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졌다" 문동주의 통렬한 자기반성…류현진은 '딱 하나' 조언했다
[스포티비뉴스=대전, 김민경 기자] "피칭 내용으로 봤을 때는 내가 (류현진에게) 졌다."
한화 이글스 우완 문동주(21)는 7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청백전에 어웨이팀 선발투수로 나서 3이닝 2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문동주의 이번 등판이 주목을 받았던 건 홈팀 선발투수가 류현진(37)이었기 때문. 류현진은 지난 10시즌 동안 뛰었던 미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달 중순 한화와 8년 총액 170억원에 계약했다. 실력과 경험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류현진은 단번에 한화 1선발 자리를 꿰찼고, 이날은 지난 2012년 10월 4일 대전 넥센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전 이후 4172일 만에 대전 마운드에 다시 서는 날이라 주목을 받았다.
류현진은 3이닝 46구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을 기록해 패전을 떠안았으나 투구 내용 자체는 좋았다. 직구는 최고 구속 143㎞, 평균 구속 141㎞를 기록하면서 일본 오키나와 2차 캠프 때보다 끌어올렸다. 지난 2일 오키나와 라이브 피칭 때는 최고 구속 139㎞를 기록했다. 커브(10개)와 체인지업(9개), 커터(4개)를 섞어 던지면서 다양한 구종을 점검했다. 이날 경기에는 ABS(자동볼판정시스템)이 적용됐는데, 류현진은 46구 가운데 30구를 스트라이크로 기록할 정도로 빼어난 제구력을 뽐내며 어렵지 않게 새 규정에 적응했다.
문동주는 결과적으로는 실점 없이 무사히 경기를 마치긴 했으나 투구 내용이 좋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11타자를 상대하면서 투구 수가 53개에 이를 정도로 제구가 좋지 않았다. 절반에 가까운 23구가 볼로 판정받았다. ABS에 적응하지 못한 것보다도 기본적으로 제구가 안정적이지 않았다.
구위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문동주의 강점은 묵직한 직구다. 지난해 최고 구속 160.1㎞를 찍으면서 국내투수 최초로 마의 160㎞ 벽을 깬 게 바로 문동주다. 그런데 이날은 최고 구속 148㎞, 평균 구속 144㎞를 기록했다. 3월 초 쌀쌀한 날씨 속에 시속 140㎞ 후반대 공이면 충분히 빠르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동주는 시속 150㎞를 웃도는 공을 가볍게 던질 수 있는 투수기에 아쉬움을 샀다. 변화구는 커브(12개), 커터(2개), 슬라이더(3개), 체인지업(1개) 등을 조금씩 섞어 던졌는데 변화구 제구가 전반적으로 나빴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전부 볼이었다.
문동주는 꾸역꾸역 위기를 틀어막았다. 1회말 1사 후 요나단 페라자에게 우익수 오른쪽으로 빠지는 2루타를 허용한 뒤 안치홍을 우익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면서 숨을 골랐다. 다음 타자 노시환을 볼넷으로 내보내 2사 1, 3루가 됐으나 김인환을 2루수 땅볼로 처리하면서 첫 고비를 넘겼다.
2회말에는 선두타자 최재훈에게 중월 2루타를 허용했다. 중견수 정은원이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포구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다음 타자 이도윤을 사구로 내보내면서 흔들리나 싶었는데, 무사 1, 2루 이후 3타자를 연달아 범타로 돌려세우면서 실점 없이 버텼다. 3회말은 최인호와 페라자, 안치홍까지 삼자범퇴를 기록하고 임무를 마쳤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경기 뒤 "(문)동주는 조금 별로였다. 봐야 할 것 같다. 오늘(7일) 모습은 별로였다"고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남겼다. 문동주는 지난해까지 쓴소리를 들을 일이 없는 선수였다. 그는 지난 시즌 23경기에서 8승8패, 118⅔이닝,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해 2006년 류현진 이후 17년 만에 한화가 배출한 신인왕이었다. 칭찬밖에 들을 일이 없었는데, 올해는 개막 전에 사령탑에게 한번 크게 쓴소리를 듣게 됐다.
최 감독은 또 "스프링캠프 때는 사실 롯데 자이언츠전(지난 2일)에서는 딛는 발이 미끄러워서 강도 조절을 했다고 했다. 오늘은 그런 게 아닐 텐데 던지는 모습이 썩 정상 컨디션 같지 않았다. 구위도 제구도 다 그랬다. 한번 점검을 해야 할 것 같다. (시속 150㎞를 넘는 공이 안 나온 것과 관련해)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문동주는 스스로 투구 내용에 불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류)현진 선배랑 함께 등판하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주어졌는데, 주어진 것에 비해 오늘 부족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안 좋았던 것 같다. 날씨도 많이 추웠다. 그런데 현진 선배는 좋은 피칭을 해서 날씨 핑계를 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피칭 내용으로는 내가 (류현진에게) 졌다. 이런 경기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에서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시즌 전에 이런 모습이 나와서 고무적인 것 같다. 시즌 개막해서 이런 모습이 있었다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은데, 시즌 전에 이런 모습이 나와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 괜찮다"고 덧붙였다.
