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와 수치심을 걷어낸 여성의 몸 말하기… 버자이너·자궁 이야기[책과 삶]

이혜인 기자 2024. 3.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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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레이철 E. 그로스 지음 | 제효영 옮김 | 휴머니스트 | 488쪽 | 2만7000원
자궁 이야기
리어 해저드 지음 |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492쪽 | 2만4800원
여성의 자궁은 남성 중심 의과학자들에 의해 비표준이자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 사진은 여성의 복잡하고 신비한 자궁을 나타내는 이미지. ⓒArmando Veve

여성의 몸은 ‘비표준’이다. 의과학자들은 남성, 그 중에서도 백인의 몸을 가장 표준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그와 다른 부분이 있으면 예외로 두고 연구했다. 성편향이 불러온 여성 신체에 대한 오명을 낱낱이 파헤치는 과학책 <버자이너>에서는 “1993년이 되어서야 ‘여성과 소수자’도 임상 시험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미국 연방 규정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전한다. “현재 여성의 몸은 해저나 화성 표면보다도 탐구가 덜 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책 <자궁 이야기>에서는 자궁이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생식기이기에 제대로 된 연구와 이해가 부족했던 역사를 전한다. 만 명의 여성에게는 만 명의 서로 다른 자궁이 있지만, 자궁은 “잠자고 있는 순수한 존재, 여성다움과 여성의 미덕에 대한 이상을 투사하는 텅 빈 그릇”으로 쉽게 치환됐다.

<버자이너>와 <자궁 이야기>는 여성 과학자와 의료인이 다시 여성의 몸에 대해서 써내려간 책이다. 이들은 타자화되고 왜곡된 여성의 몸에 대한 이미지들을 걷어내고, 과학의 눈으로 여성의 몸을 바라본다. 금기와 수치심을 딛고, 때로 여성 자신도 불편할 만한 주제들까지 건드리며 과감한 논의를 펼친다.

<버자이너>, 과학의 ‘아버지’들이 이룩한 세계에서 방치된 여성의 몸
‘버자이너’의 저자 레이철 E. 그로스. 휴머니스트 제공

<버자이너>의 저자 레이철 E. 그로스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생식생물학 등을 전공한 과학 저널리스트다. 그는 2018년 지독한 세균성 질염에 시달렸다. 치료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아랫도리 주변 전체에 수치심을 일으키는 거대한 힘이 존재하는 것만 같아” 이 질환에 대해 남자친구와 공유하길 꺼려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을 계기로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던 그는 “우리가 아는 인체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은 대부분 남성의 몸을 연구하여 얻은 결과”라는 것에 문제를 느껴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책을 썼다.

여성의 몸에 대한 차별적 시각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00년경 히포크라테스는 남성의 몸은 연구대상으로 삼았지만, 여성의 몸은 산파들이 하는 말 정도에 의지해 연구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는 여성을 ‘남근이 없는 작은 존재’로 정의했다. 진화론의 아버지인 다윈이 여성 차별적인 시각을 가졌던 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는 일기에 “사랑받는 존재, 데리고 놀 대상, 어쨌든 개보다는 나은” 존재라고 묘사했다. 다윈은 활동하는 내내 모든 동물의 암컷은 수컷보다 능력도, 지능도 떨어진다는 관점을 고수했다고 한다.

다윈의 주장은 여성이 100년 가까이 학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근거로 활용됐다. 다윈이 활동하던 시대의 학계 권위자들은 여성들이 고등 교육을 받으면 난소가 쪼그라들어서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미리엄 멘킨은 1944년에 역사상 최초로 여성의 신체 외부에서 난자를 수정시키는 데 성공한 여성 과학자다. 하지만 업적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에서 이름이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1920년대 대부분의 의과대학이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학업의 끈을 이어간 미리엄이 ‘체외수정 성공’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하고 학계에 제대로 데뷔하려는 순간에 남편이 대학에서 해고된다. 미리엄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사를 가기 위해 연구실을 그만둬야 했다. 저자는 “미리엄이 남은 평생을 연구실로 돌아오려고 애쓰면서 살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여성 연구자들이 발 들이기 힘든 학계는 특히 생식기 연구에서 큰 불균형을 가져왔다. 2014년 발표된 한 논문은 생식기 다양성을 다룬 논문 364편을 메타 분석한 것이다. 대부분의 생식기 연구가 수컷의 생식기 연구에 쏠리는 성편향(gender bias)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비뇨기과 전문의 헬렌 오코넬은 외과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봐야했던 1985년 판 <라스트 해부학> 의학 교과서에 대해 “젊은 여성에게는 다소 모욕적으로 느껴질 만큼 저급한 책”이라고 떠올린다. 여성의 생식기 한 부분인 음핵은 의학교과서의 “카메오에 불과”했다. 여성의 골반 횡단면 그림에는 음핵이 아예 빠져 있었다. 반면 음경에 관한 설명에는 4페이지가 할애돼 있었다.

