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북극에서 길어올린 상상력 [책&생각]

김진철 기자 2024. 3.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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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손에 쥔 돌멩이처럼 오래도록 인간의 역사를 생각하며 앉아 있을 수 있다. 정적이, 순수한 햇빛이 그러라고 등을 다독인다."

"인간은커녕 동물의 흔적도 없는 엘즈미어섬의 넘실거리는 툰드라에 반듯이 누워 있으면 적막이 아시아까지 뻗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순수한 표현과 시적 상상은 독자를 종횡무진 끝 간 데 없이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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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l 북하우스 l 2만3000원

“우리는 손에 쥔 돌멩이처럼 오래도록 인간의 역사를 생각하며 앉아 있을 수 있다. 정적이, 순수한 햇빛이 그러라고 등을 다독인다.”

자그마한 집 마루에서 뒹굴거리며 따스한 햇살에 몸을 내어 맡긴 어릴 적이, 이 대목에서 떠올랐다. 그 햇빛, 그리고 정적. 배리 로페즈의 문장은 이토록 조용하고 따사롭다.

“인간은커녕 동물의 흔적도 없는 엘즈미어섬의 넘실거리는 툰드라에 반듯이 누워 있으면 적막이 아시아까지 뻗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순수한 표현과 시적 상상은 독자를 종횡무진 끝 간 데 없이 이끈다.

“시간의 폭포 너머에서 나를 응시하는 겨울 사향소의 얼굴은, 눈 덮인 털에 반사된 햇빛이 반짝이는 그 침착한 눈은 모든 얼음의 맥동을 견뎌낸 상이다.”

자연주의 작가 로페즈의 대표작 ‘북극을 꿈꾸다’에서 만나는 문장들은 결이 뚜렷하다. 55년간 80여 나라를 다니며 20여권의 책을 남기고 2020년 세상을 떠난 그는 남극 빙하를 오가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과 중국 산봉우리를 걸으며 세계의 끄트머리에 이르곤 했다 . 북극의 산기슭을 오르내려 1986년 펴낸 이 생태학 고전은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

책은 흥미롭게 구성됐다. 큰곰과 사향소, 북극곰과 일각고래를 거쳐 북극에서 이뤄지는 대이동, 북극의 얼음과 빛, 북극을 이루는 땅과 북극에 이르는 항로를 들여다보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2014년 봄날의책에서 나왔다 절판된 로페즈의 이 대표작이 이번에 북하우스에서 다시 나왔다. 로페즈가 죽음을 앞두고 쓰기 시작해 그의 사후에 출간된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도 북하우스가 올해 초 펴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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