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년 시화사’ 집대성한 한문학자의 21세기 ‘원픽’ 시화는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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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시인 황석우(1895~1960)는 '시화'(詩話)란 제목의 글을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시'의 나라에서 1천년 가까운 '시화'의 역사를 한 권에 꿴 책 '한국 시화사'에서다.
1071년 구양수의 '육일시화'를, 벽초 홍명희가 "장난조"로 튼 '역일시화' 제목 아래 1936년 쓴 시화(잡지 '조광')가 있을 만큼, 시화의 전통은 유구하고 하여 '잡서'의 인멸은 더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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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화사
안대회 지음 l 성균관대학교출판부 l 4만원
1919년 시인 황석우(1895~1960)는 ‘시화’(詩話)란 제목의 글을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한시나 시조가 아닌 근대 시를 우리말로 미디어에서 다룬 첫 시도였다. 이런 획기성은 2016년 평론가 신형철이 한겨레에 전면 연재한 시화 시리즈와 맞닿는다. ‘시’의 나라에서 1천년 가까운 ‘시화’의 역사를 한 권에 꿴 책 ‘한국 시화사’에서다. 지은이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당시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해방 이후 가장 성공적인 시화 저술’로 평가한다.
더덜없이 제목대로다. ‘한국 시화사’는 안 교수가 조선후기 시화를 주제로 쓴 30년 전 박사학위 논문에서 시발하여 고려부터 현대까지 포괄한 역작이다. 대략 200종. 근대 이후 시화 집대성은 처음이다. 시화란 말에 시와 그림의 조합(詩畵)을 떠올릴 수 있으나, 본래가 시에 관한 이야기, 즉 시와 시인을 대상으로 한 비평적 에세이를 일컫는다. 안 교수는 시화집의 역사부터 확장한다. 고려시대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1211)이 실재하는 한국 시화의 효시이긴 하나, 사료에 의거하여 정서의 ‘잡서’(1170년 이전)가 “시화와 필기의 첫 저술”이라 소개한다. 중국 구양수의 ‘최초 시화’로부터 고작 100년 뒤다. 1071년 구양수의 ‘육일시화’를, 벽초 홍명희가 “장난조”로 튼 ‘역일시화’ 제목 아래 1936년 쓴 시화(잡지 ‘조광’)가 있을 만큼, 시화의 전통은 유구하고 하여 ‘잡서’의 인멸은 더 각별하다.
한국 시화는 태동부터 흥미롭다. ‘파한집’과 ‘보한집’(최자, 1254)이 보여준다. 고려 무신정권에 대항해 시로 견디려는 문신과, 순응해 시로 두둔하는 문신(세력)의 작품이었다. 무신정권 초기 저술된 ‘파한집’은 이후 50년 지나, 최씨정권 붕괴 뒤인 1260년에야 간행된다. 이인로는 고려사에 “성격이 편협하고 성급하여 당시 세상의 뜻에 거슬려 크게 쓰이지 못하였”던 자로 남고 만다. 시부터가 그러했듯, 그저 시 한 줄 평해보자는 게 시화는 아니다.
고증 본위에서 심미적 비평으로 진화시킨 허균(1569~1618), 이전 국내 시화를 집대성한 홍만종(1643~1725), 여성 시와 일본 시까지 다룬 당대 제일의 비평가 이덕무(1741~1793)에 대한 지은이의 관심이 올돌하다. 하기야 쉰살 처형된 허균이라면, 후대 김만중(1637~1692)도 ‘근대 제일의 감식안’이라 했다. 이어 조선 한시의 폐습과 추사 김정희의 시론을 비판한 일제강점기 박한영(1870~1948)의 ‘석림수필’(1943)에 대한 평가까지. 그리고 한문학자의 눈에는, 21세기 들어 신형철의 시화가 꽉 들어찼다.
마포 한강변 누정 이한당에 머물던 홍만종의 글이 이랬다. “…보잘것없는 선비와 신분이 낮은 사람이 지은 작품으로서 독자의 입안에 향기를 감돌게 하는 훌륭한 시구와 놀랄 만한 시어를 주워 모았다. (…) 하나같이 묻히거나 사라져서 언급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손에 들어오는 대로 거두어 기록하였다가 마침내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다. 마치 부스러기 시간을 쌓아서 한 해를 완성한 것과 같다.” 이한당부터 ‘파한집’과 ‘보한집’을 아우른 말로, 오직 비평의 길에 섰던 이의 붓끝은 “독자”부터 향했다. 당대 사본이 수백종 넘친 까닭일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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