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구멍에서 돈 벌어들이는, 21세기 불로소득자 [책&생각]
토지·금융부터 인프라·플랫폼·자연자원·외주화까지
“독점이윤은 그걸 보증해주는 독점권력에 기댄다”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
누가 경제를 지배하고 그들은 어떻게 자산을 불리는가?
브렛 크리스토퍼스 지음, 이병천·정준호·정세은·이후빈 옮김 l 여문책 l 4만5000원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r>g”라는 간명한 수식을 제시해 지난 300년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을 표현했다. 자본수익률(r), 곧 자본이 자본으로서 벌어들이는 수익률은 늘 경제 전체의 성장률(g)보다 크다. 자본주의 초기 위험을 감수하며 경쟁에 도전하던 자본은 그 축적이 진행될수록 세습적인 불로소득으로 고착되고, 그 결과 부의 불평등은 가차 없이 증가하기만 할 것이다. 피케티의 연구는 자본주의 분석에서 한동안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불로소득과 지대(rent)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피어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므로 토지나 금융을 깔고 앉은 지대 추구는 결국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봤었다. 그런데 지대는 왜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으로 지목되는가?
브렛 크리스토퍼스(스웨덴 웁살라대 교수)의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는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를 ‘불로소득 자본주의’라 규정하고, 영국 경제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지대와 불로소득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종합하려 시도한 책이다. 오늘날 지대는 과거 경제학자들이 생각했던 모습과 크게 달라졌으며, 지대와 불로소득이 다시금 중요해진 배경에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일련의 정책 개혁이 있다”는 것이 책이 지적하는 핵심이다.
지은이는 영국 자본주의를 추동한 세력이 애초부터 ‘활동하기’(doing)를 통해 돈을 버는 산업자본주의자가 아니라 ‘소유하기’(having)를 통해 돈을 버는 ‘불로소득 추구자’(rentier)였다고 본다. 양차 대전 이후 한동안 ‘활동하기’(제조업)가 카르텔에 기대어 돈을 더 잘 버는 시기가 있었으나, 언제든 편하게 돈 벌 길을 찾는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계기로 다시 “불로소득 경제화된 자본주의”로 전환됐다. “불로소득자 부활의 가장 중요한 씨앗 중 일부는 이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뿌려졌고, 대처가 수상에 취임하기 훨씬 전에 이미 불로소득주의의 새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만 오늘날 불로소득자들이 누리는 지대는 이전과 달리 다양하고 복잡하다. 지은이는 지대를 “경쟁이 제한적이거나 부재한 조건에서 희소자산의 소유 또는 통제에서 발생하는 소득”이라 규정한다. 이런 규정에서 출발하면, 지대는 전통적으로 알려진 토지·금융뿐 아니라 지식재산·플랫폼 등을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비정상적인 시장 지배력을 행사함으로써 얼마든 추출될 수 있다. 지은이는 지대를 금융, 자연자원, 지식재산, 플랫폼, 계약, 인프라, 토지 등 일곱 가지로 분류해 톺아본다.
새로운 ‘불로소득자의 천국’이 만들어진 데에는 공통 배경이 있다. 일단 민영화로 공공 소유 토지가 시장에 나온다거나 자연자원 발견으로 매장량이 새롭게 산출되는 등 거대한 ‘자산’이 새로 만들어진다. 불로소득자는 정부 정책을 압박하여 이 자산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지대를 최대화한다. 부동산 소유자가 임대료뿐 아니라 시장 가격 상승으로 자산 가치의 상승까지 누리는 것처럼, 정책은 지대뿐 아니라 여러 다른 방법으로도 불로소득자를 지원한다. 예컨대 영국에선 1980~90년대 규제 완화로 주택담보대출 등 거의 모든 것을 ‘증권화’시켜 엄청난 금융자산을 생성했고, 금융기업 등 불로소득자는 자본이득세 경감 등의 조세정책에 기대어 이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국내 법률 제정과 국제 협력을 통해 ‘지식재산권 지대’가 만들어지는 과정, 무선 주파수 경매를 통해 대형 통신기업이 ‘인프라 지대’를 확보하는 과정, 토지 민영화로 시장에 나온 새로운 토지를 소유·임대하게 해준 ‘토지 지대’의 형성 과정 등 “독점이윤을 보증하는 독점권력”의 존재는 거의 모든 불로소득 경제에서 나타나는 핵심적인 공통 요소다. “지대를 획득할 기회는 자산의 희소성과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권력의 희소성 모두에 근거한다.” 특히 지은이는 이 새로운 불로소득‘자’의 형상은 관습적인 인식처럼 ‘개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 정확하게는 ‘벌어들이는’ 지대의 전체 규모의 측면에서 볼 때 현대의 불로소득주의는 개인이나 가계의 문제라기보다 지배적으로 기업의 문제다.”
‘외주화 지대’에 대한 지적이 특히 독특하다. 지은이는 “과거 또는 현물시장 교환이 아닌 미래 교환을 의미하며, (…) 자산에 대한 통제가 전적으로 독점적이라는 점”을 들어 외주 계약이 불로소득에 해당한다고 본다. 1970년대 말부터 영국은 공공 부문 외주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으며, 지방정부의 여러 업무로부터 시작한 외주화는 국가 공공 부문의 보석으로 알려진 국가보건서비스(NHS)에까지 이르렀다. 어떤 종합위탁계약업체의 주요 계약은 학교 급식 서비스부터 핵 잠수함 수송, 교도소 운영 등까지 아우르며, 이들은 “계약을 이행하는 것보다 계약을 수주하는 데” 전문화되어 있고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이 같은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일단 “불로소득주의에 내재된 독점력은 일반적으로 역동성과 혁신에 적대적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이들은 경쟁을 위해 투자하지 않고 오직 지대를 지키는 일에만 노력한다. 자본투자율의 급락과 경제 침체에 따르는 고통은 노동자, 특히 저소득 노동자에게 몰린다. 실제로 영국에서 노동소득 분배의 몫은 1970년대 초반 이래 거의 70%에 가까운 수준이었는데, 오늘날엔 55% 수준으로 극적으로 감소했다. 또 수요독점력의 증대는 임금의 하락으로 직결된다. 오늘날 날로 커지는 불평등의 핵심에 불로소득 자본주의가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지은이는 경쟁정책의 활성화, 독점이윤의 크기에 비례하는 과세 등 조세정책의 대대적인 개편, 사업정책과 경제구조의 진보적 전환, 공동체 소유의 확대 등 사적 소유를 해체하는 소유구조의 재편 등 네 가지 정책 패키지를 제시한다. 자본주의 자체가 불로소득주의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치경제 시스템이 과연 자본주의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도 던진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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