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어떻게 문학을, 또 시대를 담아내는가 [책&생각]

한겨레 2024. 3. 8.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학전문기자’ 30년 이력 최재봉
비평에세이와 평론집 나란히 출간
조세희·황석영, 마감·부캐·첫사랑…
“발언하고 증언하고 추억한다”
한겨레에서 30년 넘게 문학전문기자로 활약한 최재봉 선임기자.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야기는 오래 산다
문학전문기자 30년, 발언하고 증언하고 추억한다는 것
최재봉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8000원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최재봉 지음 l 비채 l 1만6800원

3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만, 한 가지 일에 매진했으니 일가(一家)를 이루었을 시간이다.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이야기다. 그의 비평에세이 ‘이야기는 오래 산다’와 평론집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가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신문에 쓴 기사와 칼럼을 중심으로 외부에 기고했던 글들을 덧붙였다. 오랜 글 혹은 기사를 책으로 옮길 때의 애로점은 결국 시의성.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의 부가 설명은 최소한도로 그치고 가능한 한 발표 당시의 원고 상태”를 살렸다. 이 글들이 결국 “지난 30년 한국문학에 대한 나의 증언이자 발언이고 또한 추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문학전문기자로서 최재봉의 미덕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이야기는 오래 산다’의 첫 글 ‘오랜 침묵의 뿌리’에 여실히 드러난다. 2008년 발표한 이 글에서 지은이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이후 침묵하는 조세희 선생이 1990년대 초반 한 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하지만 3회 만에 중단하고야 만 장편 ‘하얀 저고리’의 출간을 기다리는 마음을 “오보가 아닌 사실 보도로서 ‘하얀 저고리’의 출간 기사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는 문장으로 드러낸다.

박완서(왼쪽 두번째) 작가와 함께한 여행 속 최재봉(맨 왼쪽) 기자의 모습. 한겨레출판 제공
다른 문인들과 함께 일본 교토 도시샤대에 있는 정지용 시비를 참배하고 있는 최재봉 기자(오른쪽에서 두번째)의 모습. 한겨레출판 제공

하지만 그 바람은 이제 미망(迷妄)일 수밖에 없다. 선생은 지은이의 바람에는 관심 없다는 듯 2022년 12월25일 저녁, 세상을 버리셨다. 이 책의 백미 중 하나는 몇몇 문인들의 부고(訃告) 기사인데, 지은이는 조세희 선생이 생전에 ‘여전히 ‘난쏘공’이 읽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며 이렇게 부고 기사를 마무리한다. “‘난쏘공’의 성공이 작가이자 시민인 그 자신에게는 불행이요 슬픔일 수 있다는 아픈 고백이었다.” 조세희 선생의 오랜 침묵의 뿌리는 아마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2005년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당시 북한에서 만난 홍석중, 남대현, 백남룡 소설가와 오영재, 박세옥, 리호근 시인에 대한 글들은 다시 봐도 이채롭다.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는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최재봉의 탐문’을 다듬고 “한 꼭지를 새로 써서” 엮은 책이다.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 ‘탐문’이라는 말에 “문학에 탐닉하며 문학을 연구한다”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구성이 흥미롭다. 문학이 담고 있는 주제들이나 문학을 이루는 요소 24가지를 정리해 거기에 맞는 작가들의 작품과 내용을, 혹은 뒷이야기들을 솜씨 좋게 풀어낸다. “작가의 호흡이자 숙명”이라 할 수 있는 ‘마감’에서 지은이는 ‘장길산’을 신문에 연재하던 시절의 황석영을 호출한다.

전라남도 해남에 살던 황석영은 대개는 우편으로 원고를 보냈지만, 마감이 밭을 때에는 “버스 터미널에 가서 서울행 버스 승객 가운데 적당한 사람을 골라 원고 ‘배달’을 부탁하기도” 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그런데 작가들은 왜 이 고통을 감수하는가. 지은이는 ‘라쇼몬’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의 시간이 다시 그리워져서는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마감이란 마약과도 같은 것이 아닐지.”

재일한국인 작가 유미리가 최재봉 기자 앞으로 보내온 연하장. 한겨레출판 제공
벽초 홍명희의 손자인 북한 작가 홍석중과 함께 백두산 천지를 찾은 최재봉 기자(오른쪽)의 모습. 한겨레출판 제공

문학의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는 ‘첫사랑’에서는 투르게네프의 중편 ‘첫사랑’과 박남철의 시 ‘첫사랑’ 등을 호출한다. 요즘 널리 회자되는 ‘부캐’에서는 “제 이름과 정체를 숨기고 다른 이름으로 활동”했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이산하 등은 물론, 작품 속에서 자기를 숨기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가지고 활약하는, 이를테면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의 주인공 시라노 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최재봉의 문학전문기자 30년의 세월 이전에도 문학의 흐름은 도저(到底)했고, 앞으로도 문학의 자장(磁場)은 웅숭깊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재봉 기자가 남긴 문학에 대한 기록은, 그의 말마따나 한 시대에 대한 증언이자 발언이며 추억이기에, 지금 이후로도 그의 증언과 발언, 추억이 계속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북칼럼니스트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