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쉬면 유격수로 뛸게요" 3725억 타자, 아직도 미련 남았나? SD 사령탑 '선' 그었다…김하성의 굳건한 입지
[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보가츠는 백업 유격수"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단 전체가 모여 스프링캠프 훈련을 시작한 날 '빅 뉴스'가 전해졌다. 마이크 쉴트 감독이 김하성과 잰더 보가츠의 포지션을 서로 바꾸겠다는 뜻을 밝혔던 것이었다. 이는 한국 언론은 물론 미국에서도 매우 큰 화제가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샌디에이고가 보가츠를 영입한 이유, 그 과정에서 사용한 천문학적인 돈 때문이었다.
김하성은 지난 2021시즌에 앞서 샌디에이고와 4+1년 최대 3900만 달러(약 519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으며 빅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시즌 김하성의 존재감은 미미했으나, 이듬해 샌디에이고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났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손목 수술, 금지 약물 복용으로 인해 2022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된 가운데 김하성이 그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던 까닭이다.
김하성은 150경기에 출전해 130안타 11홈런 59타점 12도루 타율 0.251 OPS 0.708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냈다. 물론 공격만 놓고 본다면, 타티스 주니어가 더 생각나는 수치. 그러나 김하성의 진가는 수비에 있었다. 김하성은 타티스 주니어와는 다른 탄탄한 수비를 통해 샌디에이고의 센터 내야를 든든하게 지켰고, 내셔널리그 유격수 부문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즉 내셔널리그 유격수들 중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김하성의 가치는 그야말로 수직 상승했는데, 여기서 샌디에이고의 이해하기 힘든 행보가 나왔다. 김하성과 타티스 주니어까지 두 명의 유격수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2억 8000만 달러(약 3725억원)를 들여 잰더 보가츠와 11년 계약을 체결했던 것. 이는 샌디에이고가 2022시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 무대를 밟으면서 월드시리즈(WS) 우승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조금만 더 공격력을 보강한다면, 최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가츠를 영입하면서 유격수 자원만 세 명을 보유하게 된 샌디에이고는 결국 내야 교통정리에 돌입했다. 2억 8000만 달러를 투자한 보가츠에게 유격수를 맡기고, 김하성을 2루수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징계를 마치고 돌아온 타티스 주니어에게는 우익수, 기존의 2루수를 봐왔던 제이크 크로넨워스는 1루수로 옮기는 선택을 가져갔다. 이는 완전한 실패였다. 유이하게 미소를 지은 이들이 있다면, 김하성과 타티스 주니어였다.
김하성은 수비의 부담을 덜어낸 뒤 152경기에 출전해 140안타 17홈런 60타점 38도루 타율 0.260 OPS 0.749로 한 층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에서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타티스 주니어는 공격력에서 징계 이전의 모습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외야수로 이동한 뒤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보가츠 영입과 크로넨워스의 포지션 이동은 샌디에이고가 원하는 그림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샌디에이고는 꾸준히 OPS 0.800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유격수 보가츠를 희망했는데, 지난해 보가츠는 155경기에서 170안타 19홈런 58타점 타율 0.285 OPS 0.790을 기록하는데 머물렀다. 물론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샌디에이고가 보가츠에게 투자한 금액을 고려한다면 기대했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이에 샌디에이고가 올 시즌 스프링캠프 '풀 스쿼드' 첫 훈련에 앞서 큰 변화를 주게 된 것이다.
보가츠는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게 됐을 당시 유격수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어떠한 일이 생겨도 유격수 자리를 내어줄 것 같지 않았었다. 그런데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단 한 번도 2루수로 경기에 나선 경험이 없었던 보가츠는 의외로 2루수로 이동을 쉽게 받아들였다. 당시 'MLB.com'에 따르면 보가츠는 마이크 쉴트 감독의 결정을 불과 15초 만에 받아들였다.
이어 보가츠는 "내가 샌디에이고 온 유일한 이유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한 것이다. 이게 우승을 위한 방법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우승을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나는 수비적으로 김하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를 많이 존경한다"고 김하성을 리스펙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가츠는 유격수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팀 결정으로 어쩔 수 없이 2루수로 이동했지만, 김하성에게 휴식이 필요한 날이면 유격수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7일(이하 한국시각) "김하성이 예방적인 휴식을 취함에 따라 하루 동안 잰더 보가츠가 유격수로 복귀했다"며 "샌디에이고의 전 유격수 보가츠는 '최근 백업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주 보가츠는 '김하성이 쉬는 날 유격수로 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유격수로 복귀한 뒤 시범경기에서 타율 0.400 OPS 1.259로 뜨거운 타격감을 뽐내고 있는 김하성은 지난 5일 시카고 컵스전 이후 경기 출전이 없다. 6일 경기는 단순한 휴식이었지만,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과 'MLB.com' 등 복수 언론에 따르면 김하성은 훈련 과정에서 등의 경련으로 인해 7일 경기에 결장하게 됐다. 이에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보가츠는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유격수로 출전하게 됐고, 시범경기에서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김하성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김하성은 오전 훈련 중 등 경련을 일으켰고, 상황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가질 것이다. 김하성의 휴식은 예방적인 차원"이라며 "스프링캠프 기간 중 주전 선수가 3일 연속으로 쉬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샌디에이고는 8일 경기가 없기 때문에 김하성에게 3일 휴식이 주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하성에게 휴식이 필요할 때 유격수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만큼 샌디에이고도 '2번 유격수'로는 보가츠를 기용할 생각인 듯하다. 다만 주전 역할을 정말 큰 변수가 없다면, 맡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MLB.com'과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에 따르면 쉴트 감독은 "보가츠는 백업 유격수"라고 다시 한번 선을 그음과 동시에 백업으로 뛰는 것은 허락하겠다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남긴 짧은 멘트를 남겼다. 갑작스러운 트레이드만 없다면, 올해는 김하성이 유격수를 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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