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옆 작은 섬 닮은,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책방 [책&생각]
우리 책방은요│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제주도 동쪽 끝.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 만나는 작은 섬, 우도. 그곳에 책방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가 있습니다. 책방 이름이 조금 생소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밤수지맨드라미는 바닷속에 피어나는 연산호입니다. 특히 제주 바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어쩌면 우리 삶에서 아련히 멀어져가는 책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잊지 말자’ ‘더 곁에 두자’라는 마음을 담아 책방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답니다.
책방은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시골에서 책방을 하자!’ 하고 결심을 굳혔을 당시 저희 부부는 우도살이 3년차에 접어든 해였어요.
우도에 오자마자 처음부터 책방을 해야지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둘이 함께 살 집을 직접 고치며 사는것이 저희의 첫번째 프로젝트였어요. 둘이 함께 살아갈 공간이기에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툴고, 느리지만 조금씩 집이 완성되어가면서 우도에서의 시간을 적응해갔습니다. 서울 토박이였던 저희는 도시를 벗어나 섬에 살면서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철썩이는 파도, 살랑이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 매일 밤 고개를 들면 마주하는 별빛 등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푹 빠져들었어요.
물론 여러가지 불편한 점도 많아요. 택배 추가비 오천원 이상은 기본이고, 본섬인 제주 시내에서 업무를 보다 마지막배를 놓칠뻔한 적도 있었고, 한밤의 출출함을 달래줄 배달음식이 없다는 것도 참기 힘들었어요. 특히 파도가 높아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한 번은 육지에서 친구가 왔는데 이틀 동안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결국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간 경우도 있었어요. 육지에서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의 편리함들이 상상도 못한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그동안 너무 편하게만 살았던 자신을 돌아보며, 포기할 건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 섬을 둘러싼 환경에는 적응되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방’이었어요. 배 시간에 쫓기며 보는 것이 아닌 온라인의 편리함도 아닌 직접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책을 고르는 느릿한 나만의 시간이 무척 그리웠어요. 무엇보다 관광객의 시간이 아닌 주민으로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하나 더하자면 이따금 밤에도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면 더없이 좋겠다 생각했어요. 우도 대부분의 가게는 마지막 배 시간에 맞춰 영업이 종료되거든요.
‘누가 책방 좀 열어주지’ 바라던 마음이 어딘가 닿았는지 가게를 해보지 않겠냐는 이웃의 제안에 저와 남편은 ‘책방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낡은 농가주택이었던 지금의 책방은 결국 또 손수 고쳐가며 완성이 되었고, 우도에 처음으로 생겨난 책방이자 하나밖에 없는 책방이라는 멋진 수식어와 함께 문을 열고 있습니다.
책방규모가 작기도 하고, 원하는 책을 모두 들여놓을 수 있는 여유가 안되기에 매일 즐겁게 고민하며 책을 고르고, 소개하고 있어요. 특별히 장르를 정하지는 않고 주로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는지 주목해서 살펴봅니다. 자연, 생태, 시골, 해녀, 예술,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 따듯한 마음을 전하는 책들을 좋아합니다. 또한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 쓰고 펴낸 독립출판물은 청춘들의 생각과 고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매력적인 장르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소개하고 있어요.
책방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데 가끔 밤늦도록 문을 열어두는 심야책방 ‘책 헤는 밤’이 열리기도 합니다. 이 시간만큼은 책방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가져온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오직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다 가는 거예요. 그리고, 때때로 그림, 사진 등 전시회나 음악가의 공연이 열리기도 합니다. 한 켠의 작은 공간에서 열리는데 이름을 ‘공간 출렁출렁’이라고 저희끼리 붙였어요. 지역 특성으로 인해 문화예술 경험이 부족한 섬주민들을 위해 그리고 저희 스스로를 위해 즐거운 예술콘텐츠가 출렁이는 기분좋은 움직임을 전하고 싶어요.
“요즘 누가 책을 읽는다고 책방을 하느냐?” 했던 주변 이웃들의 우려와 걱정속에 문을 연 책방이 지난 여름 어느새 개점 6주년이 되었어요. 물론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고 계시지만, 애써 일부러 배를 타고 찾아주는 여행자들이 있고, 여전한 걱정과 아끼는 마음을 전해주는 우도 이웃들이 있어 책방은 오늘도 문을 엽니다. 조그만 섬, 우도. 그 곁에 섬을 닮은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책방 ‘밤수지맨드라미’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글·사진 이밤수지 책방지기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우도해안길 530 (연평리)
https://instagram.com/bamsuzymandramy.book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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