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격변하는 야구, 새롭게 시작되는 KBO리그 ‘AI 심판 시대’
[뉴스엔 안형준 기자]
'로봇(AI) 심판'의 시대가 시작된다.
KBO는 2024시즌부터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를 도입한다. 시범경기에서 처음 선보일 ABS는 KBO가 4년간 퓨처스리그에서 시험하며 준비한 시스템이다.
ABS는 항상 논란이 돼 온 스트라이크-볼 판정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KBO는 현재 약 91.3%인 스트라이크 판정의 정확도를 ABS 도입 시 95-96%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일관성'에 대한 논란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확도가 100%가 아닌 것은 ABS에 적용되는 스트라이크 존이 규정에 명시된 존과 정확히 같지 않기 때문이다. KBO는 야구 규정에 명시된 스트라이크 존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KBO리그 심판들의 스트라이크 존과 선수들이 기존에 인지하고 있던 스트라이크 존을 고려해 ABS 존을 설정했다.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다. KBO는 "ABS 존을 기준으로 정확도는 100%라고 볼 수 있다. 95-96%의 수치는 규정상 스트라이크 존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기반으로 설정된 'ABS 존'은 규정에 명시된 스트라이크 존보다 좌우로 2cm 씩 넓다. ABS는 홈플레이트 '중간면'과 '끝면'을 기준으로 좌우는 중간면에서 한 번, 상하는 중간면과 끝면에서 두 번 판정한다. 좌우로는 한 번, 상하로는 두 번 판정 기준면에 접촉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되는 것이다.
상하 판정이 중간면과 끝면 두 번에 걸쳐 이뤄지는 만큼 당초 ABS 도입이 발표된 초기 언급되던 '떨어지는 변화구의 이점'은 사라졌다. 당초 홈플레이트 가장 앞쪽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접촉한 뒤 급격이 떨어지는 공, 특히 커브와 같은 변화구들이 이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전망됐다. 야구 규정은 홈플레이트 위를 어느 지점에서든 통과만 하면 수평적으로는 스트라이크의 요건을 갖추기 때문. 하지만 ABS가 '끝면에서도 존에 접촉을 해야만 스트라이크'인 만큼 이런 이점이 생길 가능성은 사라졌다.
퓨처스리그에서 4년간 운영한 결과 ABS의 '추적 성공율'은 99.8%였다. 구장 환경, 날씨, 기계 결함 등의 이유로 0.2%의 추적 실패가 나왔지만 KBO는 2군 구장보다 환경이 좋은 1군 구장에서는 더 안정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KBO는 "경기 진행이 가능한 수준의 악천후에서는 추적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ABS 존의 크기는 타자의 신장에 따라 다르다. 존의 상단은 '지면으로부터 신장의 56.35%', 하단은 '지면으로부터 신장의 27.64%'가 기준이 된다. 키가 큰 선수는 존이 상하로 넓어지고 키가 작은 선수는 줄어든다. 예를 들어 키 180cm인 선수의 경우 존의 상단은 지면으로부터 101.43cm 떨어진 지점에, 하단은 49.75c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게 된다. KBO는 "선수마다 다른 타격 자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악용의 소지가 있다. 신장을 기준으로 통상적인 타격 자세를 고려해 설정했다. 메이저리그도 같은 기준으로 시험 중이다"고 밝혔다.
KBO는 경기 중 실시간으로 선수들에게 ABS 데이터를 제공한다. 선수단은 덕아웃에서 KBO가 경기에 지급하는 태블릿을 통해 ABS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오류가 의심되는 경우 선수단에서 심판에게 확인을 요청할 수 있다. 심판에게는 시스템 오류 시 판단할 수 있는 재량이 부여되지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는 ABS의 판정 결과를 따라야 한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KBO는 ABS 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팬들도 쉽게 ABS 존을 인식할 수 있도록 중계방송 화면에 ABS 존을 표기하는 것을 두고 중계방송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KBO의 입장이다.
ABS의 도입은 그동안 포수의 큰 덕목 중 하나였던 '프레이밍'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볼을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포구하는 '눈속임 기술'이었던 프레이밍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유강남 등 뛰어난 프레이밍 능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포수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수비 시프트 제한과 베이스 크기 확대도 올시즌부터 실시되는 가운데 피치클락의 도입은 아직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다. 전반기 시범 운영 후 도입 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다. KBO는 주자가 있을 때 23초, 주자가 없을 때 18초로 피치클락 시간을 정했다. 메이저리그보다 3-5초 더 긴 시간이다. 시범 운영 기간에는 피치클락 위반 시 구두 경고만 진행한다.
KBO는 "시범 운영 기간에 경기 단축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선수들이 피치클락의 존재를 인지하고 적응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며 "피치클락이 도입될 경우에는 경기 시간이 3시간 이하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BO에 따르면 지난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18분이었고 경기의 약 1/3이 3시간30분 이상 진행됐다.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주고받는 피치컴의 도입은 사실상 확정됐다. 지난해부터 구단들과 꾸준히 논의를 가져왔고 KBO리그에서도 피치컴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몇 가지 절차만 남은 상황. KBO는 "빠르면 약 2개월 후에는 도입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피치컴과 피치클락이 경기 시간 단축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다만 KBO리그에서는 피치컴의 도입이 피치클락에 지대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KBO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벤치에서 사인이 나오는 빈도와 양이 많기 때문이다. 투수와 포수 간의 사인보다 벤치에서 그라운드로 사인을 전달하는 시간이 더 긴 KBO리그의 특성상 피치컴의 시간 단축 효과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벤치와 그라운드의 선수들이 전자기기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KBO가 메이저리그에 비해 피치클락을 더 길게 설정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견제 제한'으로 불리는 투구판 이탈 제한도 퓨처스리그에서만 실시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지난해부터 2회로 제한한 투구판 이탈 제한은 KBO는 3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행 중인 투수의 3타자 상대 규정은 퓨처스리그에서만 도입된다. 수비수가 내야 중앙을 넘어 위치하지 못하게 하는 수비 시프트 제한과 베이스 크기 확대는 올시즌 KBO리그에서 바로 시행된다.
야구는 최근 몇 년 동안 격변하고 있다. 몇 년 전 자동 고의사구가 도입될 당시 '그건 야구가 아니다'는 반발도 있었지만 이제 자동 고의사구 규정은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 시험 단계인 피치클락은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됐고 ABS는 KBO가 메이저리그보다 앞서 도입했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를 추구하는 변화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동 고의사구와 달리 ABS는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다.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더 크다. 과연 'AI 시대'를 서둘러 받아들인 올시즌 KBO리그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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