책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과학자들의 여성의 몸을 재정의하며 이뤄내고 있는 연구 업적들을 소개하며 달라질 미래를 그려본다. 저자는 세균성질염, 자궁 내막증 등 많은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만성질환은 의학계에서 ‘사소한 여자들 문제’로 치부돼 제대로 된 치료법과 예방법이 연구되지 않았었다고 지적한다. 세균성 질염 재감염의 고리를 끊겠다는 일념으로 질 미생물군 이식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의 사례 등이 책에서 소개된다. 저자는 “몸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몸, 관점이 외면당하는지 스스로 목격할 수 있다”며 “여성의 몸에 관한 과학적 탐구는 단절된 부분보다는 연결된 부분을,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을 볼 때 비로소 발전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책 ‘버자이너’. 휴머니스트 제공
<자궁 이야기>, 자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나를 찾는 과정이다
‘자궁 이야기’의 저자 리어 해저드. (C)Matt Marcus

“아기를 가질 준비를 하고, 아기를 잉태하고, 아기를 출산하고, 산후 회복 중이 아닐 때 자궁은 무엇을 할까?”

<자궁 이야기>의 저자이자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조산사인 리어 해저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는 “자궁을 주로 생식 역할로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산업화된 서구 세계의 관점에서 자궁은 그 자체로 연구하고 고려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다음 세대를 담는 그릇으로서 새 생명에 대한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 때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궁’의 진짜 모습을 보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는 여성의 생식기관이 ‘배 같은 자궁’ ‘아몬드 크기의 난소’ 등 종종 음식에 비유되곤 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자궁은 근육이고 크기나 힘으로 봤을 때 ‘꽉 쥔 주먹’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자궁은 심장과 크기 및 구조가 놀랍도록 비슷하다.

과학은 “여성의 순결과 처녀성에 대한 이상을 인체에서 가장 여성적인 기관에 투사함으로써” 무균 자궁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임신하지 않은 자궁을 티 없이 깨끗하고 순결한 불활성 물체로 그려왔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을 주로 제시한 사람은 유럽의 백인 남성이었다. 1900년 프랑스의 소아과 의사 앙리 티시에는 “태아는 무균 환경에서 산다”고 말했다.

자궁이 순결하고 깨끗하다는 생각으로 인해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월경은 비밀스럽고 부정하게 다뤄져왔다. “성서와 문학, 구전 역사에는 월경하는 소녀와 여성을 불결하고 부정하며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취급해온 수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생리혈을 감추는 대신 “개인 고유의 서명이 담긴 귀중한 생화학적 정보원”이라고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크리스틴 메츠는 생리혈을 연구하는 분자화학 교수이자 산부인과 연구 책임자다. 자궁내막증이 있는 여성들에게서 채취한 월경 유출물을 조사한 결과 그는 이 질병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세포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자는 젊은 여성들이 월경 유출물의 농도, 응고 문제, 색깔 등에 대해 SNS에서 활발히 이야기하는 현실을 전하며, 이처럼 여성들이 월경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연구자는 과학자들이 여성 생식기관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단순화된 시각을 가진 것을 지적한다. 마틴 밥 겸임 교수는 60년 가까이 생물인류학 분야에서 침팬지, 인간 등 포유류를 연구해왔다. 그는 여성의 월경주기를 거의 시계처럼 여기는 ‘에그 타이머 모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어떤 의사들이 자궁과 임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나머지 유산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자궁(hostile uterus)’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해 여성들이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자궁절제술, 인공자궁 등까지 자궁과 관련된 의학적 처치와 기술까지도 언급하며 자궁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는 “자궁이 있거나, 자궁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거나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면, 또는 오래전 몸에 피를 묻히고 소리를 지르며 자궁에서 나온 뒤로는 자궁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더라도, 당신만의 나 찾기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주먹 모양의 근육, 생명의 강력한 원천, 우리 모두가 시작된 그곳을 이해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책 ‘자궁 이야기’. 김영사 제공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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