류현진은 상심해 있는 문동주에게 딱 한 가지 조언을 남겼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것. 2022년 1차지명 출신인 문동주는 데뷔 시즌 부상 관리를 이유로 28⅔이닝밖에 던지지 못했고, 지난해 선발 로테이션을 돌면서 갑자기 110이닝 이상 투구하게 됐다. 추가로 지난해 10월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11월 열린 '2023 아시안프로야구챔피언십(APBC)'까지 국제대회에도 차출돼 더 많은 공을 던졌다. 이번 시즌에 앞서서는 '팀 코리아'에도 발탁됐다. 팀 코리아는 오는 17일과 18일 고척돔에서 열리는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평가전에 나선다. 문동주가 어린 선수여도 한화에서, 또 태극마크를 달고 마운드에 나설 기회가 잦은 만큼 몸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류현진은 "문동주는 작년에도 좋은 공을 던졌고, 재능이 많은 선수다.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은 몸 관리 잘하라는 것밖에 없다. 그 이상은, 던지는 것과 관련해서는 조언해 줄 게 많이 없다. 몸 관리만 잘하면 알아서 잘할 선수"라고 힘줘 말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뛸 때 후배 알렉 마노아(26)에게 해줬던 조언과 결이 비슷하다. 마노아는 23살 시즌이었던 2021년 빅리그에 갓 데뷔한 유망주였다. 마노아는 신인일 때부터 베테랑 류현진 옆에 유독 찰싹 붙어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류현진에게 배운 커터를 실제로 마운드에서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마노아는 류현진의 집까지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한국 TV 프로그램도 같이 보면서 우정을 쌓았다. 덕분인지 마노아는 2021년 20경기에서 9승2패, 111⅔이닝, 평균자책점 3.22를 기록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22년 시즌을 앞두고는 3선발로 기대를 모을 정도로 팀 내 위상이 높아졌다.
류현진은 2022년 빅리그 2년차를 맞이한 마노아에게 휴식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데뷔 시즌에 갑자기 빅리그에서 100이닝 이상 던졌으니 충분한 휴식이 없으면 몸 관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노아는 당시 류현진의 조언을 들어 비시즌 동안 충분히 쉬었다고 밝혔고, 그해 31경기, 16승7패, 196⅔이닝, 180탈삼진, 평균자책점 2.24를 기록하면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최종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빼어난 성적이었다. 그랬던 마노아가 지난해는 부상과 부진이 겹쳐 시즌 내내 고전한 탓에 19경기, 3승9패, 87⅓이닝, 평균자책점 5.87에 그쳤다. 왜 류현진이 어린 선수에게 몸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손혁 한화 단장은 류현진을 영입할 때 무려 10시즌 동안 빅리그를 경험한 노하우를 팀 내 어린 유망주들에게 전수해 주길 바랐다. 손 단장은 당시 "류현진이 오면 일단 (문)동주나 (김)서현이, (황)준서 이런 선수들이 성장할 시간이 줄어들 것 같다. 나는 이게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류현진은 어떻게 보면 소소할 수 있는 노하우를 툭툭 던져 주면서 손 단장이 기대했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문동주는 이날 류현진과 따로 불펜 피칭으로 몸을 풀 때부터 다름을 느꼈다. 그는 "현진 선배가 안쪽에 있어서 나는 벽 쪽을 보고 던져야 해 피칭을 보진 못했다. 옆에서 포수 (최)재훈 선배가 공을 잡는 것을 봤는데, 다 스트라이크만 들어가더라. 나도 (류현진이 던지고 있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공 던지는 것, 또 마운드에 선 모습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역시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문동주는 류현진의 경기 전 루틴도 앞으로 꼼꼼히 살피면서 배우려 한다. 그는 "(류현진이) 경기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지금까지 한 것과 많이 달랐다. 워낙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시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는 한국에서밖에 야구를 안 해봤지만, 현진 선배는 큰 무대도 경험하면서 엄청난 성적을 낸 분이다.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 여쭤보고 싶다. 어떻게 이 루틴으로 자리 잡았는지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배우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 조금 더 친해져 보고 싶다"고 덧붙이며 수줍게 웃었다.
구속은 날이 따뜻해지면 더 올라오리라 믿고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문동주는 "날씨가 많이 추웠던 영향도 있어서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계속 그러면 걱정해야 하지만, 날씨가 추워서라고 생각한다. 작년과 비교해서 페이스가 느린 것은 사실이라 그 점을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구속을) 너무 깊이 파고들지는 않으려 한다"며 시범경기를 치르면서 개막에 맞춰 정상적으로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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