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예산 삭감’이 휩쓸고 간 지역서점…“독서 생태계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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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에 있는 쩜오책방에 들어서자 계산대를 지키던 조합원이 물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정은 조합원은 "1, 2월은 워낙 어려운 시기이기도 한데 물가 상승까지 겹쳐 단순히 예산 삭감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동안 지역서점 예산이 다양한 작가에게 돌아가며 독서 생태계를 키워왔는데, 이런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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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시려고요?”
지난 5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에 있는 쩜오책방에 들어서자 계산대를 지키던 조합원이 물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질문을 하는 이유는, 쩜오책방이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방을 운영하는 16명의 협동조합 조합원에 지역주민, 저자, 강사가 힘을 합쳤다. 책방 이름 ‘쩜오’(0.5)에는 ‘1’이 되려면 조합원들과 지역주민이 각각 0.5씩을 함께 채워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책방은 그래서 단순히 책을 파는 소매상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을 잇는 문화공동체다.
시작은 지역 독서모임이었다. 그러다가 모임에서 고른 책을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고 싶다는 열망에 동네 카페 한쪽에 책방을 열었다. 그때가 2016년이니, 책방 나이도 어느새 9살이다.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파주시는 물론 전국에서 방문객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올해 들어 일찍이 겪지 못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2024년 지역서점 지원 예산 11억원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 예산은 그동안 지역서점이 저자를 초대해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강사를 초청해 각종 문화 사업을 열던 밑천이었다. 지적 교류에 목말랐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서점을 찾았고, 인터넷 서점으로는 일굴 수 없는 문화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약 750개의 문화 프로그램이 이 예산을 바탕으로 열렸다.
하지만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프로그램 개설이나 강사 초청이 쉽지 않아졌고, 찾아오는 발길도 줄었다. 쩜오책방도 1월 방문자가 ‘반의반’ 토막이 났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정은 조합원은 “1, 2월은 워낙 어려운 시기이기도 한데 물가 상승까지 겹쳐 단순히 예산 삭감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동안 지역서점 예산이 다양한 작가에게 돌아가며 독서 생태계를 키워왔는데, 이런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했다.
실제 지역서점은 저자-강사-독자를 연결하며 급격히 성장했다. 2020년 한국출판인회의가 낸 보고서를 보면, 2014년 당시 100여개였던 독립서점은 2020년 약 600개로 늘었다. 지금은 800개가 넘는 독립서점이 있다. 같은 기간 지역서점이 계속 사라져 기초지자체 1741곳 중 456곳(26.2%)에 서점이 없는 일본과 대비된다. 일본은 지난 5일부터 서점진흥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들이 모범 사례로 꼽는 곳도 한국이다.
정부는 독서 예산 성격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임 개최에 지원하던 돈을 유통 구조 혁신에 투입하고, 영세 서점에 한해 도서정가제 적용에 예외를 둬 할인폭을 늘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역서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애초 대형서점보다 비싸게 책을 받아오는 지역서점은 할인율을 더 올리기 어렵고, 이곳에서 책을 사는 이들은 가격을 따지기보다는 서점에서 일군 문화 생태계에 스며들며 자연스럽게 책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협소하다는 비판도 있다. 유통 구조와 할인율 개편에만 관심을 두는 것부터가 책을 문화가 아닌 상품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모든 19살에게 공연·전시 지원금 15만원을 지급하는 등 다른 영역에선 오히려 지원을 늘리는 상황을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도서·출판에 대해서는 산업의 자생력을 강조하면서 특정 문화에만 지원을 늘리는 등 문체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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