로 기생하기 위해 사용되는 낡은 특권을 지속시키려는 여성 모두를 비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주체이자 객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이 자신을 동등하게 보지 않는 한, 남성이 여성을 신비화하여 자신의 불행을 잊게 만드는 한, 여성을 자신의 운명에 대한 공범자로 만드는 한 심각한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평등한 상황에서 여성이 자율성을 가지면 남성에게도 이익이다. 그 변화는 집단적이어야 하고 특히 진실한 성교육과 평등한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강창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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