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 화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한반도 역사와 현실

노형석 기자 2024. 3. 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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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80년 광주항쟁은 새로 써야 할 비사가 적지 않은 사건이다.

그해 5월 전두환 신군부가 파견한 공수부대가 광주 시민들을 총검으로 마구 학살한 참상의 현장을 가장 먼저 극적인 회화로 표현한 미술인은 뜻밖에도 자이니치(재일동포) 화가였다.

1980년 광주항쟁 소식을 접한 뒤 20년간 대표작인 '1980-05-27'을 그린 것 외에도 긁히고 묶이는 사물의 형상을 통해 압제를 형상화한 '5월 광주' 시리즈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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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화단 핵심작가 김석출씨 고국서 첫 회고전
광주항쟁의 비극을 형상화한 김석출 화가의 대표작 ‘1980-05-27’. 1층 전시장의 안쪽 벽면에 걸린 이 작품은 항쟁이 벌어진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캔버스에 석고와 모래를 바르고 유채안료를 칠해 그려낸 역작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80년 광주항쟁은 새로 써야 할 비사가 적지 않은 사건이다. 그해 5월 전두환 신군부가 파견한 공수부대가 광주 시민들을 총검으로 마구 학살한 참상의 현장을 가장 먼저 극적인 회화로 표현한 미술인은 뜻밖에도 자이니치(재일동포) 화가였다.

지난달 27일부터 광주 농성동에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1·2층 전관에서 생애 첫 회고전을 열고 있는 김석출(75) 작가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1937년 파블로 피카소가 스페인 시골 마을 게르니카에 대한 독일 공군의 무자비한 폭격에 분노해 명작 ‘게르니카’를 그렸듯 김 작가는 분노와 당혹감에 몸을 떨다 곧바도 붓을 들었다. 한국 군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광주 학살 현장의 진실을 쏟아낼 수 있었던 아사히·마이니치 등 일본 일간지 특파원들의 보도를 김 작가는 접할 수 있었다.

1981년 재일동포 미술가들의 연합전시인 1회 고려미술전에서 처음 선보였던 김석출 작가의 대표작 ‘1980.05.27.’의 당시 모습. 그뒤 20년 동안 고쳐그리면서 그림의 색조와 인물 묘사 등이 크게 바뀌었다. 광주의 비극을 처음 회화 매체로 표현하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큰 작품이다. 하정웅미술관 제공
김석출 작 ‘1980-05-27 수난 08’. 하정웅미술관 제공

대표작인 ‘1980-05-27’이 바로 그 작품이다. 1층 전시장 안쪽에 내걸린 이 대작은 항쟁이 벌어진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20년간 수정을 거듭하며 그린 것으로 총칼을 앞세운 군부의 탄압과 핍박 속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손이 묶인 채 걸어가는 남녀 군상의 모습을 석고와 모래를 바른 붉은빛 화폭에 유채 안료를 칠해 그려냈다. 애초 그림에서 주인공 격인 남자는 옷을 입고 머리를 젖힌 모습이었고 화폭도 푸른빛이었지만, 20년의 개작 과정에서 남자는 누드 스타일로 바뀌었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이상을 좇는 모습으로 자태가 바뀌었다.

재일동포 2세인 김 작가는 지난 40여년간 일본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김 작가는 재일동포 화단에서 최고 경지의 리얼리즘 화가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50여년 화력을 결산하는 회고전은 ‘두드리는 기억’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이는 1939년 경북 군위에서 두 누나를 남겨둔 채 징용공으로 일본에 왔던 부모와 1964년 총련계에 소속된 둘째 형이 북송선을 탔던 작가 자신의 디아스포라(이산) 개인사가 담겨 있다. 또, 항상 불온한 격변과 압제가 잇따랐던 조국의 현실, 한반도의 시대적 모순을 풀어낼 통일에 대한 열망 등을 그림이라는 기록으로 전달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김석출 작가가 1970년 그린 ‘20세의 자화상’. 노형석 기자

1966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미술대학이 아닌 오사카시립미술관 부설 미술연구소에서 수학한 김 작가는 청년기 디아스포라로서 겪는 차별과 재일동포의 인권, 민족교육, 북송선 문제, 조국의 정치 상황 등 사회적 이슈를 주로 다뤘다. 1980년 광주항쟁 소식을 접한 뒤 20년간 대표작인 ‘1980-05-27’을 그린 것 외에도 긁히고 묶이는 사물의 형상을 통해 압제를 형상화한 ‘5월 광주’ 시리즈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는 시대별로 작품 주제를 ‘재일 디아스포라, 김석출의 생애’, ‘미술 입문과 재일(在日)의 인권’, ‘광주의 기억’, ‘되돌아보는 유관순’, ‘과거와 현재를 잇다’ 등으로 구성해, 10대 후반에서부터 최근작까지 다채로운 작업 이력을 펼쳐내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은 광주항쟁을 주제로 한 하정웅 컬렉션 작품 34점과 일본에서 운송해온 인권과 민족교육 문제 등을 다룬 초기작에 이어 광주 연작 30여점을 망라했다.

김 작가가 2007년 제작한 대작 ‘되돌아보는 유관순’(일부분). 캔버스에 석고와 모래를 바르고 유채물감으로 그렸다. 노형석 기자

이번 전시회는 광주항쟁을 보도한 당시 한달여 간의 일본 신문 기사 등 아카이브 자료 100여점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꾸린 구성이 돋보인다. 김희랑 하정웅미술관장은 “김석출 작가는 늘 일본과 조국의 불의를 주시하고 부당함과 부조리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면서 우리의 기억을 두드려왔다”며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증언으로서 화가의 기록이 전하는 특유의 울림을 살필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5월26일까지.

2층 전시장에 나온 유화 ‘철마는 달리고 싶다’(일부분). 규조토를 바른 화폭 위에 드로잉하고 채색했다. 2021년 그린 작품이다. 노형석 기자

광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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